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비집고 들어온 일없는 일상이 굳히기에 들어간 건 아닌가 조바심이 났다. 자격(모집연령)이 미치지 못해도 누가 되지 않는 선에서 혹시나 하는 기대를 담아 한동안은 꾸역꾸역 일자리를 찾았다.
'탈출기(최서해)'의 '박군'처럼 사회를 향해 핏대를 세워야 하나?'
생각 사이로 시간은 야금야금 사라져갔다. 일 없이 부서지는 시간속에서 몸과 마음은 딴딴하게 굳어갔다.
하루 하루 조급한 마음으로 보내던 어느 날 목구멍에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겨울이라 건조한 탓인가 싶어가습기를 꺼냈다. 며칠이 지나도 효과가 없어 내과를 찾았다.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진단이었다. 술도 안 마셔, 야식도 안 해, 커피도 하루 한 잔에 소식 스타일이라고 공격했다. 나이들면 식도와 위를 연결하는 괄약근이 탄력을 잃어 완전히 조여지지 않기 때문에 역류성 식도염에 노출될 수 있다고 반격해왔다. 어이가 없었다.
'외모뿐 아니라 내부 기능도 하강하는 중이었어?'
혼잣말로 씁쓸함을 달랬다. 일주일치 약을 복용한 후에도 효과가 없어 병원에 가 이실고지하니 금세 괜찮아지는 게 아니라며 또 일주일 분 처방전을 덥석 내밀었다.
두 번째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면서소화기에도 부작용이 나타났다. 위산분비억제제가 나를 궁지로 몰아가는 듯하여 일단 약을 중지했다. 이후 내시경, 복부초음파, 혈액검사 등 여러 검사를 받았지만 이상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래도 목마름과 이물감, 소화불량은 여전히 의욕을 차단해 일상이 어긋버긋 이가 맞지 않았다.
그 즈음 겸사겸사 통화하게 된 대학 선배에게 현재의 상황을 말하자 탄산수 같은 말을 전했다.
그동안 열심히 살지 않았냐. 일 없다고 너의 가치를 함부로 깎지 마라. 주부의 가사 노동을 경제 가치로 환산하면 만만치 않으니 백수는 당치도 않다. 편히 쉬면서 기다려 보아라. 생각지도 않은 데서 길이 열릴 수 있다. 주부는 가정의 중심이니 주부가 건강해야 가정이 편하므로 챙겨야 할 건 이력서가 아니라 건강이다.
살아온 시간을 높이 평가하고 살아갈 시간도 결코 무해하지 않다는 걸 조목조목 들려주며 위로했다. 목에 걸린 항쇄의 비녀장이 스르륵 빠지는 기분이었다.
생산적인 일은 나에게서 당연한 거였다. 때문에쉴 때도 있는 거라며 넘겼던 페이지를 되돌려 일하지 못하는 나와 다시 마주하는 일이 잦았다. 경제에 보탬이 돼야 한 사람으로 바로 서는 거라고 배우며 자랐다. 일에 대한 의식이 누구보다 확고했다. 일을 놓게 된 후로도 '10년은 더 일해야 하는 당신'이 공익 광고 문구처럼 따라다녔다. 되지도 않는 일에 시간과 공을 들이며 수없이 실망하면서도 일자리 찾기는 멈출 수 없었다. 맘이 늘 편하지 않았다.스스로 족쇄를 채우고 서둘러 일을 찾으면 풀어주겠다고 윽박지르는 꼴이었다.
선배의 전언은 나의 중요성을 재점검하도록 부추겼다. 누누이 들어왔던 외침이지만 여성인 나조차도 인정하지 않았던 가사 노동의 가치(월급 190만 원, 연봉 2315만원/ 2014년 통계청 생활시간조사 자료를 토대로 2018년 동아일보가 추정한 전업주부 가사 노동 가치)를 그제서야 들여다 보았다. 일없는 불안을 상쇄하기 위해 조급하게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서도 물러나 자연스럽게 일이 찾아오는 그날까지 기다리자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결국은 생각이었다. 일에 대한 고정관념이 마음을 흔들었고 흔들린 마음이 몸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순행하지 못하고 닦달했으며 갑자기 주어진 한가한 시간이 어색해서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최근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되도록 다른 일에 휘말리지 않고 따로 떨어져 휴식만 취하며 보낼 생각으로 은퇴하였다. 완전한 한가로움 속에서 자기 자신을 관리하고 자기 안에 멈춰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보다 나의 정신에 더 이로울 게 없을 것 같았다. <몽테뉴와 함께하는 여름>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온전히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하고 싶었던 일에 무엇이 있었나생각하면서 가까이 가보려고 마음을 가라앉혀 보았다. 경제적 자유가 숙제로 남긴 했지만 경직된 마음이 좀 느슨해지는 것 같았다. 까탈스럽던 목마름도 점차 얌전하게 굴었다. 억압과 탄압으로 일관했던 위장도 차츰 근육을 풀어갔다.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올바른 생각을 심는다는 게 어려운 일이지만 안 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동안 돌보지 않은 마음을 수양에얹어 보살펴야겠다는생각이 차올랐다.
'침대 밑 악어(마리아순 란다)'의 'JJ'에게 '엘레나'가 있었던 것처럼 나를 건진 '엘레나'는 그 선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