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엔 나를 내려놓았다. 그동안 쌓은 경험이나 노하우를 내세우기보다 할 수 있는 다양한 일에 도전했다. 적잖은 나이가 갖는 사회적 위치가 터무니없이 척박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백세 시대를 감안하면 일을 놓기엔 아직 이르다는 생각으로 다방면에 이력서를 전달했다. 전하는 비중에 비해 면접 요청은 지극히 적었다. 직접 가서 면접의 기회를 달라고 떼쓴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중 태권도장에서 면접 요청이 왔다. 기대하고 싶었지만 자제했다. 일을 수행한 경험이나 당사자의 진정성보다 나이듦의 편견을 부각시키는 사회적 시선에 이미 주눅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랐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수차례 확인했음에도 '나 아직은 괜찮지 않니?'
속마음이 새 기대를 부추겼다.
에너지 넘치는 젊음으로 무장한 관장에게
"내 나이가 모집 연령보다 많다는 거 알고 면접을 요구한 것이냐?"
며 첫 마디를 건넸다. 나이 때문에 빗나갈 일이라면 애초부터 밝히고 간단하게 끝낼 생각에서 던진 말이었다. 이유를 되물었다. 나이 때문에 몇 번 거절당했다고 솔직히 말했다(다른 요소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나 나이 얘기가 빠진 적 없어 그렇게 믿었다).
"지들은 나이 안 먹나요? 알고 오시라 한 겁니다." 하더니
"독서지도를 하시던 분인데 저희 도장에서 일하시는 거 괜찮으시겠어요?"
한껏 담긴 배려와 인정(認定)이 훅 치고 들어와 오그라든 마음에 온도를 높혔다.
"2-3일간 생각해 보시고 결정되시면 월요일부터 출근하셔도 됩니다."
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내일부터 바로 나오겠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혹시 다른 사람 면접봤다가 밀릴까 봐 서둘러 결정을 전한 것이다.
그렇게 2년 여를 태권도장에서 근무했다. 유치부나 초등 저학년 돌봄도 하고 전단지도 만들며 차량으로 등하원을 보살피는 등 선택해준 고마움에 성심성의를 담아 일했다.
배려는 끊이지 않아 힘들고 어려운 일은 본인들이 나서서 처리했다. 월급 주면서도 제대로 부리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었다. 대접받고 일한다는 마음이 커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돕자는 생각으로 늘 주변을 보살폈다. 그럴 때마다
"이건 나중에 제가 할게요. 쉴 땐 쉬시거나 책 보세요."
라며 존중해 주었다. 마음이 환해지는 순간들이 정으로 쌓여갔다. 하루 하루 온기로 가득한 근무지에 감사한 마음이었다.
해가 바뀌며 남편에게 한 달간의 비상근 기간이 주어졌다.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싶어 여행 계획을 세웠다. 어렵게 얻은 근무지라 고민이 컸지만 남편에게 주어진 기회도 흔치 않은 것이라 과감하게 여행을 선택했다. 패키지 여행을 예약하기 전 사직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소중한 기회라며 다녀오라고 선뜻 받아들였다. 아쉬운 사람 아니었구나 싶어 서운하려던 찰나
"대신 한 달만 쉬시고 다음 달부터 다시 출근하실 수 있죠?"
머리부터 발끝까지 박하 에센셜 오일을 바른 듯 통증 수치가 훅 내려가는 제안이었다.
"나 두 마리 토끼 다 잡았어요~(김국진 버전)."
여행 후 두세 번의 통화로 출근 여부를 확인한 다음 평온한 휴식에 빠질 즈음이었다. 내 고막 생애 처음 들어보는 낯선 용어가 연일 뉴스 화면에 나타나 불안감을 조성했다. 코로나19(우한 폐렴)가 그것이었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2019년 11월에 처음 발생했다고 보고되었으나 실제 발생 시점은 그보다 1~2개월 전으로 추정한단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 세계, 모든 대륙에 들불처럼 번지리라곤 예상조차 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좀 유행하다 멎겠지 했던 게 2020년 1월 우리 나라도 최초 확진자가 나왔다. 이를 시작으로 2월 대구 신천지 대확산이 일어나 마스크 대란까지 초래했다.
연이어 증가하는 확진자 확산세에 코로나19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했다. 학원가에는 강제 휴원 조치가 내려지고 태권도장도 잠정 휴원에 들어갔다. 요일제에 따라 마스크를 구하러 다니며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위기 경보가 오르락 내리락 반복하는 사이 극심한 피로감에 찌들었다. 그 바람에 다시 출근하기로 했던 내 거취는 기약없이 미뤄졌다. 그 후로도 태권도장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일자리를 잃고 백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