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거품으로 사라진 17년의 이력

멈추고 싶은 생각 7

by 오순미

오랜 기간 살았던 동네를 떠나 연고도 없는 낯선 곳에 가 살기로 결정했다. 남편의 출퇴근, 딸의 등하교가 불편하다는 게 제일 이유였다. 그동안 해오던 내 일 때문에 이 동네를 고집했던 건데 두 사람이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녹록치 않아 힘들어 했다. 가족들은 여기에 거주할 이유가 없다며 이사를 종용했지만

'그럼 내 일은 어쩌라고?'

심기가 살짝 꼬였다.

이사 간 동네에서 새롭게 일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여러 날 고민한 끝에 결국은 가족의 편의를 선택했다.


나이들어서도 이 일을 놓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 곁눈질따윈 해보지 않은 터라 이사 후에도 같은 일을 하겠다는 마음이 컸다. 한동안 권태에 빠져 허우적대긴 했지만 일할 수 있을 때까지 하자는 의지는 여전했다. 이제 와 새로운 도전은 불안했고 그동안 하던 그나마 나를 세워 줄 것 같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단지 걱정스러운 것은 다시 시작이라는 점이다. 살던 동네서야 창창할 때고 여력이 충만할 때라 시작이 두렵지 않았지만 이제 와 새로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건 좀 다르다. 마음이 다소 위축됐다. 아이나 부모나 젊은 강사를 선호하는 편이라 그 부분에서도 자신감이 반으로 접혔다.


이사 후

일단 부딪혀 보자는 심산으로 광고를 하고 연락을 기다렸지만 팀 구성이 쉽지 않았다. 상담 연락이 오긴 했지만 수업으로 연결되진 않았다. 그간 쌓은 커리어를 어떻게 전달해야 효과가 나타날지 궁리해봐도 개인적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방법에 한계를 느꼈다. 예전 방법을 고수하는 모습이 달라진 시대를 거스르는 것 같아 못마땅했지만 기발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반응이 동반되지 않는 광고를 수정할 대안도 없었다.


대책없는 기다림에 마음이 점점 초췌해지기 시작했다. 시작 전부터 시간이 걸릴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긴 기다림은 지쳐가는 마음을 휘젓고 다녔다.


주변에 학교가 여럿 있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될 줄 알았으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눈에 띈 학교 수만 보았지 학교별 학생 수나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교 분위기 등을 미리 파악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


관심 좀 갖고 다른 일이라도 준비할 걸 미련퉁이처럼 한 길만 바라본 지난 시간들에 물벼락을 맞은 듯했다. 기존 일이든 다른 일이든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난 협살에 갇힌 기분이었다.

후줄근한 모습으로 뒤돌아보니 좁은 시야, 고지식한 안목, 변화를 읽을 줄 모르는 근시안이 턱을 쳐들고 눈을 부라렸다.

'어쩌라고?'

능력의 한계는 여기까진가? 씁쓸했다.


이대로 무너질 수 없어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학원 강사를 모집한다는 여러 곳에 노크를 했지만 답은 가뭄에 콩나 듯 돌아왔다. 창의력 수학학원에 면접을 보러 갔을 때 학원장은 독서지도 경험을 높이 평가, 당장이라도 채용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본인 맘은 그러하나 현재 근무 교사들이 모두 20대라 서로 불편한 점 있을 거라며 미리 언질을 주기 위해 불렀다고 했다.

그들과 잘 어울릴 수 있겠냐?

젊은 감성을 따라갈 수 있겠냐?

묻고는 교사들과 상의해 결정하겠다더니 사흘 후 채용이 힘들겠다는 연락이 왔다.

20대와 조화를 이루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나?


기다리는 2~3일간은 마치 취업이 된 것처럼 어떻게 수업해야 할지 자료를 찾으며 들떠 있었다. 면접 당시 채용 의지가 있음을 분명히 읽었는데 이제와 불가하다니 태반이 빠져나가 듯 몸의 힘이 쑤욱 빠져 나갔다. 들뜬 만큼 실망도 컸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또 다른 학원으로 직접 찾아가 면접을 요청했다. 일명 들이대기식 작전으로 밀어부치려 했으나 첫 마디가 나이 얘기였다. 그래서인지 성의없이 대하는 것 같아 바로 나왔다. 오랜 경험 따위 무시하고 나이가 이 정도로 군림할 줄이야, 눈알에서 욕설이 찔끔 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