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고 또 원했지만 그만하고 싶었다

멈추고 싶은 생각 6

by 오순미

ADHD를 진단받고 치료 중인 초등 저학년 자녀를 둔 어머니가 상담을 왔다. 학습 능력 및 집중력이 부족하여 다른 학원에선 거절당했다며 자녀의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던 표정에서 간절함이 읽혔다. 키우는 엄마 입장으로 힘겨운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왔다.


앞뒤 재지 않고 개인 수업을 허락했다. 부모도 팀 수업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짐작했는지 서운해하지 않았다. 그 아이와 첫 수업을 마친 날, 곱절의 노동에 시달린 것처럼 진이 빠졌다. 책상 밑으로 들어가 벌러덩 눕기는 다반사고 꽂혀있는 책마다 꺼내들며 참견하기 일쑤였다. 문장 이해력도 학년에 비해 부족했 질문에 대한 답은 대다수가 동문서답이었다. 섣불리 대들었구나 싶은 후회가 온 종일 지워지지 않았다. 수업이 불가하다고 말해야겠다 수십 번 결심했지만 어머니의 간곡한 눈빛이 맘에 걸려 지독한 고민에 시달렸다.


고립무원의 궁지에 빠져서도 거절이란 그 한마디 입술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그 아이만을 위한 프로그램을 별도로 준비했다. 어느 날 문득 아이가 온 것처럼 어느 날 문득 아이를 수용했다.


어르고 달래며 3년 여의 시간을 함께 보낸 후에야 팀 수업에 합류해 어울릴 수 있었다. 훗날 고교 하키 선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와 '8할은 내 공이야' 외쳤지만 소리가 되어 입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성취감보다는 힘겨웠던 시간의 무게가 '내 공이 커'소리를 제압했기 때문이다.




원하고 또 원하던 '일'이었건만 시간이 갈수록 숨이 막혔다. 쉼에 대한 갈망, 난데없이 끼어드는 부가적인 일정, 일 때문에 읽어야 하는 아동 도서,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는 부자유한 일상들이 어지럽게 널려 정리가 되지 않았다. 다중 작업이 불가한 사람이라 일과 쉼을 적절히 분배할 줄도 몰랐다. 쉬다가도 불현듯 생각나면 일을 붙들었고, 일에 몰입하다 보면 일에 파묻힌 나만 있었다.


어느 날부턴가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풀쑥 고개를 내밀자 바삭거리던 마음이 눅눅해졌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42.195를 미친 듯이 달린 사람처럼 탈진할 것만 같았다. 이 일 외에 다른 일은 생각해본 적 없어 와락 덤벼든 염증이 무서웠다. 일은 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 없지만 시들하다고, 질렸다고 툭툭 건드리는 권태가 두려웠다.


어떤 날은 수강생들이 그만두었으면 하다가도 누가 하나 그만두겠다고 하면 서운한 마음이 밀려왔다. 어정쩡한 딜레마에 기분 탈탈 털린 느낌이었다. 초심을 방해하여 마음을 멀게 하는 이유들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17년을 지탱할 수 있도록 끝까지 신뢰를 잊지 않은 눈빛들을 저버릴 수 없어 하루 하루 버티는 심정이었다. 여기서 그만 놓을까?

그럼 뭘 할 수 있을까?

갈림길에서 명쾌한 선택을 할 수 없었다.


길을 몰라 주저하는 사이 고비가 닥 가정이 곤경에 처하자 그간의 방황은 흔적도 없이 지워야 했다. 이중 고통이 나를 덮쳤다.


여전히 책 선정에 고민을 더하고 교재를 제작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고 해야만 했기에 일이 마음을 방해하지 않도록 과도한 책임을 찔끔찔끔 덜어냈다. 덜어내도 일에 지장이 없는 걸 보며 '지나치게 채찍질하며 살았구나'가 가슴 깊은 곳에서 온천수처럼 솟구쳤다.


다듬지 않은 무의식에까지 새겨 넣었던

'일이란 끊을 수 없는 사슬'이라는 정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할 수 있음에 감사'라는 의미를 포개 그간의 권태를 수정하려 애썼다. 광택제를 바른 지 오랜 듯 푸석푸석했던 마음에 전과 같은 열망이 고르게 퍼지도록 거름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