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면서 누차 들었던 '여자도 일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각인된 탓인지 아니면 독박 육아에 지쳐 새로운 시간을 갈구했던 건지 의식의 중앙에는 일을 가져야 한다는 갈망이 농밀했다. 육아를 하는 중에도 육아와 연계된 일에 무엇이 있을까? 꾸준히 찾았다. 그런 중에 대입 시험에서 논술의 비중이 커지고 더불어 독서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독서지도사가 직업으로 부상했다.
큰아이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새롭게 시작한 독서지도 일은 잃었던 자화상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처음 그 의욕은 내려올 생각없는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차트처럼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책을 선정하고, 자료 찾아 워드 작업하고, 교재 제작하여 강의하고, 자녀를 맡기겠노라 찾아온 부모와 상담하며 보내는 시간들이 꿈결이었다.
좀 처진-수업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뒤흔드는-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책을 읽어오지 않아 수업에 방해가 되는 아이에게도 내게로 온 소중한 인연이라 생각하며 다독여나갔다.
해가 가고 달이 가고 뱉어지지 못한 생각들이 쇠똥구리의 똥구슬처럼 단단해져도 일하면서 스트레스 받지 않는 사람 있겠나 싶어 초심의 의욕을 상기하며참아냈다.사소한 것들이라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반복되니분쇄되지 않고 쌓여만 갔다.
매번 지각하여 팀 수업에 지장주는 수강생들을 위해선 일하는 엄마대신 시간을 챙겨야 했다. 전화 걸어 행선지 파악하고 서둘러 오라고 닦달해도 시간 관념이 희박한 저학년은 급할 것이 없다보니 종종 늦어 애를 태웠다. 전 시간이 늦어지면 틈없이 시작하는 다음 시간에도 피해가 가기 때문에 시간 관리가 관건이었다. 부모에게 부탁해봤지만그들도 직장에 매인 몸이라 연속적인 체크는 불가했다. 일하는 중에 일일이 신경쓰는 게 힘들지싶어 결국은 내 책임으로 떠안았다.
수업 시간 임박해서 수업이 불가능하다고 주말 보충을 요구하는 부모에겐 황금같은 휴식 시간을 뺏겼다. 주말 보강을 위해 온 식구에게 이른 아침을 먹인 후 기다려도 오지 않아 연락하면 깜빡 잊고 나들이갔다는 부모 때문에 허탈한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본인들 사정 때문에 빠지게 된 수업이라 보강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보지만 주 1회 수업에서 한 주 빠지면 교육비 1/4을 허비하는 꼴이니 부모의 경제적 사정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딱 잘라 거절하고 싶지만 '미움받을 용기' 가 없었다. 항상 상대의 입장에서 고려하고 배려하다보니 가슴이 쑤시고 한숨이 새는 날이 잦았다.
학교에서 내준 개인 과제(독서 및 글쓰기와 관련)를 부탁하는 부모들 때문에도 별도의 시간을 할애했다. 정해진 계획 안에 난데없이 끼어드는 갑작스러운 일정에 거부감이 치밀지만 역시나 거절할 수 없었다. 부모가 챙겨야 할 일까지 떠넘기는 처사가 못마땅했지만 야박하다는 말이 나올 게 뻔해 생각을 접고 시간을 날렸다.
전후 사정은 묻지도 않은 채 자녀 말만 듣고 함부로 항의하는 부모에게도성깔만큼 할 수 없었다. 자녀 말엔 당연히 자기 잘못은 제거된 상탠데도 부모는 본인 자식만 금지옥엽 애지중지다. 부아가 복받치지만 차분한 상황 설명을 이어가야할 때는 작고 희미한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야, 그냥 니 생각대로 거침없이 말해버려.'
생각은 가슴을 관통해 점점이 흩어질 뿐 말로 생성되진 못했다.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준 실망 때문에 지치는 날엔 뜨거운 태양이 숫구멍을 지져댔다.
당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미움받는 것이 당신답지 못한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보다 낫다. -앙드레 지드(프랑스 소설가, 평론가)-
일을 계속하려면, 수많은 학원과 경쟁하려면 미운털이 될 수 없었다.나답지 못한 모습으로 사랑받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