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두근대는 소리에 잠에서 깨다

집을 떠난 어느 날,

by sodoi

기록해야 한다. 적어도 나는 그런 강박을 가지고 있었다. 시계의 작은 바늘은 4와 5 사이의 우주를 헤매고 있었고. 노트북 화면의 밝은 빛은 쉬고 싶은 세포들까지 깨울 수 있었으므로 나는 작은 노트를 택했다. 펜을 집어 든 손의 근육이 완전하지 않았다. 완전하지 않은 손으로 첫 줄을 적었다.


'심장이 두근대는 소리에 잠에서 깨다'


나의 강박은 지극히 내성적이다. 떠오른 것을 적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속에서 조금씩 타오르다가, 어느 순간 시선을 한 곳에 두기가 어려워진다. 시선이 닿는 곳은 정지해있지만 나는 흔들리고 있다. 지극히도 내성적인 이 강박은 나의 속 어디선가 발돋움한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고 이행한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노트를 좋아한다.

오밤 중 잠든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며 나를 깨운 이 일의 시작은 일주일 전 일어난 변화 때문이었다. 일주일 전, 살던 고향을 떠나 낯선 곳으로 왔다. 밤이 되면 나에게만 예민하게 구는 애증의 강아지도 집에 내버려 두고 더 춥고 눈은 덜 내리는 곳으로 왔다. 오자마자 이곳의 길고양이들은 매서운 찬기운을 어떻게 감당하나 걱정했다.


그 사이 가족들은 이 추운 곳에서 내가 어떻게 지낼까 걱정했다. 매일같이 옷은 따뜻게 입었냐고, 뭘 먹었냐고, 문은 잘 잠갔냐고 익숙한 억양으로 물어왔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는 안에 있고 길에 사는 고양이들은 밖에서 떨고 있는데 왜 나에게.


적응하지 못한 어느 밤 찍은 창 밖

새벽 4시 35분, 날뛰는 심장의 동정을 스스로 확인하게 됐을 때, 내가 너무 안일했음을 깨달았다. 반경 500m 안이 나와 관련 없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사실은 나의 마음을 옴짝 없이 밀어붙였다. 방의 공기는 너무도 공허한 나머지 시끄럽게 느껴졌다. 방이 좁아져 들어오는 것 같아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 노트를 덮고 풀지 않은 짐 더미 사이에서 런닝화를 찾아 신었다. 이곳에 적응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큰 길가로 나가봤다. 도로를 사이에 끼고 쭉 늘어선 상점과 그 사이를 통과하는 차들. 사람이 없이 한적한 것 빼고는 낮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이야 어차피 나와 관련하지 않은 사람들이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애견샵 통유리 안으로 보이는 곤히 잠든 까만 새끼 강아지가 눈에 띄었다. 몸을 둥글게 말고 추운지 더운지도 모르게 깊이 자고 있다. 밖이 겨울인지 여름인지도 모르고, 지구가 둥근지 네모난지도 모른다. 네 유리벽으로 만들어진 고작 한 칸의 공간에서 먹고 자고 그렇게 살고 있었다. 꼬리를 말고 귀를 세우고 살아있었다.


까칠하고 까만 집 강아지

인간인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창 속에 강아지처럼 지금 여기에 있는 나도 꼬리를 말고 귀를 꼿꼿이 세우고 인간들의 순리대로 살아있었다. 고향을 떠나 이 새벽에 낯선 곳을 헤매게 하고 매서운 바람을 걱정하게 하는 차가운 순리였다. 누구의 마음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순리, 외로움들끼리 뭉쳐 공동체가 되는 순리. 나의 내성적인 강박도 어쩌면 여기서 시작했을지 모른다.


집에 있을 까칠하고 까만 내 강아지가 보고 싶었다. 오늘 밤은 조금 덜 까칠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괜한 기대가 강박처럼 머리에 기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