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왜 그 도시락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인터넷 서점에서 어떤 책을 미리보기 해서 읽다 도시락 에피소드가나오자마자 그 도시락이 머릿속에 번쩍하고 떠올랐다. 네모난 모양의 평범한 플라스틱 도시락, 주황색 또는 분홍색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그 도시락. 어쩌면 그 당시에도 보기 드물었던 양은 도시락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 아이에게 주는 도시락은 외양과 내양 모두 초라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 그 일은 내가 초등학생 때 직접 겪었던 일인지 친언니가 겪은 일은 전해 들었는지 확실치 않다. 어쨌든 내가 겪은 일이라는 가정하에 이야기를 하자. 독자 여러분은 초등학생교에 급식이라는 편리한 제도가 도입되기 전 학생들이 아직 도시락을 싸 다니던... 그러니까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이던...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 임을 감안하길 바란다.
당시 우리 반 아이들은 각자 돌아가며 두 개의 도시락을 싸 와야 했다. 한 반 인원이 50명 정도이던 시절이니 약 한 달 반 만에 두 개의 도시락을 싸는 날이 돌아오는 것이다. 이유는 반에 도시락도 못 싸올 정도로 형편이 안 좋은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점심 도시락을 못 싸올 정도로 가난한 집...이라는 게 존재했던 시절이다. (사실 지금도 방학이면 점심을 굶는 아이들이 있다. 가난이 없어진 게 아니라 단지 눈에 보이지 않게 된 건 아닐까) 그래서 돌아가면서 도시락을 하나씩 더 싸와서 그 아이에게 건네주는, 지금 생각해보면 좀 무신경한 시스템이었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너무도 명확히 드러나는 민망함은 둘째 치고서라도 더 잔인한 건 도시락의 내용물이었다. 나는 뭘 싸갔는지 당연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찬 밥과 김치밖에 없는 도시락을 아주 맛있게 먹는 그 아이의 모습... 아니다, 그 모습 조차 나의 상상 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들은 그 아이의 도시락 반찬은 대개 김치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때때로 김치 밖에 없는 도시락을 맛있게 먹는 그 아이의 흉을 봤다. 그 아이는 도시락에 든 것이 무엇이든 싹싹 긁어먹었던 것이다. 선택권이 없는 어린아이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이상한 건, 우리들의 도시락에는 형형색색 다양한 반찬이 가득했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아이에게 주는 도시락은 형편없었다는 사실이다. 아주 풍요로운 시절은 아니었지만 먹고살만한 시절이었는데도 그 아이는 매번 김치뿐인 도시락을 받았다. 어머니들은 아마 귀찮거나 부담을 느꼈으리라. 혹은 그저 그래도 되었기에 - 자식처럼 반찬 투정을 하지 않으니- 그랬던 것일 뿐 그 행동에 어떤 악의가 있었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그 도시락을 받은 아이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때 우리들이 그것이 잔인한 행동인 걸 몰랐듯이 -알고도 모른 척했을 수도 있다 - 그 아이도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였을까? 어른이 되어 문득 떠오른 그 기억에 내가 얼굴을 붉히듯 그 아이도 뒤늦게 서글픈 기억으로 그때 일을 떠 올릴까?
어쩌면 그 아이는 우리 반이 아니라 언니네 반 아이이고언니에게 전해 들은 내용을 내 멋대로 각색한 건지도 모른다. 그 도시락에 때로는 소시지도 들어있고 각종 나물에 계란말이도 들어있던 게 진실이라면 좋겠다. 아니, 차라리 그 아이의 기억도 뒤죽박죽이 되어 세상에서 제일 따뜻하고 맛있는 도시락을 매일 먹었다고 기억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