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트를 배우며 깨달은 것

손으로 그린 생각

by MIA

2년째 플루트를 배우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씩 배우고 주말에 두세 시간 정도 연습하다 보니 어느새 콘체르토를 배우는 수준까지 되었다. 플루트는 그 전에 배웠던 바이올린처럼 어렵지 않아 술술 진도가 넘어갔고 실력이 금세 늘었다.


바이올린을 배울 때는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다. 스즈키 3, 4권 정도 하는 초보임에도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 가입해 어려운 곡을 연습했고, 빨리 실력이 나아지지 않는 데에 초조해하고 연습할 때마다 마음대로 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때는 오케스트라의 다른 회원들과의 실력 차이에 나 자신이 너무 초라했고, 어서 남들 보기에 번듯한 연주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직장을 다니며 연습할 시간을 내기도 어려워 실력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 시기 내 인생에 더 중요하고 심각한 일들이 생기는 바람에 바이올린은 그냥 케이스 안에서 잠자는 시간이 늘었다. 나는 차츰 그렇게 바이올린과 멀어졌다.


플루트를 시작할 때는 아무런 목표도 욕심도 없었다. 그저 꿈에서 들었던 아름다운 플루트 선율을 흉내내고 싶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레슨을 받으며 오로지 혼자 연습하고 있어 다른 사람과의 실력 차이가 어떤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나는 학원에 다니는 초등학생처럼 그저 아무런 생각도 열정도 없이 레슨을 받고 플루트를 분다. 꾸준히.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 소리가 달라지고 호흡이 길어지고, 손가락 놀림이 빨라지는 게 느껴진다. 한 달 전에는 소리도 못 내던 곡을 지금은 꽤 그럴듯하게 불 수 있다는 사실에 대견해하며 차례로 곡을 익혀간다. 물론 연습을 하다 보면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 부분도 열 번, 스무 번 반복하면 오늘은 안 돼도 내일은, 일주일 후에는 반드시 불 수 있게 된다.


내가 꿈꾸었던 수 많은 일들을 그저 플루트 불듯 했다면 어땠을까. 너무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계획하는 대신 일단 시작하고 그저 꾸준히 반복했더라면.


꿈은 거창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꿈은 그 길을 걸어가는 도중에

그 일을 하는 와중에 이루어진다.


플루트를 배우면서 깨달은 바가 하나 더 있다. 어떤 곡을 잘 연주하고 싶으면 그 곡을 연습해야만 한다는 단순한 진리다. 나는 종종 새로운 곡을 연습하다가 잘 안 되면 예전에 배운 쉬운 곡이나 배우지 않은 새로운 곡을 연습하며 머리를 식힌다. 그런데 다른 곡을 아무리 불어본 듯 핑거링이나 악보 읽는 연습은 될지 몰라도 지금 연습하는 곡을 갑자기 더 잘 불게 되진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친구가 있었다. 자신은 언젠가 신해철의 노래로 신해철에 관한 뮤지컬 대본을 쓰고 싶은데,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짠 등장해 소위 처녀작으로 대박을 치고 싶다는 거였다. 나는 물어보았다. 그렇다면 신해철 곡에 대한 저작권부터 확보해야겠네? 먼저 유족의 허락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 애는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신해철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서 그 애가 하는 일이라고는 사람들을 만나 술을 마시며 그 멋진 아이디어를 떠벌리는 것 밖에는 없었다. 당연히 대본 한 줄 쓴 적도 없다. 처녀작으로 대박을 치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전혀 엉뚱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 애의 머릿속에만 있는 신해철에 관한 천재적인 뮤지컬은 영영 세상에 나오지 못 할 것이다.


모차르트를 연주하려면 모차르트를 연습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바흐를 연습하면서 모차르트를 연주하겠다고 말한다. 때로는 바흐를 연습하면 모차르트는 그냥 저절로 연주하게 되는 기적을 바란다. 나도 자주 그래 왔다. 이 일을 하면서 저 일을 이루어야지 막연한 생각만 했다. 그건 꿈이 아니라 망상이었다. 남들은 내가 바흐를 연주하든 모차르트를 연주하든 관심이 없어도, 자신만은 내가 어떤 음악을 연주하고 싶은지 알리라.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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