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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Jan 11. 2019

아크로폴리스를 보고 인생이 시시해졌다

아테네

그리스 하면 산토리니가 떠오르고 왠지 그리스 어디를 가도 하얀색과 파란색이 어우러진 낭만적인 분위기가 연출될 것만 같다. 하지만 아테네의 첫인상은 참으로 별로였다. 건물 곳곳에 지저분하게 그려진 그라피티와 우울한 도심 분위기는 경제위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고, 보통의 유럽 도시에서 느끼는 여유도 느낄 수 없었다. 아테네에서 꼭 봐야 한다는 아크로폴리스에도 기대가 없었지만 별 다른 선택지도 없어서 가야만 했다. 어디서 버스를 타야 하는지 몰라 정류장에 서 있는 무뚝뚝한 인상의 아저씨에게 물었더니 인상과는 달리 아주 자세히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다. 버스를 함께 타고 내린 뒤, 매표소에서 표를 사는 것까지 도와주신 덕에 아크로폴리스까지 아주 쉽게 도착할 수 있었다. 이때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고, 아테네에 대한 인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역시 겉모습이 다는 아니구나라는 당연한 깨달음과 함께.


그 뒤에 펼쳐진 장면은 정말 예측불가였다. 

아크로폴리스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굉장한 충격을 받아버렸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쭉쭉 뻗어있는 원형의 대리석 기둥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입구는 그야말로 시작에 불과했다. 니케 신전이 있는 곳을 지나 파르테논 신전에 도달했을 때 압도적인 미의 충격은 최고치가 되었다. 


 "세상에나, 고대 그리스인들의 미적 감각은 정말로 신을 감동시키고도 남았을 거야...!"


물론 신전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부식되고 마모되어 온전한 모습을 한 것이 하나도 없다. 대부분의 신전이 복원 중이라 여기저기 끼워 넣은 것처럼 기둥의 색이 다르고, 일부는 부서져있고, 세월의 때가 잔뜩 끼어있다. 그런데, 그런 모습조차 아름다웠다. 아주 곱게 나이 들어 과거의 미모의 그림자가 여전히 배어있는 노년의 여성을 보는 듯했다. 


파르테논 신전 앞에 한참 앉아 스케치를 하고 있으니 아크로폴리스의 신성한 기운이 내부로 전해져 오는 듯했다. 정말로 충만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파랗디 파란 아테네의 하늘에는 풍성하고 기묘한 생김새의 구름이 잔뜩 걸려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저 구름을 보고 그리스 신화의 신들을 떠올린 것이 아닐까? 


이런 혼자만의 상상에 빠져 있는데 턱시도를 입은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짓궂은 소년들이 쓰다듬거나 안아 들어도 덤덤하기만 하던 녀석은 신전의 기를 듬뿍 받았는지 아주 당당하고 여유 만만했다. 맑은 하늘, 아름다운 신전과 고양이, 모든 게 완벽한 날이었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 이후로 유럽 어디를 다니더라도 나는 큰 감동을 받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이, 인간 존재 자체가 시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그런 신전을 만든 것도 인간인데, 인간이 만든 것에 비해 인간은 어째서 그렇게 초라하게 느껴질까? 


언젠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아크로폴리스에 가게 될 날을 기다린다.

그때는 '에이, 별거 아니었네'라고 생각할 만큼 아크로폴리스를 담담하게 대할 수 있을까?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과 턱시도 고양이>
<컬러링 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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