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투어와 원효대사

제주 그림 여행1

by MIA

아침부터 미세먼지 경보 발령 문자를 받고 공항 가는 버스를 탔다.

공항 가는 길은 날씨가 어떻든 설렌다.

여행에서 가장 기대감이 높고 홀가분하며 기분 좋은 시간은 비행기를 기다릴 때 아닐까.


<공항에서 비행기 기다리며 스케치> <채색 컷>


<뜻하지 않은 행운>


'승무원을 이겨라' 가위바위보 대결에서 최후의 2인이 되어 다른 승객과 결투(?) 끝에 최후의 승자에게 주는 핸드크림을 얻었다. 원래 당첨운이 좋은 편이긴 하지만 가위바위보 대결에서 모두를 이겨보긴 처음이라 괜히 뿌듯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소소한 데에 운을 써 버려도 괜찮을 걸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증쇄를 찍자'라는 만화를 보면 출판사 사장인 00 씨는 평소에 작은 운을 모으기 위해 길거리 쓰레기 줍기, 남 돕기, 자판기에 동전 남겨놓기 등을 실천한다. 이렇게 모은 행운이 모두 자신의 출판사에 집중되길 바라는 행동인데 그 덕인지 출판사는 큰 성공을 이어간다. 그는 출판사 말고 다른 곳에서는 행운을 일절 바라지 않는데, 일례로 거액의 복권에도 당첨 돼지만 출판사의 운을 뺏어갈까 봐 복권을 염소 먹이로 줘 버리고 만다.

00 씨라면 핸드크림 따위 다른 사람에게 줬을 테지만, 나는 크게 기뻐하며 내 화장품 파우치에 넣었다. 작은 행운을 모으기는커녕 소소한 데에 운을 다 써버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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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을 모으지 않고 쓰러 다니는 일은 제주에 내려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스타 항공 티켓이 있으면 'JEJU PASS 맛집' 이라는 앱을 다운로드하여 무료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 아닌가. 바로 앱을 다운로드하여 보니 무려 13개 지점에서 커피를 제공했다. 숙소로 가는 길에 있는 카페 몇 군데를 들러 보기로 하면서 뜻밖의 제주 카페 투어가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간 카페는 직접 밭에서 기른 고구마로 고구마 말랭이를 만들고 고구마 음료도 만드는 이름도 '고구마 카페'였다. 카페 문을 열자 순하게 생긴 대형견이 다가왔다. 작은 강아지도 바닥에 엎드려 있다 내 쪽으로 다가와 소파 천을 핥기 시작했다. 무료 커피만 시키긴 뭣하여서 고구마 말랭이를 함께 샀는데, 큰 녀석이 눈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주인 말로는 녀석이 고구마 말랭이를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고구마 말랭이를 뜯어서 두 녀석에게 나눠주니 침을 질질 흘리며 잘 받아먹었다. 먹을 것 앞에서 얌전해지는 강아지는 어찌나 귀여운지... 나는 주로 고양이만 키워봐서 강아지가 고구마를 기다리며 차렷 자세(?)로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모습이 너무나 기특하고 신기했다.


<강아지가 있는 카페 풍경>






아무리 봐도 똑 닮은 것이 부자지간임이 틀림없는 녀석들은 고구마를 맛있게 얻어먹고 똑같은 자세로 누워서 잠들었다. 편안히 잠든 녀석들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니 행복이 별건가란 생각이 들었다.


<카페 문을 열면 보이는 풍경>


카페 문만 나서면 드넓은 들판에 바다가 펼쳐졌다. 때마침 주인과 산책을 나간 부자견은 들판을 마구 뛰어다녔다. 무릇 개로 태어났다면 이렇게 살아야 행복하겠지. 도시에서 복닥거리며 사는 인간보다 어쩌면 더 행복할 제주의 부자견,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길.




그다음으로 들른 곳은 <바다의 술책>이라는 작명 센스가 멋진 작은 북카페였다.

서점 겸 북카페로 운영되고 있어 손님들은 모두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카페의 예쁜 꽃병>


북카페에는 음악과 고요함과 평화만이 흘렀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전망 좋은 서점 겸 카페를 운영하며 유유자적하게 사는 것은 우리 모두의 로망 아니더냐. 물론 현실은 보이는 것보다 녹록지 않겠지만, 친절한 미소가 인상적인 여자 사장님의 얼굴에서 후광을 보았다.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



<몽상 드 애월>


마지막으로 GD 카페로 유명한 몽상 드 애월에 들렀다.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은 힙스터들의 성지 같은 분위기의 카페로 예상대로 커피는 비쌌으며 안팎으로 관광객들이 그득했다. 제주도 카페는 일단 전망만 확보하면 반은 성공한 셈이다. 거기다 유명인의 카페라는 홍보가 더해지면 손님 끌기는 식은 죽 먹기. 여기는 너무나 관광지 느낌이라 앞서 들렀던 작은 카페들의 한적한 분위기가 그리웠다. 카페에 GD가 있는 것도 아닌데 대체 사람들이 왜 이렇게 몰려드는지 이해할 수 없는 나는 옛날 사람인가...;




<유럽풍 게스트 하우스>


한량처럼 카페 투어를 마치고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이름도 <토마스 하우스>인 숙소는 유럽의 어느 가정집 분위기가 물씬났다. 건물 외관이며 내부 인테리어 소품 하나하나가 모두 유럽의 분위기가 났는데, 벽에는 친애하는 에곤 쉴레의 그림까지 걸려있었다.


결정적으로 원효대사의 해골바가지 깨달음 같은 사건이 있었으니, 밤에 자려고 누우니 어디선가 개구리울음소리로 추정되는 소리가 들리는 것 아닌가. 친구와 나는 "와, 제주도라 개구리울음 소리도 들리고 참 운치 있네." 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개구리울음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날 샤워를 하며 개구리울음소리의 근원지를 알게 되었으니, 바로 목욕탕 보일러였다. 보일러는 개굴 또는 끄악 하고 울어대며 열심히 뜨거운 물을 데우고 있었더랬다.


아, 존경하는 원효대사님!

어리석은 중생은 제주도까지 와서야 이 세상의 온갖 현상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카카오톡 채널에 소개됐는지 조회수가 3천을 넘었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이킷과 댓글, 구독은 작가를 춤추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