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입장이 되어보기

ㅡ 《사물의 시선》을 읽고.. 연습 中

by 책사이


나는 그녀 손길 닿는 곳곳에 있어요.


그녀가 외출하는 가방에,

그녀가 식사하는 식탁에,

그녀가 생활하는 테이블에,

그녀가 단장하는 화장대에,

심지어는 은밀한 화장실에서도

나는 그녀의 모습을 몰래 볼 수 있어요.


나는 그녀가 생활하는 모든 공간에 늘 그녀와 함께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항상 제게 눈길을 주는 건 아니에요.


감기에 걸린 그녀가 코를 팽하고 시원스럽게 풀 때

그녀의 친구들과 밥 먹다 입주변에 음식물이 묻었을 때

그녀의 조카가 음료를 마시다가 옷을 적셨을 때


비로소 그녀는 나에게 눈길을 주고 손을 내밀어 줍니다.


잠시지만 그녀가 내게 눈길을 주는 그 순간을 기억해요.


그녀의 손이 닿고 잠시 후면

구겨지고 뜯겨진 나는

흙탕물에 뒹군 아이처럼 더렵혀지기도 하고

오물이 묻은 채

때로는 깜깜한 쓰레기통으로

때로는 변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

그녀를 영영 볼 수 없게 되기도 하지만..


그거 알아요?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았을 때

그녀가 슬픈 영화를 보거나 가슴 아픈 일을 겪었을 때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던 것도 나라는 걸.


내 몸이 점점 홀쭉해지다 이내 사라져도 좋아요.


나를 쓸수록 그녀의 슬픔이 풀린다면

그런 것쯤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어요.


난 다시 그녀의 곁으로,

원래의 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그녀가 다시 웃는 얼굴을 되찾기를 바래요.




휴지의 한마디ㅡ


다음 생에는 그녀 곁에 좀더 오래도록 머물 수 있는

손수건으로 태어나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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