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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이 May 08. 2017

물풍선


꺅~!끼약~!


1교시 쉬는시간.

물을 가득 채운 조그마한 풍선들이 여중생들 발 앞에서 무참히 터진다. 교실 여기저기에서 외마디 비명이 튀어나온다. 꺄르륵 청량한 웃음 소리와 함께.


어느 무더운 여름 해, 작은 풍선에 물을 가득 채워 서로에게 던지는 게 유행이던 시절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교실에서건 복도에서건 물풍선을 던져 댔으니 아이들은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 수업하기 일쑤였고 교실 바닥은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급기야는 교내에 방송이 울려퍼졌다.

앞으로 물풍선을 학교에 가져오거나 터뜨릴 시에는 엄중한 벌에 처하겠다고.


며칠 후, 아침 주번 조회 시간.

공교롭게도 주번이었던 나는 허겁지겁 1층 중앙현관으로 달려갔다.

등굣길에 친구가 건네 준 작은 물풍선을 만지작 거리면서. 뒷일은 생각하지 못한 채..

그날따라 유난히 손에 쥐어진 말랑말랑한 풍선의 느낌이 좋았다.


각 반의 주번 학생들이 나란히 줄을 맞춰 서 있고 인상을 팍 쓴 체육 선생님의 조회가 시작되었다.

무의식 중에 손을 교복 자켓 주머니에 넣고 조물락조물락 거리고 있던 때,

체육 선생인 그가 "너, 나와" 라며 손짓을 했다.

'딱 한 놈만 나한테 걸려봐라' 그는 분명 벼르고 있었으리라.


내 손에 든 물건의 정체를 알아차린 순간,

그의 손이 무자비하게 왼쪽 뺨을 향해 날아왔다.

눈 앞이 번쩍하더니 몸이 휘청했다.

그 다음은 어떻게 조회가 진행되고 끝이 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머릿 속엔 온갖 수치심과 억울함으로 가득찼기에.

그 날은 하루종일 뺨이 얼얼했다. 그 순간을 떠올리고 있는 지금도.


나는 홀로 복수를 꿈 꿨다.

교무실에서 그 선생이 앉는 의자에 접착제를 잔뜩 발라놓거나 그가 타고 다니는 차 타이어를 송곳으로 푹 찔러 가차없이 펑크 내놓는 거다.

매일 밤 집에 찾아가서 벨을 눌러대거나 저주의 편지를 우체통에 넣어놓는 건 어떨까.  아이들을 괴롭히면 삼일 안에 죽게 된다 뭐 이런 식의.

내게 초능력이 있었다면 우주 밖으로 날려버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 내가 실질적으로 한 복수라곤 체육 선생이 지나갈 때마다 눈을 있는 대로 흘기거나 그의 뒤통수에 대고 메롱하기, 매일 밤 꿈속에서 내가 그 선생의 뺨따귀를 수도 없이 날리는 것이었다.

언젠가 로알드 달 소설을 읽었을 때 주인공 마틸다가 어른들을 골탕먹이는 장면에서 나는 체육 선생을 대입해서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 선생은 평소에도 학생들에게 악명높은 선생이었다. 마틸다에 나오는 트런치불 교장처럼 말도 안되는 걸로 트집 잡고 손찌검을 해댔다. 덩치는 반대지만.

체육 선생의 체격은 왜소하고 깡말랐으며 얼굴은 담배에 쩔어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체육시간에 아이들을 종 다루듯이 하고 손에는 항상 나무 막대기를 들고 다녔다. 아이들의 옆구리, 머리 등 신체 찌르기 용으로.


그리고 매일 추리닝 차림으로 앉을 때는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아이들을 호령했다. 사소한 잘못에 주의를 주거나 타이르기보다는, 불같이 화내기 일쑤였고 아이들 앞에서 혼나는 학생의 자존심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이면 성희롱감이었을 행동도 서슴지 않고 했다.

여학생들의 귓볼을 만지작거리는 건 예사였고 소름 끼치는 손으로 일부러 속옷을 스쳐 지나가며 등을 쓰다듬어 댔다.


내가 붙인 그 선생의 별명은 '개불'이었다.

츄리닝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실루엣이 딱 그것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그 선생한테 당한 이후 나는 횟집에 가면 징그러운 생김새의 개불을 시켜 눈을 꼭 감고 아그작 아그작 씹어먹었다.


마침내 우리반 아이들이 작당모의를 시작했다. 그 선생에게 어떻게 복수해야 좋을지.

며칠동안 그 선생이 지나가는 행로를 꼼꼼히 살폈다.

3층 여자화장실이 제격이라 판단한 우리는 그 선생이 지나가는 타이밍을 노려 위에서 그를 향해 오줌봉지를 투척했다.


"으악!"

몇 초도 안되어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성공일까? 어떡해! 우린 죽었다.'

일순간 통쾌하면서도 공포감에 휩싸였다.

결과는 아쉽게도 빗맞았지만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지며 오줌으로 꽉 찬 검정 봉지가 터져 버렸다.

사방으로 튄 오줌 물살이 분명 그 선생의 남색 추리닝 바지에도 튀었을 거고  허연 운동화도 누렇게 얼룩덜룩해졌을 테지.

우리는 얼른 창문 밑으로 몸을 숨겼다.

그의 머리 위에 제대로 맞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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