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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이 Aug 05. 2017

영화 <박열>, <군함도>, 그리고 <택시운전사>

ㅡ 영화에 담긴 '팩트'와 영화가 주는 '임팩트'


우리나라의 역사 속 감춰진 사건 혹은 인물들을 재조명한 영화들이 계속 제작되고 개봉 전부터 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뜨겁다. 이런 작품들은 빼놓지 않고 꼭 챙겨본다. 알아야 하고 기억해야 하기에.

특히 요근래 이준익 감독님의 <박열>(6월 28일 개봉), 류승완 감독님의 <군함도>(7월 26일 개봉), 그리고 장훈 감독님의 <택시운전사>(8월 2일 개봉) 세 편 모두 표현 방식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각각 나름의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인물의 고뇌와 신념을 보여준 <박열>


드래곤볼의 거북도사를 닮으신 이준익 감독님은 '고증 요정'이라 불릴 정도로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고증에 충실한 작품을 만드는 분이시다. 이준익 감독님은 주인공 뿐만 아니라 조력자와 조연까지 존재감을 뿜게 한다. 작품들마다 배우를 캐스팅하는 눈썰미도 탁월하시고 배우에 대한 신뢰도도 굉장하신 것 같다. <동주>에서 동주 역의 강하늘, 그의 친구 송몽규 역의 박상민, <박열>에서는 일제강점기 아나키스트이자 호기로운 독립운동가 박열 역의 이제훈과 그의 연인 후미코 역의 최희서, 두 작품에 이어 <군함도>에서도 일본인 간부로 출연한 배우 김인우(개그맨 김원효씨와 조금 닮았다고 느꼈는데 나만의 생각은 아닌 듯)까지.

특히 <박열>에서 후미코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낸 최희서는 '잘 알려지지 않아야 하고 연기되고 일본어 되는 배우는 그녀 하나 뿐'이라는 이준익 감독님의 신뢰로 <동주>에 이어 캐스팅된 것이라고 한다.

또한 <동주>에서 동주와 몽규를 심문하는 일본 형사 역, <박열>에서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파렴치한 거짓말을 만들어내고 그 죄를 박열에게 뒤집어씌우는 악랄하고 비열한 일본 관료 역, <군함도>에서 하시마 탄광의 악랄한 관리 소장 시마자키 역을 맡은 배우 김인(그는 재일교포3세로, 한국에 와서 찍은 30여 편의 작품에서 대부분이 일본인 역이었다고 한다)는 이준익 감독님이 '대안이 없는 캐스팅'이라고 할 만큼 역할에 너무 잘 맞았다. 비록 분노를 부르는  악역이지만.


이준익 감독님의 인터뷰 중, 영화 <동주>와 <박열>의 저예산 제작 이유에 대해  인상깊은 답변이 있었다.'실존 인물들의 진심을 전달하는데 화려한 볼거리와 과도한 제작비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또한 '소외되고 실패한 인물들에 애정이 간다'는 감독님 말씀도 영화를 보면 수긍이 간다.

그렇기에 이준익 감독님의 다음 작품 <변산>

(주연 : 박정민)도 기대가 된다.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상상력을 더해 재창조한 <군함도>


그야말로 관심 초집중에 영화 내ᆞ외적인 논란으로 기대감이 점점 걱정으로 바뀌었던 영화 <군함도> 역시 직접 보고 오길 잘했다.

<베테랑> 감독님답게 러닝타임 내내 몰입도 긴장감 최고였다.

이전에 한수산 작가님 소설 <군함도>를 읽고  관련 글을 쓴 적이 있지만, 한수산 작가님은 무려 27년간 군함도 관련 증거와 자료들을 직접 취재하고 고증한 끝에 군함도의 실상부터 나가사키 피폭에 이르기까지 비극적 시대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소설 <군함도>에 구체적으로 담아냈다.

반면, 류승완 감독님의 영화 <군함도>는 '군함도'라는 비극의 공간과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징용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소설 원작으로 한 작품은 아니기에 한수산 작가님의 소설 <군함도>와는 확실히 차별화된 작품이다. 하지창작의 큰 의도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화 전반부에서는 각 인물들이 영문도 모른 채 군함도에 끌려들어오게 되면서 남자들은 1000m 깊이의 해저 탄광에서 가혹한 노역에 처해지고 여자들은 유곽으로 끌려간다. (실제로 군함도에서 조선인의 노동력을 착취한 일제의 만행은 나가사키에서도 반복되며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조선인은 차별과 멸시를 받았다.)

어둡고 습하고 철저히 고립된 공간이 배경이니만큼 영화에서도 파란 하늘 한 점, 환한 빛 한번 제대로 못 본 것 같다.

이후경 미술감독은 직접 군함도를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군함을 닮은 지옥도 하시마섬을 실제와 흡사한 세트장 안에 재현해냈다. 바다 한 가운데 사방이 방파제로 둘러쳐진 섬 안으로 바닷물이 들이치는 장면까지.

내가 저 안에 갇혀 있었다면..집으로 고향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할까.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을 시도할 것인지, 죽지 못해 살 것인지, 악착같이 버텨낼 것인지, 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인지 생각만으로 암담하다.

영화 후반부의 탈출 장면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가정이었을지라도 지옥같은 섬을 벗어나고픈 간절한 욕구를 반영한 것이었으리라. (<군함도>의 시나리오상 제목은 <군함도-필사의 탈주>였다고 한다. )

소설 <군함도>에서도 주인공들이 목숨 걸고 군함도를 탈출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하다. 한수산 작가님 말씀에 의하면 나무 등걸 같은 걸로 휘저어 나가는데 하시마 섬의 조류가 빙빙 도는 특이한 곳이어서 헤엄쳐 나가기가 쉽지 않은데다 적발되면 배를 타고 쫓아간 감시원들이 노 같은 걸로 때려서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영화 앞 부분에서 아이들이 탈출하다 붙잡히는 장면은 이와 흡사했다.

주연부터 조연 단역 배우들의 몸 사리지 않는 열연도 영화의 몰입감을 높였다.

아첨하는 능청스러운 연기부터 끝까지 딸에 대한 부정을 보여준 악사 이강옥 역의 황정민, 앙큼한 연기로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했던 그의 어린 딸 소희 역의 김수안, 같은 조선인이면서 제국주의 권력에 기생하는 인물군상을 보여준 노무계원 역의 김민재, 분노케하는 반전의 인물 윤학철 역의 이경영, 뽀얀 얼굴에 숯검댕 잔뜩 묻어도 또렷한 눈빛은 숨길 수 없었던 정의로운 역할의 송중기, 그리고 경성 최고의 주먹으로 거침없는 인물 최칠성을 연기한 소지섭. 이런 연기도 마다 않고 찍다니! 영화 초반 훈도시(일본의 전통 남성 속옷)만 입고 맨몸으로 액션 연기를 보여준 장면은 충격이었지만 이정현과의 엔딩씬에 이르러 소간지로서의 면모를 여과없이 느낄 수 있었다.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닌 위안부 여성 오말년 역을 맡은 이정현 배우의 마지막에 총 잡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최칠성과 오말년 두 사람과의 관계가 소설 <군함도>의 우석과 유곽에서 일하는 금화를 생각나게 한다. 둘의  운명 역시 안타깝고 비극적인 결말이었기에)

동정ᆞ연민에서 시작된 감정이지만 서로를 포용하는데 그런 측은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이 다면 약자를 짓밟고 군림하고 전쟁으로 무고한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끔찍한 일은 을 것이다.


최칠성은 그녀와 같이 나간다는 약속은 못지켰지만 자신에게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조선을 배반한 자를 '이불처럼 접어버린다'는 약속은 지켰다.

반민족주의 행위를 처단한다는 송중기의 대사도 시원스럽다.

우리는 아직 청산해야 할 과거가 남아있다. 이 영화 속에 보여지는 인물들의 친일 행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끼리 서로 헐뜯고 죽여야 하다니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그리고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좋아할 자가 누구인지는 뻔하다.  영화에서처럼 현실에서도 우리끼리 싸우는 걸 바라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나라가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렇기에 아픈 과거를 본보기 삼아 우리가 더더욱 견고하게 지켜야 한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군함도는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하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그 이유는 인류가 저지른 범죄적 문제는 후대에 알려 이런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서는 안 된다는 교훈으로 삼기 위함이다) 강제징용 사실을 은폐하고 근대화에 공헌한 산업 유산이라는 명목을 내세워 역사를 왜곡한 채 관광객들에게 홍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잡아야 할 역사적 사건들이 있다면 소설로 영화로 다큐로 뮤지컬로 연극으로 계속해서 만들어져 다양한 방법으로 바르게 재현시켜야 한다. 한수산 작가님은 그게 바로 문화인들의 책무이며, 청산되지 않은 과거에 분노하고 슬퍼하고 그곳의 희생자가 됐던 분들의 원한을 풀어줄 수 있는 길들을 계속 만들어 가는게 우리 후대가 해야 될 책무라고 말씀하셨다.

영화 <군함도>에서는 탈출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한수산 작가님의 바람처럼 원폭, 피폭 당시와 한국인들의 인간, 휴머니티를 살린 내용들도 영화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부디 이런 관심이 식지 않도록.


이렇게 과거의 역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게되고 관심을 갖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고 영화로 제작해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한 일이라 생각한다.

영화 <군함도>는 그 중에서도 강제징용 노동자를 다룬 첫 영화로서 의의가 크다. 일본 정부와 언론에서 이 영화를 비판한다는 것은 그만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대중영화 감독이기에 대중이 몰입해서 만드는 것도 중요했다. 많은 관객들이 관심을 가지고 봐주시니 일본이 긴장을 하고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역사에 대해 더 알고,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 생각은 다시 한 번 들었다. 역사 앞에서 겸손해져야 겠다는 생각도 했다.'

ㅡ 류승완 감독님 인터뷰 중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어느 범위까지 받아들이냐는 관객 각자의 몫이며, 어느 작품이 더 낫다에 대한 의견도 분분할 것이다. 또한 어떤 작품이 더 임팩트있게 와닿느냐도 각자 다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만큼은 명확하지 않을까.


실화를 바탕으로 그날의 현장을 재구성한 <택시운전사>


상영 시간 간격이 <군함도> 못지 않게 촘촘하다. 어제 낮시간에 관람했는데도 좌석이 꽉 찼다.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는 중간 중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릴 수밖에 없었<택시운전사>.


이 영화는 실화(1980년 5월, 광주로 간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택시 운전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 되었으며, 영화는 경쾌한 음악과 함께 시작한다.

서울 택시 운전사 만섭(송강호)은 밀린 월세를 갚을 수 있는 돈 10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독일인 손님 피터(토마스 크레취만)을 태우고 광주로 향한다.

군인들이 출입을 통제하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만섭은 되돌아가고자 하나  

피터의 '노 광주 노 머니'라는 말에 예상치 못한 '그날', 5ᆞ18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인간을 악랄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약한 자를 무참하게 억누르고 그 위에 군림하려는 권력과 야욕이 무섭고 치가 떨린다.

영화 속에서 송강호는 어린 딸에게 '살다보면 억울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참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참고 참으면 이용당하고 짓밟힌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군부 독재 정권의 지시에 따라 군인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광주 시민들에게 인정사정없이 몽둥이를 휘두르고 머리채를 잡고 발로 밟고 두드려 팬다. 할아버지는 맞고 누군가는 질질질 끌려간다. 광주에서 벌어진 민주화 운동은 국내외 언론을 통제한 정부에 의해 철저히 은폐ᆞ왜곡된다.

광주의 진실을 전세계에 전하기 위해 독일 기자인 피터는 위험을 무릅쓰고 촬영을 강행한다. 제3자이자 외부 관찰자였던 만섭은 혼자 두고 온 딸에 대한 걱정과 갈등을 겪지만 광주의 참혹한 광경을 직접 목격하면서 피터를 돕게 된다.

참담한 상황 속에서도 인정을 잃지 않는 인물들의 모습이 뭉클한 감동을 준다.

만섭의 택시 안에서 백미러를 통해 보이는 인물의 표정과 뒤에 펼쳐지는 풍경에서 만감이 교차한다.

'형씨가 뭐시가 미안혀라. 나쁜 놈들은 따로 있구만.'

이라며 인간미 넘치는 광주 택시운전사 역할의 유해진이 만섭에게 하는 말처럼 정작 사과해야할 '나쁜 놈'들은 눈하나 꿈쩍 안한다.

데모하려고 대학 갔냐는 만섭의 물음에 '대학가요제 갈라고 대학갔는디요.'라면서 순박한 웃음을 짓던 대학생 구재식( 류준열)의 못다핀 꿈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끝에 만섭은 피터를 태우고 서울로 올라온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 언론에 광주의 참상이 전해진다.

실존 인물인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는 2005년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로부터 특별상을 받았다.

영화가 끝나고 2015년 그의 인터뷰 모습이 비춰진다. 1980년 자신의 취재를 도와주었던 택시기사 '김사복'과 연락이 닿으면 한국으로 날아와 변화된 대한민국을 보고싶다던 그의 애절한 목소리. 안타깝게도 김사복씨를 찾지 못하고 2016년 1월 25일 79세의 나이로 독일에서 생을 마감한 그는 생전 그의 바람대로 우리나라 광주 북구 망월동 묘지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끝으로 영화 <군함도>와의 비교에 대한 장훈 감독님의 답변과 <택시운전사>에 대한 공감가는 생각을 옮겨본다.


"<군함도><택시운전사>도 다 한국영화고, 아픈 역사를 바라보고 있잖아요. 다 잘되면 좋죠.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충분하게 담론화 되지 못했기에 계속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영화는 경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예요. 모든 감독님이 다 마찬가지일텐데, '어떻게 잘 만들까?'를 고민하지 '어떻게 이길까?'를 생각하진 않아요. 영화마다 의미와 재미가 있는 거니까. 관객들도 그렇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모두가 알고 있는 1980년 광주를 배경으로 하지만 무겁게만 보여주지 않는다. 그냥 재미있고, 따뜻한 대중영화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무겁게 보는 게 꼭 정답은 아니다. 역사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보고, 그 다음 해석은 극장 문 나서는 관객들의 몫이다. 그 후에 무거워질 수도, 가벼워질 수도 있다."

- 장훈 감독님의 인터뷰 답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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