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가 그치고 다시 내리쬐는 햇빛 아래 서면 마치 어떤 시련 속을 지나온 듯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 몸이 거쳐 오지 않았는데도 지나온 것 같은 날들. 어떤 깊은 사연을 겪은 것처럼 가슴이 싸하고 아련한 것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성장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빗방울은 내리는 것이 아니다. 지나가는 것이다. 빗방울의 속성이 구름인 것처럼, 흘러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나가는 그 빗방울을 겪으며 나무처럼 성장한다. 영혼이 푸르게 푸르게.
어떤 에너지처럼 혹은 메시지처럼, 이따금씩 되살아나 어깨를 툭 치고 가는 과거들. 그때마다 선뜻선뜻 잊으며 지금을 더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지나간 시간이 주는 연민 때문이 아닐까.
때론 그 힘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용기를 내기도 하고 눈부시기도 하고 두근거리기도 한다. 어쩌면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삶이란 비가 그친 후 거미줄에 매달려 있는 물방울처럼, 영롱하면서도 눈부시게 아프고 아름다운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먹고 살아야 하는 그 끈끈함에 사지가 매달려 있지만 삶은 너무 숭고하고 반짝이며 아름답다. 그래서 아프다.
ㅡ 권대웅 산문집 <당신이 사는 달>中
비가 내리길 바랐다.
비가 오면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비가 지나간다.
이 시련도 지나가겠지.
다시 햇빛이 내리쬔다.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