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하니’(가명)였다. 가장 좋아하는 친구 이름의 끝 글자인 ‘한’을 늘여서 바꾼. 내내 마음이 꺼끌거렸다. 너는 친구를 좋아하는 마음을 선택했다고 하지만, 나는 네가 너로 있지 못하는 것 같았으니. 어쩌면 이번 개명은 하나의 점이 아닐 테다. 어릴 때 아빠가 목을 매달았을 때에도, 오빠가 우울증에 걸려 하나뿐인 엄마가 그에게만 매달려있어야 할 때에도, 그냥 크고 예쁜 눈을 껌뻑거릴 뿐이라고 했다. 40도가 넘게 고열이 나도 울음 한번 없었다던 신생아 시절의 너의 기다란 선이었지. 정신없는 어머니의 눈이 아닌 마음 끝 한구석에 자리 잡을 뿐 너의 존재는 어디로 갔을까 염려가 되었다.
그 모든 것을 기다리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리려 할 정도로. 겨우 살아온 너는 여기에서 꽤 괜찮은 삶들을 보내는 듯했다.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고 적응하지 못했다더니 웬걸? 여기서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났고, 그 친구와 함께 놀다가 점심시간에 늦게 들어와 혼이 나기도 했다. 나는 약속을 지킨다는 게 얼마나 서로에게 중요한 일인지를 엄하고 무서운 표정으로 설명하면서도 속으로는 그저 잘했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느라 꽤 애썼다. 힙한 옷을 사느라 늦었다고 솔직히 말하는, 여지없는 어느 한 고등학생의 순간이 행복으로 색칠되었다 상상되니 말이다.
적당한 무표정으로 괜찮다고 말하던 너를 보며 나도 적당히 안심했던 걸까. 99일간을 굴에 있다가 한 줄기 빛을 발견한 짐승처럼 어느 날 너는 무작정 가장 높은 곳으로 달려들었다. 네 안의 수많은 문제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을 테지. 너는 입원이라는 동굴로 다시 들어가야 했다. 너의 안전을 위해 입원이 필요하다고 달래며 설명했지만, 이전 입원의 경험들로 ‘내가 원하지만’ 내보내주지 않을 거라며 너는 한참을 울었다. 왜 네가 원하는 것들을 말하는 건 지금에서야 된 걸까.
이제야 말하지만 나는 그 당시 너와 나이가 비슷한 다른 아이의 죽음을 마주한 직후였다. 입원하고 적응이 어려워 울기만 하고 있단 이야기를 듣고 장례식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네게로 갔다. 눈물 보이면 안 돼하며 마음을 꼭꼭 여미고 들어갔지만, 절대 담담할 수 없었다. 죽지 말아 달라고. 네가 없는 나는 너무 괴로울 것 같다고. 나를 위해서라도 살아달라고. 네 마음 모르지 않는다고. 잠시만 입원으로 우리 괜찮아 지자고. 곧 퇴원할 수 있다고. 나가면 우리 지난번처럼 점심시간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처절하게 구애하듯 외치는 내 마음은 하나도 안 들리는 것 마냥 그저 너의 큰 눈에서는 무표정으로 쉬지 않고 눈물이 흐를 뿐이었다.
다행히도 무사히 입원을 마친 너는 다시 내 품으로 돌아왔다. 전에 없던 햇빛 받은 따뜻한 표정을 보이며, 읽었던 책의 내용을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너의 슬픔으로 입시학원을 잘 다니지 못해 강제로 그만두게 되었던 너는, 이제는 예쁜 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따라 디자이너가 되겠다며 준비를 차근차근히 하기 시작했다. 또 한 번 진로에 열심인 고등학생을 보는 나는 다시 한번 행복했다.
이후로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오셨다. 그날에, 내가 울며 이야기하던 그 날에 너의 마음이 많이 바뀌었고, 그로 인해 지금 살아있다고. 외로웠던 어머니는 혼자 버티지 않아 다행이었다고 했다. 나는 어머니께 말씀을 돌려드렸다. 우리 아이가 지금 잘 버티는 건 그 애여서라고. 그리고 그 아이의 어머니가 어머니기 때문이시라고. 아이가 여태까지 잘 버텨주었으니, 이제는 우리 차례라고.
내 품에 안겨 이 세상이 참혹하고 잔인하다며 울던 아이야. 네 삶에 네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을 끌어안고 있던 아이야. 나중에 절교하게 되는 친구의 이름을 따라 하던 아이야. 미안하게도 삶은 다시금 살기 싫어질 때가 온다. 우리는 이 위기를 버텼으니 성급하게 해피엔딩이 오기를 바라지. 애석하게도 그러지 않을 때가 온다. 우리는 또다시 아플지도 모른다.
기다리는 것을 너무 잘하던 내 아이야. 우리 다른 기다림을 해보자. 내가 너의 삶의 작은 순간에 잠깐 등장했을 때에 큰 변화가 온 것처럼, 나에게도 네가 와서 너무나도 행복한 시절이 왔으니. 분명 네게도 행복이 찾아올 테다. 나는 원한다. 너의 행복의 순간들이 조금 더 잦아지길. 조금 더 깊어지길. 조금 더 그 텀이 가까워지길. 그러다가 그 시간의 텀을 밟고, 그저 예쁘게 춤추던 모습대로 앞에 놓인 삶을 어여삐 유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