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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ileall Sep 14. 2020

다르다 하여도...

대한민국 헌법- 주권과 권력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학생들이 모르고 한 행동이어도, 그것이 인종차별인지 아닌지를 다시금 구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지 못한 우리가 늦었을지라도, 뒤늦었어도 학생들이 구분하지 못한 행동을 함께 인정하고 책임져야 하지 않을까. 선생님들이나 부모님들, 언론 종사자들 등 모든 한국 사람들이 함께 돌이켜 보고 학생들 스스로 바로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



  아직도 이런 일이...


  방송인 샘 오취리가 TV 프로그램 <대한 외국인>에서 하차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샘 오취리가 의정부고 학생들이 찍은 ‘관짝 소년단’ 졸업 사진을 비판한 이후 한 달이 흐른 시점이다.
관짝 소년단이란, 의정부고 학생들이 독특한 졸업사진을 남기기 위해 아프리카 가나의 장례 풍습을 패러디한 영상 제목이다. 이러한 제목으로 패러디하면서 학생들은 얼굴을 검게 칠하는 분장을 했다.

  오 마이, 여기에서 바로 느낌이 오는데 의정부고 학생들은 몰랐구나.

  내가 고등학생 때다. 국어 선생님과 윤리(지금은 생활과 윤리) 선생님께서 흑인에게 ‘니그로’라고 말하거나 ‘피부가 검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알려 주셨다. 인종차별 발언이고 흑인들이 몹시 불쾌해한다고 말해 주셨다. 그런 말을 들으면 흑인들은 거센 반응을 보일 거라고 조심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말을 아예 금하라고 강하게 말씀하셨다.
  샘 오취리는 SNS에서 약한 반응을 보였다.
“문화를 따라 하는 건 알겠는데 굳이 얼굴 색칠까지 해야 돼요?”
“저희 흑인들 입장에서는 매우 불쾌한 행동입니다, 제발 하지 마세요!”
의정부고 학생들이 흑인을 불쾌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해도 샘 오취리를 비롯한 모든 흑인들에게 불쾌감을 준 건 확실하다.
  샘 오취리 기사를 쓴 김종성 기자가 말한 것처럼, 왜 사람들은 ‘블랙 페이스’를 지적한 샘 오취리 발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왜 인종 차별한 것을 인정하지 않았을까.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반성했으면 좋았을 텐데...

샘 오취리가 쓴 메시지를 공격하고 지워 버릴 필요가 있었을까.

이 기사를 함께 읽은 K가 ‘백인이었어도 이랬을까’라는 푸념에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현재는 한국도 다문화 사회 이건만, 샘 오취리가 한국인에게 알려주는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사과했으면 좋았을 텐데. 학생들이 모르고 한 행동이라며 그 냥 실수를 지나쳐 버리고 편들어 주기까지 하다니. 그것도 모자라 샘 오취리의 안전과 생업에도 타격을 주는 비겁한 행동까지 저지르다니.



  대한민국 헌법을 살핀다.


  헌법 제1장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이 주인임을 명시하고 있다.

  제반 국가기관(대통령, 국회, 법원)이 행사하는 모든 권한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그 정당성은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김문헌,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 원장)
  대한민국의 최고 존엄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대통령은 국민을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자리다. 대통령과 공무원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계속 감독하고, 비판하고, 야단쳐야 하는 것이 주인 된 국민의 역할이다.(한인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 제2장 제10조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가진다.’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최고 가치이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국가와 국민 간의 관계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모든 사람은 존엄하고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자유롭고 평등하고 존엄한 인간,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들기 위해 우리 법체제가 제대로 기여하고 봉사하고 있는지 계속 확인하고 점검해야 한다.(한인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모든 사람은 다른 듯하지만 같기도 하다. 어떤 면에선 모두 같은 존재다. 서로 다른 것처럼 보여도 알고 보면 같은 점도 많다. 즉 다름 속에서 같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각각 저마다 다른 사람들을 인정할 때 모두 함께,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

  헌법 제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헌법 제34조 제6항,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이와 같이 다큐 프라임(‘법과 정의’)에서는 헌법 조항을 강하게 외치고 있지만, 나는 아주 담담하게 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사항들을 옮기고 있다.


특정 누구를 탓할 것이 아니라 제반 국가기관이나 기업, 언론•방송사 등과 더불어 국민 스스로 개개인이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사항들이다.

특별히 주어진 역할을 성실히 진정성 있게 해 주길 바라는 기관이 있지만, 우리가(국민이) 무얼? 어떻게 하면? 그들이 스스로 잘하게 될까.




   정의의 여신과 법


  로마 신화에서 유스티치아(Justitia, 정의의 여신)는 한 손엔 저울을, 한 손엔 칼을 쥐고 있다. 그런데 정의의 여신상이 눈을 가리고 있다. 눈 앞에 있는 사람이 강자인지 약자인지 가리지 않고 법에만 의거하여 공평하게 처리하겠다는 의미에서라고 한다.

  시대별 상황별, 정의의 여신은 다양하게 변했다. 광대가 정의의 여신 눈을 가리고 있거나, 한쪽 눈만 가리고 있거나, 눈을 뜨고 있는 등 정의의 여신상이 시대마다 상황마다 달라졌다. 법이 그러하듯이...


플라톤의 <<국가론>> 제1권에서 트라시마코스가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고 말했을 때 소크라테스는,  통치자는 통치받는 시민들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법이 뭔지 정의가 누구 편인지는 몰라도 지배자들이 피지배자들의 이익을 위해 통치하는 것만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 모아져야 한다고 하며 이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그 법은 지속될 수 없는 법이라 하였다. 그리고 강자란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그 강자가 생각하는 것이 정의라 고 할 수는 없다며 트라시마코스에 반대하여 주장했다.(콘스탄틴 부드리스, 아테네대학교 철학과 교수)


  소크라테스의 주장과는 달리 현재, 현실에선 트라시마코스의 말이 적용되기도 한다.


  케리 벅 판결이 생각나서 다큐 프라임의 다른 자료(‘법과 정의’)도 찾아보았다. 케리 벅은 1927년 우생학적 불임시술 판결로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를 빼앗겼다. 이 판결이 난 75주년인 2002년, 버지니아주에서는 케리 벅 우생학적 불임 판결을 사과하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그 사건을 기억하는 표지판을 만들었다.
  독일 나치는 케리 벅 판결을 악용했다. 나치의 단종법으로 수십만 명이 강제 불임 수술을 받았다.

  독일은 현재, 자신들이 행한 지난 과거를 기억하고 다시는 범하고 싶지 않은 과오들를 반성하고 있다. 독일은 거듭나는 새로운 나라를 위해 국민들 스스로가 반성하고 깨달으며 과오의 원인을 찾았다. 그것은 독일 국민 개개인이 비판 의식이 없어서 일어난 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개개인이 생각이 없었기에 자기주장을 하지 않았고 그저 따라 하기만 하여,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비참한 일들을 벌였다. 현재 독일은 각 학교급에서 교육 전반에 걸쳐 자기 의견을 말하게 하는 교육과 비판의식을 가지도록 교육하고 있다. 자기 의견 없이 따라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잘못된 행동을 가려내어 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케리 벅과 독일 교육에 대한 생각에 꼬리를 물어, 내레이터(narrator)가 비장하게 말한다.


  “돌이킬 수 없다는 건 잔인한 일입니다.
법은 국회에서 만들고 그 법을 해석하는 것은 법원의 몫입니다. 그런데 그 법은 우리 시민들이 제 목소리를 낼 때에만 국민의 편에 서게 됩니다.”


  “가만히 있는 것, 포기하는 것, 잊어버리는 것은 비겁한 행동입니다. 법을 정의 반대편에 놔두는 것은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내레이터에 이어 김종철(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교수가 명확하게 다시 한번 더 알려 준다.


  “주권을 가진 국민들이 부정의를 시정하기 위해서 최종적이고 핵심적인 권리이자 권한을 행사해야 합니다.”


  내레이터가 마지막으로, 우리가 더 새길만한 말을 한다.


“주권자인 국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목소리를 낼 때,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게 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법은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법을 실현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은 우리가 할 몫이다. 우리 국민이 현재 이 사회를 만들었다. 그러하니 법 또한 우리가 더 정의롭게 실현하도록 만들 수 있다.

(2020.9.10)




https://youtu.be/rIMUV4Dlajk

(‘바람의 빛깔’, 오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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