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끼리 곱하면?

by novel self

소크라테스가 말한 친구와 적에서 나는 친구와 적을 곱하는 걸 생각해 본다.


Politskaia는 친구를 양(+)으로 적을 음(-)으로 대신하여 음수 곱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는 실질적으로 사람들을 곱하지는 못한다고 결론지었다. 과연 그럴까?


2 곱하기 2는 2가 2(두) 개여서 2+2여서 4이고,

2 곱하기 3은 2가 3(세) 개여서 2+2+2여서 6이다.

이제

-2 곱하기 2를 해 보자. 이것은 -2가 2개다. 따라서 (-2)+(-2)여서 -4이다.

-2 곱하기 3도 해 보자. 마찬가지 방법으로 -2가 3개다. 그러므로 (-2)+(-2)+(-2)여서 -6이다.


그러면

친구를 양(+)으로 적을 음(-)으로 대신하여 연산해 보자.

친구 둘, 곱하기 친구 둘은?

‘친구 2, 곱하기 친구 2’를 ‘2 곱하기 2’라고 할 수 있을까?

친구 둘, 곱하기 친구 셋은?

과연 친구들을 곱하면 어떻게 될까?


오호, 적은?

두 명의 적, 곱하기 두 명의 적은?

여러 종류의 적을 여러 번 곱하면 어떻게 될까?

친구와 적을 곱하는 건?

친구 둘과 적 둘을 곱하면 또 어찌 될까?


반면,

사과 두 개 곱하기 사과 두 개는 어떻게 될까?

사과를 곱한다는 의미는 뭘까?


‘곱하다’는 무슨 뜻이지?

수를 곱하다.

사과를 곱하다.

물을 곱하다.

진흙을 곱하다.

친구를 곱하다.

적을 곱하다.

등등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단순히 숫자였을 때와 구체적인 사물과 대치했을 때는 무엇이 달라지는 걸까.


덧셈에서 다시 생각해 보자.

사과를 더하면 사과 개수가 늘어나지만, 사과를 곱하는 게 더하는 것과 같을까?

더욱이 사람의 경우엔, 친구나 적을 더하면 친구가 더 늘어나거나 적이 더 늘어나는 건 왜 아닐까?


어떤 경우가 아닌 경우일까?


숫자는 당연히 사물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 의미가 사람에겐 왜 예외인 걸까?

왜?


그 이유를 우리는 알고 있다.


친구가 왜 계속 친구일 수 없는지?

적은 또 어떤지?


어떤 운 좋은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 사람은 운 좋게도 그가 죽기 전까지는 그의 친구 들 모두가 계속 친구일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 친구들을 곱한다고 생각해 보라.


이번엔 지질히 운 나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사람은 친구가 변심하여 적이 되고 적도 계속 적으로 남아 그의 곁에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는 적과 친구를 곱하든 친구와 친구를 곱하든 적과 적을 곱하든, 모두 적 투성이다.


이제 아무런 가정이나 가공 없이, 우리 삶에서 우리 주변을 생각해 보자.


친구가 친구여서 행복하기도 하고, 친구가 적이 되어 슬프기도 하고, 적이 적이어서 괴롭기도 하다.

친구가 친구인 걸 느끼기도 하고, 친구가 적이 된 걸 인지하기도 하고, 친구가 적이 된 걸 모르기도 하다.

적이 친구가 될 순 없어도 해를 입히지 않을 정도로 순화된 적이 되었어도 모르고 있을 수 있다. 이보다 더 여러 가지 경우가 무수히 존재할 수 있다.


친구와 적은 유동성을 가진다.


인간 세상은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 외에 숨은 복잡한 것들이 연결되어 있다.


왜 그런지 우리는 알고 있을까?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개개인 모두 자각하고 있다.


알지만,

아는데,

뭐가 문제일까?

그것마저도 사람들은 스스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친구, 적 즉 사람들을 곱하는 건 어떤 의미이고 정말 곱할 수 있는 걸까?




슬그머니 다가오는 맨(man)에게 묻는다.

“사람과 사람을 곱하면 뭐가 될까?”


“자식”


자식이라는 말에 마음 속으로 ‘자식이라고?’ 하며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니 맨이 나를 보더니 다른 대답을 하나 더 했다.

“쌍둥이?”


계속 물어본다.

“그럼, 사람들 중에서 친구와 적을 곱하면?”


“뭔 소리야, 왜 곱해? 융합이 안 되지.”


“그래? 이번엔 적과 적을 곱하면?”


“악인”


“악인? 이제 친구와 친구를 곱하면 어찌 될 것 같아?”


“친구인가? 친구는 나쁜 친구도 있고 좋은 친구도 있는데.”


그래, 친구라 하면 대부분 좋은 친구만 생각하는데 나쁜 친구도 있다.


“그래도 곱한다면?”


“크흣, 동무”


한바탕 크게 웃고나서, 쉬고 있는 걸(girl)에게 가서 또 묻는다.

“사람과 사람을 곱하면 뭐가 될까?”


“더하는 게 아니라 곱해? 곱한다는 의미가 뭐지? 좋은 질문인데 곱한다는 개념이 이해가 안 되어 답을 못 하겠네.”


걸은 수학적으로 말하네. 더하는 건 완전히 이해된 상태로구나.


“현재 더한다는 개념은 이해가 되어 있군. 그럼 사람을 더하면?”


“한 사람의 세계가 다른 한 사람의 세계와 만나는 거.”

와아, 철학적인 대답까지 하네. 그래도 담담한 척하며 계속 묻는다.


“현재 너가 아는 범위에서 사람들을 곱하면?”


“잠시만, 제대로 이해하고 말하고 싶어. ‘더하다’와 비교해서 말하고 싶네. ‘더하다’는 섞이는 게 아닌데 ‘곱하다’는 뭔가 섞이는 기분이네.”


“섞여서 뭐가 될까?”


“곱하다는 자꾸 더하다가 떠오르네. 조화를 이루는 게 곱하는 건가?”


조화라? 나도 생각하고 싶어진다. 내 나름 상상해 보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계속 묻는다.


“지금 이 상태에서 사람과 사람을 곱하여 어떤 형체? 아니면 결론을 내린다면?”


“친구와 적을 곱하면? 마이너스.”


“왜?”


“나한테는 마이너스니까, 마이너스.”


“그럼, 친구와 친구 곱은? 그리고 적과 적의 곱은?”


“플러스”


“왜, 적과 적이 곱해지는데 플러스야?”


“내 기준에선 적끼리는 플러스, 적의 입장에선 적끼리는 같은 사람이 추가되어 플러스. 적이어도 내 입장에선 적이 나쁜 사람이지만 그들끼리는 같은 생각이니까, 나빠도 그들에겐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추가되니까 플러스. 내 입장에선 적과 적의 곱은 마이너스.”


“너 입장에선 왜?


“누군가에게 상대는 마이너스이기에. 글고, 곱하는 건 공식으로 외워서 하는 거라 더하기와 차이도 있어.”


걸의 다차원적인 분석에 우리 미래가 밝다.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걸은 곱셈의 문제점을 명확하게 말했다. 경우에 따라서 다른 모델로 연산하는 곱셈 연산의 불일치성을 꼭 짚었다. 또한 그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해 그저 공식처럼 외워서 풀도록 지도하는 실정까지도 말이다.


이제 게임하고 있는 보이(boy)에게 가서 또 묻는다.

“사람과 사람을 곱하면 뭐가 될까?


“사람과 사람을 왜 곱해? 그게 가능해? 곱할 수 없잖아?”


“그냥 지금 너 생각, 곱하면 어떻게 될 것 같은지 네 생각을 말해 봐.”


“사람을 곱한다고 늘어나는 건 아니고.”


말끝을 흐리며 게임에만 열중해 있는 보이를 보며, 보이가 게임을 끝낸 후에 다시 물어볼까 하다가 순간은 기다려 주지 않기에 추가 설정없이 나오는 대답을 계속 듣기로 한다.


“어쨌든 사람과 사람을 한번 곱해 보면?”


“왜죠?”


“너한테는 사람을 곱한다는 게 어떤 의미니?”


“느낌이 안 오는 걸요.”


게임하며 대답해도 보이가 성의있게 말해 주길 바라며 계속 묻는다

“그럼 친구와 적을 곱하면?”


“도대체 곱한다는 게 무슨 뜻이지? 뭐가 나오긴 하나? 그걸 왜 곱하지?”


고민을 하는 듯하지만 보이(boy)는 여전히 게임 중이다.

“이제 친구와 친구를 곱하면 어떻게 될까?”


“친구”


“적과 적은?”


“모르겠네, 또 다른 적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갈피를 못 잡겠네. 이해가 되지 않네.”


보이는 게임이라는 장벽이 있어서 질문을 여기서 중단한다. 내가 할 질문은 다 했지만 스치듯 답해서 아쉽다.


그래도 세 사람의 대답이 내게는 참 흥미롭다 .

이 세 사람은 각각 질문에 대한 반응과 자세가 모두 다르다. 그에 따른 대답도 제각각이다. 게다가 이 세 사람은 ‘사람들을 곱하는 것’에 접근하는 방식도 다르고 생각하는 방향도 다르다. 물론 질문이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각기 다를 것이다.


저마다 ‘사람과 사람을 곱하면 어찌 될지’, 상상해 보면 이 세 사람과 다른 무수한 대답이 더 나올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각자의 세계에서 각자의 곱을 해 보면, 새로운 자신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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