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일기 02] 백세 할머니의 지팡이 나눔

할머니들의 당근마켓

by 최지은



오늘은 백세 할머니가 구십세 할머니에게 지팡이나눔을 하셨다. 나눔의 장소는 우리 한의원. 신길경희한의원에서 두 시에 만나기로 한 두 할머니가 약속시간에 맞춰 지팡이를 주고받고, 사이좋게 침대에 나란히 누워 침을 맞고 가셨다.


어르신들의 소중한 지팡이


유성매직으로 삐뚤삐뚤 백세 할머니의 이름이 적혀있는 지팡이를 구십세 할머니가 감사히 물려받으셨다. 나는 가지고 있는 아세톤으로 새 주인의 이름을 적어드렸다. 요즘 당근마켓에 빠져있는 나는, 할머니들의 그런 지팡이 나눔이 어찌나 보기 좋고 귀엽던지.



이 두 분은 서로 언니 동생 하는 동네의 친한 친구 사이로, 개원초부터 줄곧 우리 한의원을 찾아주시는 감사한 분들이다.


차트에 있는 환자분들 중 최고령이신 100세 할머니는 지팡이와 함께 잘 걸어 다니시고, 작은 소리도 들으실 수 있을 만큼 귀도 밝으시지만, 연세가 연세이니만큼 자주 내원 하시진 못하신다. 그나마도 그 내원하시는 간격이 해마다 길어져, 늘 마음에서 걱정되고 기다리게 되는 분이다.


영광 고향에 오랜만에 다녀오셔서는 막내동생을 만나고 왔다고, 언니들은 다 죽고 이제 내차례라고,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 동생한테도 인사하고 왔다고, 빨리 언니들 만나러 가고 싶다고 하시던 말들.

기독교인 할머니는 오랜만에 오셔서는, 원장님 내가 몸이 안 좋아서 자주 못 오더라도 한상 원장님 잘되고 신길경희한의원 계속 잘되라고 기도하고 있었다고, 하늘나라에서도 기도하리라고, 두 손 꼭 잡고 하시던 말들.

신길동에 반백년 넘게 사시다 보니 동네 마주치는 할머니마다 아는 분이시라 인사하기 바쁘신데, 치료 후 대기실에 앉아 계시다가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한테, 아이구 안 죽고 아직 살아있었네~ 하면서 이런저런 안부를 나누시는 모습.


할머니가 웃으며 하시는 무거운 이야기들을, 아직 인생이 많이 어렵기만 한 나는 말없이 듣고 보고 있다가 눈시울이 붉어져 고개를 돌리게 된다.

긴 세월을 밟아 그 자리에 있는 마음은 어떤 건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어쩐지 할머니가 내원하신 날에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단단한 다짐이 생기곤 한다.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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