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제발, 우산!
역대 최장이었다는 54일의 장마기간이 끝나간다. 지리하게 내리는 빗속에서 원장실을 지키는 건 두배로 힘들었다. ‘유비무환’이라는 사자성어를 한의사들은 비가 오면 환자가 없다는 뜻으로 사용하곤 한다. 우리 한의원도 주요 환자층이 고령의 어르신들이다 보니, 비 오는 날은 확실히 환자가 적은 편이다. 그래서 개원하고 바뀐 것 중에 하나가 비를 정말 싫어하게 되었다.
사실 내원 환자가 적은 것보다 비 오는 날이 정말 싫은 이유가 있는데, 우산을 바꿔서 들고 가시는 환자분들이 하루에 꼭 최소 한 명씩 있다. 우산은 알다시피 우리 모두 까만색 혹은 비닐우산이다 보니, 잘못 바꿔가기 일쑤다. 이럴 때마다 꼭 우산을 잃어버린 분들은, “내 우산은 이것보다 새 거인데....” 라고 하시며 애석함을 표하신다. 신기하게도 늘 언제나 남겨진 것들이 더 헌 물건이다... 바쁜 와중에 CCTV를 돌려보며 우산을 누가 바꿔서 들고 가는지 확인하기도 하고, CCTV를 돌려볼 시간이 없을 땐 급한 대로 가장 근접한 시간대에 오고 간 환자들에게 쭉 전화를 돌리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우산이 없어졌다는 환자분께 급한 대로 내 우산을 드리고, 한가해진 후 CCTV를 돌려보니 우산을 애당초 안 들고 한의원을 들어오시는 모습..... 고민하다가 환자분께서 우리 한의원을 ‘우산 잃어버린 한의원’으로 내내 기억하실 것 같아 전화드렸다. “어머님~ 오늘 우산 안 갖고 한의원 오셨으니까 집이나 다른 데서 우산 꼭 찾아보시고요~ 제 우산은 그냥 가지세요~^^”
사실 이런 에피소드는 꼭 우산이 아니더라도 많다. 잔돈을 안 받았다고 다시 돌아오셔서 거스름돈을 다시 달라시는 환자분께, CCTV로 확인해서 “아버님~ 가슴 안주머니에 잔돈을 넣으셨네요~^^” 신발을 누가 바꿔 신고 갔다고, 같은 디자인인데 본인 신발은 이것보다 더 새 거라고 하시는 어머님께 소정의 신발값을 물어드린 적도 있다. 진료가 끝난 후, CCTV로 바뀌셨다는 그 신발이 아무도 손 안댄 본인 신발인 것을 확인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한 달 동안 매일같이 우산 찾기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게 너무 지쳐서, 비슷한 컨셉의 동네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다음번 개원은 무조건 우산 안 잃어버리는 동네다!”라고 톡을 했더니 다들 장마철 동안 각자의 동네에서 우산 찾기 CCTV 돌리느라 바쁘다고ㅎㅎ 우산은 공공재가 아니던가! 어디가서 우산 바꿔 들고 가지 않도록 또릿또릿 하게 늙고 싶다고 했더니, 선배님 말씀이 ‘내 우산을 누가 가져가더라도 쿨하게 웃을 수 있는 게 중요하지’라고 하셨다. 아?
늘 보수적인 마인드로 나의 이야기에는 비공감 버튼을 누르시며 가르침을 주시는 아버지께서는, 장마철 우산 분실 고충을 토로하며 ‘CCTV를 좀 더 입구를 잘 보이게 달았어야 하나 봐요’라고 하는 나에게 ‘우산을 이십여 개 사놓고 그럴 때마다 우산을 나눠드려라’라고 하셨다.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
장마가 어서 끝났으면 좋겠다. 보고 싶은 환자들이 많다.
2020년 7-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