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경기의 시작 - 탄생 誕生 [여덟 번째 이야기]
- 나도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어요.
‘아이가 세 살 때 한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만든 부모’, ‘공부에 관해 둘째가라면 서러울 아이를 키워 낸 부모’는 부러움의 대상일지 몰라도, 그 부모의 아이는 다소 불행하다. (선천적으로 학문을 사랑하고 배움에 조예가 깊은 어린이는 물론 예외다.) 어린 나이에 많은 것을 배우려면, 그만큼 그 나이에 누릴 수 있는 감성과 문화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경험 상, 아이들이 공부 잘하는 또래를 부러워하기 시작하는 시기는 중학교 3학년 끝 무렵이다. 그 전까지는 잘 놀고, 유행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는 아이들이 가장 인기가 많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만, 진학할 고등학교가 정해지고 스스로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는 첫 시기를 맞으며 학생들의 입장이 조금씩 변해간다.
하지만 나는 이미 여섯 살 때, 웬만한 초등학교 3학년의 지적 수준에 근접해 있었다. 집에서 훈장님과 함께 엄격한 규율 속에 생활한 것을 고려하면 참 당연한 일이다. 나는 어렸을 때 TV만화를 마음 놓고 본 적이 없다. TV는 바보상자니 되도록이면 보지 말라고 한 아빠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는 만화 대신에 할머니가 보시는 ‘6시 내고향’을 보았다. 몰래 만화를 보다 아빠의 발소리가 가까워지면 ‘이전채널’ 버튼을 누르기도 했는데, 계속 그렇게 아빠의 눈을 속이다 보니 그 어린 나에게도 ‘에이, 이렇게 볼 바엔 그냥 다른 방송에 관심을 갖자.’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 즐겨 본 만화가 무어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단 하나도 이야기할 수가 없다. 첨언하자면, 나는 게임도 할 줄 모른다. 어렸을 때 접해 본 적이 없다 보니 지금 와서 해보려 해도 내 마우스 커서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찾기 바쁜 수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시간이 조금 흘러, 이런 애늙은이에게도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에 들어갈 시간이 왔다. 욕심이 많았던 우리 부모님은 나를 영어유치원에 보냈고, 심지어 따로 원장님께 부탁드려 그 유치원에서 제일 똑똑한 Jamie라는 여자아이와 나 둘을 묶은 특별반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저 평범히 여느 또래들과 다름없이 생활하고 싶었는데, 그것은 오로지 나의 바람일 뿐이었다.
모든 원생들이 모여 뛰노는 점심시간이 나는 제일 싫었다. 그들과 같은 주제로 이야기할 수 없었으며, 누구나 아는 ‘호빵맨’ 이야기가 나와도 나는 집에서 할머니가 이따금씩 데워주는 호빵밖에 연상할 수 없었다. 혼자만 다른 세계에 사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 지경이다 보니 다른 아이들은 나와 어울리는 것을 꺼렸고, 그렇게 나는 소위 말하는 왕따가 되었다. 남들과 다른 세계에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알지도 못했고, 남들보다 앞서가는 것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도 없었다. 하물며 고등학생도 ‘공부만 하면 주위의 친구들이 다 나를 떠날 테니 좀 놀자.’라는 생각으로 본인의 일탈을 합리화하는데, 나는 그런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두려웠다. 나에게 일탈이라고 해봤자, 유치원 선생님이 더럽게 맛없는 연근조림을 내 입에다 밀어 넣었을 때 몰래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에 뱉어내는 것 정도였다.
아무튼 아무도 나와 함께하지 않으려 했다. 어떻게든 또래들 옆에 붙어 있어 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해보았지만 역시 인간관계는 노력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부모님은 그런 상황을 눈치채지 못했다. 원아 일기에 쓰인 내용은 보기좋게 포장된 거짓이었고, 집으로 보내지는 사진 속에는 선생님에 의해 만들어진 화목함만이 가득했으니. 하루 일과가 끝나고 스쿨버스를 기다리면서 나 혼자 후드티에 달린 줄을 가지고 꼼지락대던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장면의 배경 음악은 바로 내 등 뒤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던 또래들의 웃음소리이다.
한번은 소외감이 극에 달해 풀숲에 숨어 따돌림을 주동하던 Jamie에게 돌을 던졌다. 팔꿈치에 돌을 맞은 Jamie는 펑펑 울었고, 나는 선생님께 끌려가서 엉덩이를 두 대 찰싹 맞고 그 소식은 고스란히 아빠에게 전해졌다. “사내자식이 숨어서 돌을 던지냐.”, “친구에게 왜 그랬느냐.”, “같은 반 친구라고는 Jamie밖에 없는데 걔한테 그러면 어떡하냐.” 등의 훈계를 들으며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났다.
아빠는 그 눈물이 아빠의 강한 훈육 탓이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눈물 안에는 나의 마음고생을 알지 못했던 아빠와 선생님에 대한 서운함이 더 많이 담겨 있었다.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고 말하면 아빠의 가슴이 미어지지는 않을까, 정말 만에 하나 아빠가 유치원에 전화해서 아들의 왕따에 대해 책임을 묻지는 않을까 너무 걱정이 되어 “나 왕따야.” 라고 속 시원히 털어놓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도 참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