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vs 연년생

생존이 유일한 삶의 목적이었던 날들

by 한가람
엄마가 좋아서 싫어.



이제 막 두 돌 무렵, 말문이 트인 첫째는 '질투'를 이렇게 정의했다.
저 사람이 좋아서, 싫은 것.

어느날 들이닥친 쌍둥이 동생들,
미워하고만 싶은 엄마,
그러나 그 엄마가 자꾸만 좋은 마음에
뜨거운 불같은 뭔가가 올라온다.

인생은 그렇게 고작 2년 차 아가에게 삶의 쓴맛을 소개했다.
너무나도 빠르게 말이다.

당시 나의 하루 스케줄에는 약 24번의 수유가 있었다.
쌍둥이엄마한테 모유수유를 권하지 않는다는 조리원 모유전문가 선생님은
쌍둥이가 자기 차례에 오롯이 홀로 엄마품에 폭 안기게끔
서로 교차된 스케줄을 짜주셨다.

덕분에, 나의 수유텀은 한 시간마다 돌아왔다.
신생아 시기, 낮에는 산후조리 공공서비스로 찾아오시는 관리사 선생님이,
밤에는 친정부모님이 아가들을 함께 봐주셨다.
만약 나 혼자 '나태지옥'과도 같은 그 스케줄을 견뎌야 했다면 진즉에 영혼부터 가출했을 거다.

우리 큰아이는 당시 어린이집 입소 대기 중이었기에. 안타깝게도 하루의 일과를 전부 함께했다.

20개월 아기는 새벽마다 엄마가 일어나 방에서 나간다는 사실을 눈치채고는 절대 잠들려 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셔서 아기와 옆방에 잔다는 것도 영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일이었다.
쏟아지는 잠을 쫓으려 별짓을 다하다 겨우 잠들면 쌍둥이와 똑같이 새벽에 깨서
엄마손을 잡아끌어 거실로 나갔다.
피곤하니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놀아달라 떼를 부렸는데, 그 바람에 방에 각자 애를 재우고 계신 부모님은

그나마도 잠을 한숨도 못 주무셨다.

"우리 착하고 예쁜 손주가 무슨 일이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폭군으로 변해버린 한 때 세상 가장 소중했던 아가에게
이젠 공포심마저 느껴지시는 듯했다.
100일이 지나 어느 정도 안정을 찾기 전까지 우리 집은 그야말로 전시상태.
그야말로 '생존'만이 우리의 유일한 목적이었다.

하루 3~4시간을 쪼개어 자면서, 각자 맡은 임무
(젖병소독, 기저귀교체, 배꼽소독, 수유, 유아식, 목욕시키기, 빨래, 청소 등)
철저히 완수하고도 내 목숨 건지는 것 말이다.

오늘 하루 무사해준 아가들의 잠든 얼굴을 볼 때마다
'나 참 잘했다. 오늘 우리 모두 살아남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 그런 삶.

하루 중 가장 힘든 일과는 바로 애아빠의 퇴근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육아를 돕던 누군가가 퇴근하고, 홀로 아가들 셋과 남겨진 공포의 시간.
목욕과 마지막 수유를 마친 신생아 두 분은 각자 역류방지쿠션에 누워 평화롭게 모빌을 구경 중.

곧 때가 되면 꿈틀대다가 집이 떠나가라 울 것이다.
큰 애는 그러거나 말거나, 밤마다 자기 좋아하는 그림책을 한 권당 열 번씩은 읽어야 한다.

정말, 미안하지만.
당시 쌍둥이는 쿠션에 누워 울다 잠들어야 했다.
나는 큰 애 성화에 못 이겨 방문을 닫고 아이와 둘만 들어가 책을 읽었다.
쌍둥이가 울다 지쳐 잠들 때까지 모른 척 첫째와 잠자리 독서를 이어나갔다.
내 마음은 이미 거실 바닥에 두고 온 아가와 함께 엉엉 울고 있었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았다. 기왕에 택한 시나리오, 그래야 했다.

'언제나 네가 먼저야. 아가들은 너의 일과를 방해하는 존재가 아냐.'
일관된 신호를 첫째에게 전하고 싶었다.

특히 잠투세가 심했던 우리 막둥이는(지금도 잘 때 무서워하고 훌쩍거리는 녀석)
저녁때 잠이 오면 1시간도 줄기차게 울어재꼈다. 당시 우리 집엔 막둥이 이름을 딴 ★★타임도 있었다.

첫째가 잠든 뒤, 거실로 나가보면 역류방지쿠션에 누운 아가 둘이 수유등 불빛 아래 잠들어 있다.

옷과 쿠션을 다 땀과 눈물로 적신 뒤 지쳐 잠든 아가를 품에 꼭 들어 안는다.

너를 얼마나 안고 싶었는지, 이런 엄마 마음이 꼭 닿았으면.

대역죄인, 연년생 엄마의 기도이다.


첫째는 산책을, 쌍둥이는 낮잠을 원하고,

첫째는 그림책을, 쌍둥이는 분유를 기다린다.

형아는 카봇을, 동생은 아기상어를 좋아하고,

엄마는 형아 빼빼로를 발견한 아가에게 황급히 달려가다 넘어지고 만다.


쌍둥이 엄마는 분주하고, 연년생 엄마는 자아의 분열을 경험한다.

우리 고객님들 모두의 만족을 위해 분투하느라 머리가 하얗게 새는데도

미안함이 늘 따라다닌다.




한창 아기들이 어릴 때는 너무 바빠서 밥 먹으며 양치한다는 농담도 했는데,

실제로 씻을 시간이 부족하긴 하다.

마트에서 치약향기의 지루성두피용 샴푸 '헤드 앤~~'를 사면,

극건성인 나는 한 일주일은 가더라.

그래도 그때가 더 젊고 예뻤다는 사실이 가슴을 후벼 파는 밤.


이걸 쓴다고 오랜만에 떠올린 그 시절이 문득 너무도 그리운 밤이다.

세 녀석 밤기저귀 갈아주느라 늘 충혈된 눈, 터진 입술의 찝찌름한 맛이지만,

침 흘리며 기어와 안기던 그 아가를 다시 한번 만나고픈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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