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위한 최고의 전략자산

(할머니 다음으로 최고..)

by 한가람
결혼하면, 꼭 3년간은 둘만의 시간을 보내거라


은사님께서는 결혼식 주례를 흔쾌히 수락하시며 사모님 손을 꼭 잡은 채 이렇게 당부하셨다.

허니문베이비와 셋이 함께 시작한 결혼생활이 꽤나 고되셨다는 것은

옆에서 지켜본 우리 부부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20대 끝무렵 결혼한 우리 부부는 약속대로 만 3년을 채우고 첫 아이를 품었다.

내 개인적인 기준으로 육아 난이도의 나래비를 세운다면,

쌍둥이 < 삼형제 < 연년생 < 첫.아.이


처음은 그렇게 어렵다.

얘는 대체 왜 우는 걸까?

어떻게 해야 기분이 좋아지는 걸까?

엄마는 지켜야 할 수칙이 어찌 이리도 많을까.....

온통 미지의 세계인 육아는 30대 초반 나의 모든 혈기를 온통 다 쏟아부어도 모자란 블랙홀과 같았다.


대개 첫째가 5세가 되기까지 만 4년 정도는

매주, 매 월, 매 해 전혀 다른 차원으로 도약하는 아가의 성장통과 함께

엄마도 고군분투한 흔적들이 마디마디 남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유아를 돌보는 부모에게 최고의 자산은 당연히 체력이다.

옆 부서의 40대 과장님과 한 달 차로 임신이 되었을 때,

애가 환갑잔치 때 조퇴하게 생겼다는 철 지난 농담을 하시던 과장님은

아일 낳으시고 주말이면 거의 키즈카페에 계셨다.

그때 나는 야외로 애를 데리고 다닐 때라 잘 이해를 못 했는데

40대가 되니, 뛰기는커녕 걷기에도 숨이 차서 아이들 쫓아다니는 게 어렵게 느껴졌다.


돈, 지식, 명성? 네 살짜리 앞에선 그것들 다 필요 없고,

놀이터에 나가 보면 그냥 젊고 체력 좋은 부모가 다 이기게 되어 있다.

물론 아가들에게는 우리 엄마, 아빠가 언제나, 무조건 최고이긴 하다만

부모가 된 우리에게, 신이시여 한 가지만 허락하신다면 그것은 오로지 체력뿐!

이라며 겸허히 구하게 되는 처지인 것이다.


휴직 중엔 아이들 셋 어린이집 보내고 PT를 받으러 다녔다.

지금은 나이도 먹고 운동할 시간이 없어서 그런지,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목소리가 좀 커졌다.

달려가는 대신 소리 지르고, 몸을 일으키는 대신 읍소하며 키운 목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육아에 대한 좀 다른 자신감이 생겼는데,

체력 못지않은 전략적 자산으로서,


누군가의 부모인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 앞에 그 누구보다 기쁘게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암기력이 무지 나쁜 나는, 어린 시절의 일상을 영상물처럼 기억 속에 많이 담아두었다.

엄마가 막냇동생을 낳으러 병원에 가서 함께 잘 수 없던 어느 밤.

하도 낙서가 많아서, 엄마도 포기하고 번호를 적어두던 전화기 앞 벽지.

문장을 만들라는 1학년 국어숙제에 '똥'을 잔뜩 써놨다가 아빠한테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났던 날도..

참,

'칡즙'이라는 간판을 읽었을 땐 사뭇 기뻐하며 뜻을 알려주던 엄마가,

길바닥 영어 낙서를 읽었을 땐 정색을 해서 그 단어는 꼭 기억에 남겨두었다.


아빠는 대체 왜 저러는 걸까?

엄마는 어떻게 해야 기분이 좋아지는 걸까?

세상엔 지켜야 할 규칙이 어찌 이리도 많을까..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그 어린 시절의 고민들과 함께 말이다.


한 번은 엄마가 아기 메추리들을 사와선

우리 가족 함께 알콩달콩 길러보자 했는데,

부모님이 외출하시고 적적하던 우리 삼남매가 그만 메추리들을 씻기고 말았다.

아기들은 본래 매일 목욕을 해야 하니 물에 담갔다가 빼내서

드라이로 따듯하게 털도 말려주었는데,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모두 발을 쭉 뻗고 누운 채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다.

엄마가 오랫동안 속상해했고, 우릴 책망도 많이 했다.

억울함이 들이밀 틈 없이 모두가 충격에 빠져서 말은 못 했지만 당시 내겐 너무도 이해할 수 없는 전개였다.

나는 절대 장난을 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생명을 경시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간혹 있다.

다시 한번 본다.

생명을 경시하는 것인지, 대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인지.


어린 시절 기억들을 꺼내보며,

아이들 키만큼 나의 시선을 맞추어본다.

절대 버티지 못할 것 같은 그 크기와 무게를 고작 한 살 더 먹었다고

또 아무렇지 않게 지고 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 아니겠는가.

오늘 못 하는 것은 내일 하면 된다.

앞으로 아이들이 독립하는 그날까지,

엄마인 내가 아마도 가장 자주 해야 할 일은 '기다리는 것'일 것 같다.




나는 육아는 처음인데,

'인내심'이 왜 이렇게 낯설지 않은 것일까?

'아 맞다!'

나는 스무 살 되던 해, 21살 남자애를 만나 9년을 키워 결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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