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좋아해요.

그래서 다 기억해요.

by 한가람

2025.5.15.

카라치 현지 시간 새벽 5시 30분 시간

4시간 늦음.


곧 잠에서 깰 스승을 기다리며

몇 자 적어놓은 카톡창을

다시 닫아 놓는다.

비록 새벽형이시긴 해도 감사인사를 드리기엔 너무 이르지.


마침 파키스탄 분쟁지역에 발발한 전쟁이 가까스로 휴전을 선언했다는

뉴스를 접한 터라, 안부도 여쭐 겸 그렇게 오늘은 제자의 도리를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그렇다.

오늘은 스승의 날.

시대가 바뀌고 엄청나게 그 의미가 퇴색되고 무색해진,

조만간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그런 기념일이다.


어린 시절 선명한 기억들이 곧 나의 육아 자산이라며 자랑글도 올렸겠다. 찾아뵙진 못하지만

90년대 깡마른 소녀 눈에 비친 각양각색 스승들의 모습들을 추억해 보고자 노트북을 폈다.


나는 스무 살 때 사라져 버린 초능력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나의 1학년 담임이 될 선생님을 직감으로 먼저 알아본다는 것이었다.

광활한 운동장, 1반부터 15반까지 열다섯 분의 선생님들이 쭉 서계시는데 탁 눈에 들어온 8반 선생님.

허리까지 오는 긴 곱슬머리에 울 엄마보다 한 열 살 정도? 많아 보이는 단정한 여선생님이었는데,

나는 그렇게 1학년 8반이 되어 조정주 선생님과 국민학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그리 많지 않은데, 신체검사 시간 가슴둘레를 잰다며 모두 상의를 벗으라고 하셨던 게

기억이 난다. 아마도 알림장에 '메리야스 입고 오세요.' 써주신 것 같은데,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그저 집에 오면 다 잊어버리고 무방비로 새 날을 맞이하는 인간.


뒷 번호라 상의를 홀딱 벗은 채 맨 몸으로 꽤나 오래 줄을 섰던 기억이다. 나름 친하다는 표현으로 놀리는 남자 애들과 눈 마주칠 때마다 부러 괴물 표정을 지었던 그날. 그게 1학년 8반 선생님에 대한 기억 전부이다.


내가 2학년이 되던 해, 초등학교로 바뀌었는데 2학년 3반 유명철 선생님은 곧 퇴직을 앞둔 카리스마 넘치는 여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좀 급하셔서 뭐든 기대에 못 미치는 것에 대해 꽤나 답답해하시는 분이었다.

어느 운동회날, 반장이 운동회 계주 마지막 주자로 나서는 전통에 따라 나는 그날도 자리에 서서 바통을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 보이던 3번 주자가 역전의 역전을 거쳐 내게로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결국 출발이 가장 빠른 주자가 되어 결승점을 향해 뛰게 되었다. 운동장을 넓게 한 바퀴 뛰는데 햇살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앉아서 응원하는 친구들이 정말 예쁜 영화의 한 장면 같이 슬로 화면처럼 지나갔다. 팔을 벌려 바람을 느끼며 눈을 감고 뛰던 나는 드디어 결승점에 도착했다. 물론 꼴찌로 말이다.


그날 이후, 나는 아침조례 시간마다 담임선생님이 나의 달리기를 따라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계주란, 마지막 주자가 결승점에 들어가는 순간 순위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깊이깊이 깨닫게 되었다.


우리 학교는 사춘기 학생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3~4학년, 5~6학년을 구성원 변화 없이 진급시키는 제도가 있었다. 3학년 5반 유미선 선생님은 정말이지 청순의 인간화 그 자체였다. 단정한 단발머리에 흰 피부, 인자한 미소까지. 우리 5반 친구들은 선생님의 유순한 지도력에 아주 푹 매료되고 말았다. 선생님의 부군께서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는 다 같이 한마음으로 백화점 셔틀버스를 타고 병문안도 갔다. 지금 생각하면 참... 뭣 모르는 어린이였지만, 그만큼 '우리 선생님'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학급이었다. 선생님은 어느 날, 바로 내일모레가 선생님의 생신이라는 엄청난 비밀도 우리 모두에게 말씀해 주셨다. 선생님의 생신이라니, 처음 겪어 보는 기념일이었다.

엄마는 부랴부랴 퇴근길에 화장품 가게에 가서 당시 TV만 틀면 나오는 광고 속 팩트를 사서 정성스레 포장을 해주셨다. 다음 날, 학교에 가니 선생님 책상 위는 40명의 학생들이 올려 둔 선물로 가득했다. 선생님께서 하나하나 풀어보실 땐 바닥에 포장지가 수북해졌는데, 역시나 다정한 선생님께서는 내게 꼭 갖고 싶었던 화장품이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해주셨다.


4학년 5반 박명옥 선생님은 뭐랄까. 백설공주 마귀할멈과 비슷한 스모키 메이크업의 선생님이었는데, 역시나 다정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수학 시험지에 소나기가 내린 날, 내가 한참 울고 있으니 몽둥이로 어깨를 밀치며 "왜 울어? 네가 그전엔 얼마나 잘했길래 울어?" 하셨다. 그때 그 진심 어린 충고를 알아 들었었더라면, 얼른 정신 차리고 부족한 공부에 좀 더 매진했을 텐데..


5학년 7반 나승자 선생님은 나의 은인과도 같은 선생님이셨다. 우리 삼 남매 중 둘이나 담임으로 만나신 선생님은 누구보다 우리 집 형편을 잘 알고 계셨는데, 내가 걸스카웃에 지원하자 선생님은 그거 돈만 많이 들고, 내게 남는 지식 하나 없는 무익한 거라며 신청서를 반려하셨다. 당시 내 동생은 걸스카웃하며 예쁜 단복도 입고, 언니들과도 어울리는데 왜 나는 못 하게 하지? 생각도 들었는데, 우리 엄마에게 따로 전화까지 걸어 만류하시는 모습에 뭔가 있겠거니 하고 넘겼다. 나를 많이 예뻐해 주셨던 선생님은 차키를 맡기며 트렁크에 왔다 갔다 하는 심부름도 자주 시키시고, (이건 나의 어떤 자존감을 거의 채점위원 수준으로 높여주는 사건이었다.)

하교 후에도 따로 불러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선생님 앞에서는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던 5학년이었다. 선생님은 그리고 특별히 6학년 3반 담임선생님을 콕 집어 나를 맡기는 것으로 사랑의 방점을 찍어주셨다.


나는 6학년 3반 담임 손영균 선생님과 아침 영어특기반에서 남들보다 1시간 일찍 등교해 공부를 했다. 각 반에서 한 명씩 선출되었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만 같아 피곤한 줄도 모르고 1년 동안 공부를 했다. 나승자 선생님께서 잘 말씀해 주신 덕에 나는 선생님과 외부 대회에 출전해 작문으로 상도 많이 탔다. 그리고 봉사활동 이력으로 추천서를 써주셔서 2학기 마지막엔 교육감이 수여하는 서울시어린이상도 받을 수 있었다. 선생님은 반장인 나에게 전교회장 선거 출마를 권해주셨는데, 초등학교 6년 내내 반장을 해왔지만,

그 많은 아이들 앞에서 연설을 한다는 것은 죽었다 깨나도 자신이 없었다.

사실 나는 왕소심에 새가슴, 겁도 무지 많은 전형적인 내향형 인간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나에게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신도 할만한 엄청난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전교 회장이 되었고, 당시 우리 학교 유일한 미혼남이었던 젊은 나의 담임 선생님은 인터넷이라는 자기만의 무기로 여러 대외활동 정보를 수집해 신청해 주셨다. 그때 참석했던 서울시 초등학교 전교회장 수련회는 내게 잊지 못할 충격과 흥분의 경험을 안겨주었다. 여의도 한강공원에 서로 누구도 모르는 어린이들이 모여 함께 2박 3일 여행을 떠난다는 것. 나도 아는 친구 하나 없지만, 거기 모인 수백 명의 아이들 모두가 같은 처지라는 것. 그리고 우리가 '리더'라는 새로운 깨달음은 뭔가 이 사회에 나도 일 인분을 하며 살아가야겠다는 작은 꿈을 심어준 시간이었다.


그렇게 학교를 무대로 '나'라는 애를 배워나갈 때,

선생님들은 NICE라는 격동의 새 시대를 맞이하고 계셨다.


내가 일기장에나 가끔 쓰던 글을 이렇게 다시 쓰게 된 이유도 다름 아닌 선생님 때문이다.

NICE에는 내 학교 출결부터 생활기록부까지 온갖 정보들이 다 들어있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기록이 있는데, 뭐 대체로 그 나이 학생들 많이들 그렇듯이 우울한 내레이션들이 이어지던 차에 한 선생님의 평가한 줄이 갑자기 눈에 확 띄었다.


'작문에 뛰어난 재능이 있으나 지나치게 소극적임.'


편지를 주고서도 되찾아 찢어버리는 나는,

대학진학 후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던 글을 다시 한번 끄적여볼 용기를 가져보았다.


이렇게 선생님은 그 때나 지금이나 내 인생에 엄청난 인플루언서이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한 번도 바뀌어 본 적 없는 '작가'의 꿈을, 이렇게 기어코 이뤄내게 하시는 걸 보면 말이다.





뭐, 많이 지나서 하는 얘기지만, 우리 엄마는 내가 전교회장 선출되고, 교장실에 다녀오신 후에 그 달 월급봉투를 그대로 가지고 학교로 가셨다.


지금은 빵 한 개도 못 가져오게 하는데,

그런 시절 있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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