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둥산 사기사건의 전말

고지에서 무지를 외치다

by 한가람

민둥산 사기사건은 이렇게 시작된다.

해발 1,118미터.

40년 가까이 살면서 내가 오른 가장 높은 산 이름이 하필이면 ‘민둥산’이었다.

추석 때 우리 민둥산 갈 건데, 아빠가 집 앞으로 태우러 갈까?

아빠투어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우리집 남매는 누구든 시간만 되면 무조건 ‘콜’을 외치는 편.


1박이기에 아이들 짐 대충 챙겨 따라나선 우리 부부는 차에서 잠도 보충하고, 친정아빠가 서칭한 맛집에서 밥도 먹으며 패키지여행의 편안함을 만끽하던 차였다.


“내일은 오전 일찍 등산해야 하니까 일찍 자자.”


민둥산이라며 뭐 나무도 별로 없는 동산 같은 곳에 오르는 듯한데 뭘 그리 서두르나. 싶었지만 묻는 것도 귀찮은 우리 부부는 리조트에서 둘이 노래방도 가고, 온돌방에서 결혼 10주년 이벤트도 소소히 당하며 그렇게 다음날 있을 일을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잠들었다.


우리의 결혼기념일은 개천절이다. 마침 내년 개천절이 토요일인 사실조차 우리의 결혼을 독려하는 하늘의 뜻인 양 그 해 나는 무려 28세 백수나 다름없던 내 오랜 남자친구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오빠, 우리 내년에 결혼하면 신혼여행 9박 10일 갈 수 있어!


그땐 그랬다. 멀쩡한 직장인이 열흘이나 유럽여행을 갈 수 있는 일은 SNS에도 존재하지 않던 시절. 엄청난 발견이라도 한 듯 심드렁한 남자친구를 캘린더 앞으로 불러냈다.


그때가 연애 8년 차, 결혼은 어떤 상태에 이르러야 결심하게 되는 걸까?

누구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1년 뒤 결혼을 하기로 약속(?)한 우리는 같이 다니던 스타트업에서 나와 식장을 알아보는 동시에 직장도 알아보게 되었다. 다소 황당해하시던 부모님도 그저 외마디 탄식뿐 더는 간섭을 하지 않으셨다. 종종 얼굴 마주칠 일이 있었던 양가 어머님들은 철부지 아들딸을 데리고 아웃백 회동을 하셨다.


‘우리 애들이 워낙 약아빠지질 못해서.. 그렇죠?’


어머니들이 서로 민망함을 감추며 얼른 꺼낸 본론은 예산이었다.

당시 서울 기준 원룸 전세는 얻을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이었다.


그날 나는 ‘나쁘지 않은데?’,

남편은 ‘전세가 뭐지?’

했던 백치의 시절이었다.


어찌어찌 결혼식을 올리기 두어 달 전, 우리는 각자 대기업에 입사를 했고,

입도 떼기 어려운 신입시절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청첩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스몰웨딩, 그것은 한국사회에서 불가능하기만 한 미션과도 같다는 것을.


나는 정말 전혀 몰랐다.

나무가 없는 산도 높은 산일 수 있다는 것을.

아빠는 무슨 용기인지 (아니 그것은 믿음이었다) 우리 부부나 아이들 누구에게도 그 산이 높고 험하다는 이야길 한 마디도 안 해주셨다. 마치 우리가 결혼하겠다고 선언했을 때처럼.

뭣도 모르고 데님치마 입고 따라나선 내게 바지로 갈아입으라는 딱 한마딜 했을 뿐이었다.


여섯 살 쌍둥이는 각자 스타일대로 날쌘 녀석은 한참 앞서서, 뚱뚱한 녀석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5분에 한 번씩 쉬는 등산을 했다. 물론 일곱 살 큰형은 무려 장화를 신은채 할아버지와 선두로 모두를 이끌었다. 1시간 급경사를 오르며 옷이 전부 땀으로 젖었을 무렵 하산하던 무리가 가쁜 숨 몰아쉬던 우리에게 귀띔을 해줬다.

“어휴, 아직 한참을 더 가야 하는데.” “지금 온 거의 세배는 더 남았어.”


남편과 나는 이미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렇게 장난 아닌 진짜 등산을 꼬맹이들일 데리고 하게 할 줄이야. 장인어른에 대한, 친정아빠에 대한 오랜 신뢰가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WHY…


아이들 얼굴에도 웃음기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 첫 번째 만난 푸드트럭에서 컵라면과 아이스크림으로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우리는 역시 여전히 무지했다. 그래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허탈하게 웃어가며 참 많이도 먹었다.


매점에서 느낀 인생의 소소한 행복감


막 다시 폴대를 쥐고 출발하려던 중 둘째 녀석부터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아이는 생전 처음 본 푸세식 화장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했다. 겨우 작은 볼일만 해결한 아이는 나중에 혼자 들어간 엄마가 혹시 빠지진 않을까, 냄새에 쓰러지진 않을까 걱정하며 문밖에서 계속 괜찮은지 묻고 말을 걸었다.


다시 아이 셋의 각기 다른 속도대로 찢어진 우리 일행은 각각 응가신호가 강하게 온 아이들을 달래며 산을 올라야 했다. 절대 여기선 안 싼다는 막내를 설득해야 했던 나는 엉덩이를 꼭 틀어막은 막내의 손을 잡으며 “엄마만 딱 믿어. 엄마가 너 창피당하게 그냥 두겠어?”했다. 한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어디 으슥한 곳 없나 주윌 살피며 겨우 만난 벤치에 앉았건만, 눈치 없는 등산객 아저씨가 다가와 사과를 건네며 같이 파이팅을 하시고자 했다.


첫 번째 시도는 그렇게 실패. 터벅터벅 오르던 막내의 걸음이 어느새 다람쥐처럼 날래졌다. 민둥산이 처음인 자기 엄마가 정상에 가면 화장실이 있을 거라고 했기 때문이다. 정상을 향해서, 세 뼘 다리 아가의 산행은 그렇게 분명해졌다. ‘그곳에 화장실이 있다.’


이후로 우리는 마주쳐 내려오던 등산객들의 “파이팅!”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정상즈음 드디어 그곳에 화장실이 있는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대단히 극적이었다. 민둥산 정상에는 화장실이 없다는 것을 독자님들께 알린다. 막둥이는 짜증 부릴 힘도 없는지 그 계단에 멈춰서 처연한 눈빛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무는 없고 억새가 많아 붙여진 이름. 민둥산. 우리는 부드러운 억새를 헤집고 작은 짐승들이 화장실로 쓸법한 곳에 다다랐다. 그리고, 이미 쭈그리지 않아도 가뿐히 슬라이딩할 만큼 입구에 걸쳐있던 녀석의 똥을 드디어 마주할 수 있었다.

안개낀 억새군락지


올해 우리의 결혼 10주년 기념일은 십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황금연휴. 일터를 뒤로한 많은 이들이 해외로 떠난 그 시각, 우리 부부는 이슬비와 땀에 젖은 옷으로 아들 삼 형제의 똥수발을 들으며 해발 1,118미터 고지를 아무런 사전 준비도 없이 올라야 했다.


마치 10년 전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당당히 버진로드를 걷던 그날처럼 말이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고, 미리 알 필요가 없는 너와의 미래.

그저 함께하는 것을 선택했을 뿐인 우리의 결정.

알지 못해 했던 결혼처럼, 우리 가족은 그날 알지 못해 민둥산을 오를 수 있었다.

다섯 시간 등반의 여정을 전부 브리핑해 줬다면 아마도 우린 절대 아빠를 따라오지 않았으리라.


2015년이 아닌 2025년이었다면 어땠을까?

요즘 연인들은 어떨까.

우리처럼 바보 같은 결정은 아마 누구도 하지 않을 것 같다.

대단한 연봉도, 집도, 안정적인 직업도 없던 철부지 연인이 결혼해서 연년생, 쌍둥이, 삼 형제를 낳는 무모한 일 따위는 말이다. 그렇게 결혼생활이라는 고지(高地)에서 무지(無知)를 외쳐야 했던 우리에게 묻는다면,

무지는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 이따금씩 데려다 놓기는 했어도,

나름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행복하다.


내게 장소가 주는 기억은 언제나 왜곡이 상당한 편.

지나온 풍경 속의 너와 나. 어딘 그렇게도 좋았고, 어느 곳은 그저 그랬다.

역시 여행은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비즈니스석에 타지 않아도 아직은 푹 잘 수 있는 나이의 가장 최근 감상이다.

우리 아들들이 세계 여러 나라 화장실 문화에 대한 그림책에서 자긴 티베트 화장실에 가봤다며 즐겁게 회상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다음엔 어디 갈까?
엄마, 다음번엔 인도 가자!
횽아, 아니야, 아니야, 인도 화장실엔 휴지가 없어!


그래 여행은 누구랑 함께 가는지와 더불어 화장실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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