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렛

바람과 함께 사라진 여자 vs 사라지지않고 꾸역꾸역 사는 여자

by 신소운

꽉 막힌 도로를 살핀다. 갑자기 올라 온다는 가족 아닌 가족을 기다린다. 일찌감치 셔터를 내려 버릴까… 홀에서 손님이 부른다. 또 멍 때리고 있었나보다. 오겠지, 올 때 되면 오겠지. 계산을 마치고 테이블을 정리한다. 몇자리 되지않는 홀에 아직 손님이 남았다. 더 시킬것 같지도 않고, 조만간 일어날거다. 습관처럼, 병처럼, 또 그렇게 창가에 턱을 괴고 앉았다. 닦아도 닦아도 유리창 구석구석 가득한 먼지처럼, 자꾸만 짜증나게 속이 타들어가는 건 아마도 쓰레기같은.. 개미새끼 하나 들어갈 틈 없이 꾹꾹 눌러 쌓아 놓은 홧병 때문일거다.

“그래도 서류상 보호자로 되어있어서 본인이 직접 오셔야 되요. 신분증 가져오시구요, 도장이나 싸인, 아무거나 다 가능하세요. 내일 오전 중에 꼭 오세요.”

한참 전에 끊은 전화가 귓전에 남았다. 담배를 많이 피운 듯 탁한 저음의 중년 남자. 그는 정말 내 말을 믿을까, 아니면 어차피 남 일이니 귀찮아서 대충 받아주었을까. 그는, 나를 ‘이해’ 할까… 요즘말로 ‘공감’ 해 줄까.


미움. 아주 지독한 미움. 태어나서 지금까지 반백년동안, 처절하게 미웠다. 단 한 사람, 매일매일을 살면서, 한시도 잊은 적 없는 딱 한 사람 - 스칼렛. 꼴에 문학 소녀인척, 첩첩산중 이름도 기억 못할 어느 산골짜기에서 친척집과 고아원을 전전하느라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그녀는, 스스로를 스칼렛이라고 불렀다. 책을 읽었거나 돈을 내고 영화관에서 봤을리 없다. 고작해야 지직거리는 흑백 티비로 봤을 주말의 영화겠지. 과장된 성우의 목소리에 울었다 웃었다 했을 뿐, 가느다란 허리 말고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을거다. 어쨌든 그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렛’이었다. 아름다운 비운의 여인, 남자들의 시선을 한껏 받으며 화려했지만 한순간에 몰락하는, 귀엽고도 섹시한 여자… 그런 주인공이고 되고 싶었나.


나의 스칼렛은, 내 50 평생 머리 속에 박힌 총알처럼 그렇게 아프고 괴롭던 스칼렛은, 동네 싸구려 술집의 마담이었다. 군부대 두 정거장 전, 모텔 골목 입구에 유난히 야리꾸리한 핫핑크 간판 – 스칼렛. 빨간 하이힐을 신은 여자 종아리에 네온 불을 켜고, 길에 나와 손님을 기다렸다. 시장통 순대 리어카에서나 쓰는 찌그러진 둥근 철제 의자에 짧은 치마를 깔고 앉아 다리를 꼰다. 검은 망사 스타킹을 헤집어 일부러 구멍을 만든다. 원래의 생김새를 철저하게 가린, 손톱으로 긁어도 상처나지 않을만큼 두껍고 진한 화장에, 머리카락 한올한올 깊이 배인 담배 냄새… 영화속 스칼렛과는 전혀 닮지 않은 천박한, 싼, 역겨운, 마담 스칼렛… 그녀가 나를 세상에 데려왔다.

“여기 스칼렛이에요, 짜장면 두개만 보내주세요.”

“스칼렛인데요, 아저씨, 소주 세 박스 시켰는데 아직 안왔어요.”

“들어오시면, 스칼렛에서 전화왔었다고 전해주세요.”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 이 골목 저 골목 빙빙 돌아 몰래 지나쳤지만, 샤시문 틈으로 새어나오는 목소리에도 괴로웠다. 남과 이야기할때의 스칼렛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다른 목소리, 다른 톤, 다른 웃음… 애교를 가득 품은 하이톤은 누구도 깜빡 속일 수 있을만큼 친절했다. 콧소리 섞인 빈웃음으로 어린 척, 귀여운 척… 그러다 돌아서서 나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그림자라도 스치면, 순식간에 표정부터 바뀌었다. 나는 방에 붙은 벽지 같은 존재였고, 엄마라는 호칭도, 다정하게 은영이라는 내 이름도 서로 불러준 적 없이, 남이 되어갔다.


세살박이 동생 은수에게도 똑같았다. 내가 기억하는 아주 어린 날부터 동생은 늘 혼자였다. 아무거라도 먹을 것만 쥐어주면 허겁지겁 입에 쑤셔 넣고, 씻지도 않고 벌렁 드러누웠다. 말은 커녕 옹알이도 할 줄 몰랐다. 어디서 주워왔을 화면 깨진 티비와 동그란 철제 밥상이 전부였던 세간살이에 일찌감치 삶이 싫던 나도, 그리고 그 오래 전부터 이미 삶이 없던 스칼렛도, 은수에게 아무 애착이 없었다. 그저 기계처럼, 학교에서 돌아오면, 반쯤 찬 요강과, 그만큼 방바닥에 흘러버린 똥오줌을 닦았다. 한바탕 씻기고 나면, 똥걸레가 된 옷을 갈아입히고 빨래를 한다. 방문 앞에 있는 종이박스를 뒤진다. 쌀이 없으면 감자를, 감자도 없으면 라면을 먹었다. 면 몇가닥을 물에 씻어 동생에게 쥐어주고 나서 끼니를 때운다.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한 동생은 좁은 방바닥을 뒹굴다 졸기 시작하고, 손님 꼬시느라 바쁠 스칼렛도 한동안은 집에 들어 올리 없다... 하루 중 최고는 늦은 저녁부터 새벽까지다.


그러다 새벽이 되면, 세상에서 제일 싫은 긴 밤이되면, 혼자 쫒기는 깊은 숲속의 토끼처럼, 귀를 바짝 세우고 골목길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혼자인지, 여럿인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노래를 하는지, 싸움을 하는지… 달각달각… 으흐흐… 쉿, 조용히… 애들 깨… 깨면 어때? 아버지 오셨는데? 킥킥… 지랄한다, 아버지는 무슨… 방문 앞에서 구두 벗어 던지는 소리, 가끔은 그냥 신은 채 들어오는 소리… 세명 눕기도 좁은 방 한 가운데에 빨래줄을 못박고, 이사갈때나 쓰는 커다란 이불보를 실로 꿰매어 걸었다. 주로 자정 훨씬 지나 새벽으로 가는 마지막 장사에서, 떡이 된 손님을 집으로 데려왔다. 어떤때는 스칼렛이 인사불성이 되어 업혀 오기도 했고, 아주 드문 일이지만 정말 가끔은, 비교적 멀쩡하게, 혼자 두발로 걸어들어 오기도 했다. 문 잠그고 도망 갈 수 있는 '내방'이라는 건 꿈도 못 꾸는 사치였고, 그나마 피난처로 쓰이던 화장실도 마당에 있었다. 싫어도, 끔찍해도, 정신없이 자고 있는 동생을 방패 삼아 자는 척 했다.


“흐흐, 다들 자네, 우리 애기들 이쁘지?”

깊이 잠든 동생 옆으로 펄럭거리던 이불보, 그때마나 넘나들던 술냄새, 숨소리, 듣다듣다 익숙해진 욕설, 음란한 대화, 미친것처럼 통제가 안되던 웃음 소리, 비명같은 신음 소리 … 차라리 그게 나았다. 어떤 때는 죽일듯이 치고받고 싸우는 통에 온 동네 사람들을 다 깨우기도 하고, 신고 받은 경찰이 오는 적도 많았다. 그때마다 우릴 바라보던 시선, 표정.... 그 망신에 비하면, 그냥 저렇게 이불보 뒤에 숨어서 손님 접대나 하는 게 훨씬 참아 줄 만 하다. 한바탕 일을 치르고 나면 강도가 들어도 모를만큼 잠에 빠지던 여자. 언제든 이불보를 들추고 저 놈이 넘어오지는 않을까 밤새 안절부절 잠 한잠 못 자던 어린 시절이었다. 깜빡 졸다 새벽빛에 눈을 뜨면, 흉한 꼴로 뻗어 자는 벌거숭이들 머리맡으로 굴러가 쪼그리고 잠이 든 은수를 제자리로 잡아 당겼다. 누구와도 마주치기 싫어 살금살금 까치발로 도망 나오는 등교길. 교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가 학교 끝날때까지 종일 책만 읽던 나. 사정을 알리 없는 친구들을 아마 무지 독하게 공부만 하는 ‘조용한 애’라고 생각했을 거다. 절대 집 이야기를 한 적도, 친구들을 데리고 온 적도 없었다.


“너네 집 놀러가도 돼? 너네 엄마 피아노 가르치지?”

“은혜 교회 뒷문에 있는 피아노집이 너네 집이라며? 너도 잘 치겠다?”

“나 어제 너네 오빠 또 봤다. 얘기 안해? 내가 인사했는데…”

피아노 치는 엄마, 대학생 오빠 … 같은 지붕 아래, 다른 세상이 있었다. 마당 가득하던 피아노 소리, 웃음 소리, 사람 소리… 샘이 날 정도로 부러운 소리였다. 늘 다정히 말 걸어주던 집 주인 아줌마는 피아노 선생님이었는데, 빨래 같은 걸 하기에는 너무도 아까워보이는, 예쁜 손을 가졌었다. 아저씨는 고등학교 선생님이셨고, 별로 대화를 해본 적은 많지 않았지만, 키가 많이 크고 마르셨던 것 같다. 두 분은, 우리 학교 소풍날에도 술이 덜 깬 스칼렛 대신 김밥을 싸주시고, 새학기가 되면 오빠를 시켜 문제지 몇권이라도 사주셨다. 주인집 오빠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대학생이라 늦게 오는 날도 많았고, 며칠씩 못 볼 때도 있었지만, 나를 친동생처럼 아껴 주었다. 집 앞을 지나다 마주친 학교 친구들에게 진짜 친오빠인척, 내가 정말 그 집에 사는 아이인 척 해주기도 했다.


“내 입으로 친오빠라고 말 한 적 없어. 애들이 잘못 알아서 그래. 엄마도 피아노 선생님이라고…”

“뭐 어때, 한집에 같이 사는 거 맞잖아. 오빠라 그래도 돼.”

친오빠.. 천사같은 엄마와 멋진 아빠까지… 이런 집에 태어났다면… 상상한 적 있다. 스칼렛이 확 죽어 없어져 고아원에 가게되면, 마음씨 좋은 두분이 나를 맡아주시지 않을까. 비참하다. 이런 생각을 할 만큼, 그만큼 내 인생은 ‘고난’ 그 자체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와 아주 잠깐, 행복한 소리를 듣는다. 피아노 세 대가 각기 다른 걸 연주해도, 시끄러운 적 없다. 차례를 기다리며 숙제하는 아이들, 레슨 끝나고 씩씩하게 돌아가는 뒷모습… 남들의 즐거운 시간은 잠시잠깐씩 부러움과 부끄러움으로 남고, 눈치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어도, 스스로 소심한 투명인간이 되어 재빨리 마당을 지난다. 시멘트 담벼락 구석에 있는, 난방도 안되는 화장실로 숨는다. 일년 열두달, 찬물에 손을 씻었다. 겨울에는 수도가 얼까봐 방울방울 떨어지도록 틀어 놓고, 솜이불로 겹겹히 감아 놓아야 했다. 주인집에서는 일부러 우리를, 특히나 내가 불편할 까봐, 김장이나 이불 빨래 때 말고는 사용하지 않으셨다. 추울때는 안채 화장실에 와서 샤워하라고 하셨지만, 굳이 물 한 주전자를 끓여다 화장실에 들고 가서 씻었다. 어쩌다 연탄불을 꺼뜨려 뜨거운 물이 없을 때는 찬물로 앞머리만 감고 학교를 갔다. 시험 기간이라 시간 아끼느라 앞머리만 감았다더라 헛소문이 나도 못들은 척 했다.


화장실을 나와 담장 옆으로, 어른 하나 간신히 지나갈 틈이 있다. 화장실과 방 사이… 이곳에서 스칼렛의 부업이 벌어진다. 열두살 전교 1등의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던 부업… 돼지…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절대 먹지않는 삶은 돼지 머리… 몇번을 쓰고 또 쓰고 했을 더러운 김장 비닐을 바닥에 깔고 여러 두, 적게는 두셋, 많을 때는 여섯, 일곱, 여덟 두까지 빼곡히 깔아 놓았다. 수시로 주물러 귀를 바짝 세우고, 반으로 자른 나무 젓가락에 입꼬리를 걸어 웃는 모양을 만든다. 멍들거나 얼룩진 곳은 오래되기 전에 식초물에 씻거나, 그래도 안 지워질 때는 아무도 모르게 슬쩍 락스를 풀어 닦았다. 스칼렛은 수시로 돼지 머리를 주물러 원하는 모양을 만들고, 탱탱하니 굳어질때까지 며칠 그렇게 말렸다가 거래처로 가져갔다. 몇년을 그러고 살았어도 여전히 웃고 있는 돼지 머리와 눈 마주치는게 싫고, 그 냄새 섞인 더러워진 공기로 숨 쉬는게 끔찍했다. 시맨트 담장에도, 바닥에도, 돼지 냄새가 남았다. 피할 곳이 없어 밟고 지나다니던 김장 비닐에는 늘 정체 불명의 액체가 흘렀다.


오빠나 주인집 가족들은 그런 더러운 것들, 분명 좋지않은 냄새가 풍겼을 돼지 머리라든가, 새벽마다 잠을 깨우던 술취한 손님들에 대해서… 아니, 스칼렛이라는 술집 여자에 대해서도 문제 삼지 않았다. 만약 아니더라도, 최소한 겉으로는 절대 싫은 티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 혼자 애들 키우느라 힘들다며 그렇게라도 아둥바둥 열심히 산다, 고생한다, 애쓴다... 내게는 참 불쾌한 단어지만, ‘엄마’를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너 공부 잘한다고 아버지 학교까지 소문 났대. 계속 그렇게 공부만 하고 있으면, 지금 시간은 금방 지나가. 잘 될 거니까, 다른 거 신경쓰지 마.”


오빠가 말하는 ‘다른 거’란,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뭔지 감히 상상이나 하고 말하는 걸까. 그 시절 나를 거슬리게 하던 것들… 내 생각으로는, 내 모든 것 - 전부 다 였다. ‘나’라는 존재 자체,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날 처참하게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참기 힘든 건, 역시 스칼렛이었다. 내가 1등을 하는지, 경시대회를 나가는지, 뭘로 상을 받는지… 참 홀로 인생 편하게 살았다. 누가 줬다며 싸구려 립스틱 하나에 입이 귀에 걸렸고, 단골이랑 여행가서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했다. 하긴, 여기저기 쥐어 뜯기고 밟혀서 들어오는 것 보다는 괜찮았다. 병원비 아낀다고 파스로 때우고, 그래도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짙은 화장으로 떡칠을 하고 술을 팔았다. 태풍이나 한파로 많이 팔지 못한 날은 혼자 취해 들어왔다.


“서은영, 공부 잘하는 서은영! 의사되서 나 호강 시켜줘야지.”

스칼렛은 술에 취해야만 기분이 좋았다. 안하던 노래도 하고, 이름도 부르고... 웃기도 했다.

“넌 내가 싫지? 그러니까 빨리 커서 나가. 뭐가 이렇게 오래 걸려? 난 니 나이에 서울와서 돈을 벌었어. 학교가 어딨어? 회사? 학교를 다녔어야 회사를 가지? 흐흐흐… 공장도 사치야, 니 나이에는! 가정부가 딱 맞아! 식모!”

바닥 난 술병을 빤다. 한방울쯤 나왔을까. 혓바닥을 병 목 속까지 넣어보지만 술은 없다.

“에잇, 병에 빵꾸가 났나, 벌써 없어? 야, 너는 술 안먹니? 난 그 나이에 벌써 짝으로 마셨는데. 니 할머니가 날 식모로 팔아서 돈 좀 벌었거든. 근데 내가 누구냐, 그 돈 내가 슬쩍 해서 도망쳤다는 거 아냐. 운전만 할 줄 알았어도 멀리가서 안 잡히는 건데, 에이씨, 거기서 잡혀가지고 이꼴이 된거야.”


말없이 책가방을 챙겼다. 자는 척해도 소용없는 걸 알지만, 한번 들어주면 끝도한도 없다.

“너는, 뭐? 검사? 의사? 꿈 깨라. 무슨 돈으로 대학을 가? 때려치고 돈이나 벌어. 그게 살 길이야.”

그래, 당신 좋아하는 술 많이 먹고, 잔뜩 취해서, 차에 치어라. 집에 오지말고, 길에서 죽어라. 간암이니 폐암이니 많지만, 그런 건 너무 오래 걸린다. 빨리 내일 당장이라도, 내 인생에서 사라져라… 주문처럼, 매일, 매일, 저주를 걸었다. 효과가 있었는지, 아니면 그래도 사람이라고 철이 들었는지, 내 키가 비슷하게 자라자 슬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밤에 은수 감기약 먹여서 재워. 열있어.’

정말 열 때문일까? 자정무렵까지 티비를 보며 버티는 동생에게 억지로 약을 먹였다. 깨지말고 더 자라고, 낮에 너무 자서 절대 잠이 오지않는 아이를 또 자게 하려고, 이것저것 섞어 마구 먹였다. 칭얼거리다 뻗어 자는 동생을 보며 어떤 때는 이걸 다 모아서 내가 먹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침까지 잘 수 있다면, 아무 소리 안 듣고 푹 잘 수 있다면, 운이 좋아 영원히 깨지않고 잘 수 있다면 좋겠다... 용기는 없었다. 한참 땡깡부리다 순식간에 푹 쓰러져 잠이 드는 은수를 보며 겁이 났다. 아직은 죽을 만큼 힘들지는 않은가보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살아보자. 올 여름만, 이번 한 해만, 고등학교 갈 때 까지만, 더 살아보자… 죽을 시간은 그 이후로도 언제든, 많이 있을거다...


조금 커서 부터는, 동생이 잠들고 나면 마당에 나가 책을 읽었다. 도저히 좁은 방에만 있을 수가 없었다. 날씨가 좋으면 큰 길까지 걸어가기도 했고, 한달 5만원이 없어 가지 못한 독서실 앞 계단에 앉아 있기도 했다. 팔고 남은 오뎅을 담아주던 포차 아저씨도 퇴근하던 늦은 시간, 술 한잔 하고 집에 오는 오빠를 만나기도 했다. 스칼렛이 손님을 집으로 데려오는 걸 알고 있던 오빠는, 기꺼이 자기 방을 내어주었다. 따뜻하고 깨끗한 방에서 자고 일어나 슬그머니 학교로 도망 가기도 했지만, 아주머니께 걸리는 날은 같이 앉아서 아침을 먹어야했다. 스칼렛과는 한번도 먹어본 적 없는 아침밥을, 사실 그녀가 멀쩡히 두 눈 뜬 것도 본 적 없던 나를, 오빠네 가족이 함께 해주셨다. 편안해 지고 싶을 만큼 많이 좋았지만, 오빠가 군대를 가면서 다시 혼자가 되었다.


"은영아, 너 할머니가 계셨어? 엄마가 장례식 간다고 아까 가게 문 닫고 시골 갔어. 며칠 걸린대."

살아있는 줄도 몰랐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슬프지 않았다. 혼자 밥도 국도 제법 할 줄 알아 끼니 걱정도 없었다. 삶은 감자나 라면 없이도,어차피 도움 안되는 스칼렛 없이도, 굶지 않을 거다. 오히려 애들만 남겨두니 주인집 가족들이 더 챙겨 주셨다. 속으로 얼마나 한심한 여자로 보였을까 했지만, 핏줄이라고 일부러 편을 들지도, 욕 먹일 일도 하지 않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동생을 씻기던 어느 날, 열흘 가까이 전화 한통 없던 스칼렛이 돌아왔다. 처음보는 아저씨와 함께 왔다. 손님이라고 하기엔 너무 대 낮이었고, 이불보에 숨어 자는 척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난감했다. 그가 스칼렛을 따라 들어왔다. 방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단칸방을 훑어보는데 창피함에 벽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불보라도 걷어 놓을걸, 방바닥이라도 좀 치울 걸.. 말없이 앉아만 있던 그가, 동생 손을 잡았다.

“은수야, 내가 니 아빠야. 지금부터, 아빠랑 살자.”

멀뚱멀뚱 쳐다보는 아이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그가 짐을 챙겨달라 했다. 몇 벌 안되는 옷가지를 쇼핑백에 담았다. 별 말 없이 따라가는 은수도, 보내는 스칼렛도 아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곧 학교 갈 나이가 되어서 데려간다기에 더이상 묻지않았다. 사실 동생이 떠난다는 것보다도, 동생에게 아버지가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럼 나는? 나도 아버지가 있을까? 은수가 가는 그 동네 어디, 이번에 갔다 온 스칼렛의 고향 어디쯤에 살고 있을까?


“뭐? 네 아버지?”

큭큭큭… 스칼렛이 웃었다. 술취한 스칼렛은, 잘, 아무때고 마구 웃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큰 맘 먹고 물었는데 그렇게 비웃었다.

“너 미쳤구나? 작부 딸이 아빠가 어딨어? 그런게 있으면 내가 여태 이 짓을 하겠니?”

취해서 웃었다. 취해야 웃는다. 한번도 맨정신에 대화를 해본 적 없는 스칼렛이 날 보며 웃었다.

“아버지 없는 사람이 어딨어?”

“왜 없어? 야! 예수도 없고, 단군도 없어. 걔네들 다, 아버지 없어도 성공하잖아? 그런거 없도 돼. 엄마도 없이 계란에서 나온 애도 있다며? 흐흐흐흐, 웃기고 있네, 네가 왜 아빠가 필요해? 뭐가 부족해서?”

나는 왜, 이 사람과 대화를 하려고 했을까… 아니, 이 사람같지도 않은 사람과 뭘 하려고 했을까. 한숨이 나왔다. 잠시 잊었다. 말을 섞을 필요가 없다는 걸.

“그러니까, 너는 너 잘하는 거나 하라구. 나는 나 잘 하는 거 하잖아. 너는 공부! 난 술! 썩은 내 나는 생선도 아니고, 불쌍한 길거리 풀빵도 아닌데, 왜? 뭐가 챙피해? 당당하게 가게 세 내고, 세금 내고 다 하는거야, 왜이래? 이게, 다 나라에 허락받고 하는 장사라고. 넌 니 공부 많이 해서 훌륭한 사람 하셔. 오케이? 오라이?”


동생을 보내고, 스칼렛도 나도, 달라진건 없었다. 여전히 빠듯한 살림에 쌀 한톨도 세어가며 먹어야했고, 필요 없어진 감기약과 수면제는 유통기한이 지나도록, 그대로 제자리에 남아 있었다. 화장실은 여전히 추웠고, 돼지머리는 잘 팔렸으며, 술만 취하면 사들이는 감자는 박스 채 차고 넘쳐 쥐꼬리만큼씩 싹이 자랐다. 스칼렛은, 어떤 날은 꽃 한송이를 받아왔고, 어떤날은 머리채를 뜯겨왔다. 밤마다 누굴 달고 들어와 이불보를 들썩이는 것도 여전했다. 벌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먹는 밥, 물, 김치값이 그렇게해서 나오는 거라 했다. 빌어먹을 밑바닥 인생은 어린애 입 하나 줄인다고 탈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분노라는 게 생겼다. 오빠 말대로 가만히 내 일만 하기에는, 이 좁아터진 방구석이에 숨이 막힌다. 십대인 딸을 옆에 두고도 인사불성인, 단 하루라도 엄마로 살아본 적 없는 여자. 환기를 시켜도 빠지지 않는 술 냄새, 담배 냄새, 마늘 냄새… 동 튼 줄도 모르고 뻗어 누운 남녀의 머리맡에서, 반쯤 남은 숭늉을 집어들었다. 주전자 주둥이에까지 배인 술 냄새, 누구껀지 모를 침냄새.. 꿀꺽꿀꺽 남기지않고 들이켰다. 혼자 차려먹는 가벼운 아침식사다. 맹물보다 낫다. 뒤늦게 빈 주전자를 발견한 저 놈을 짜증나게 할 소심한 반항, 목구멍이 바짝 마른 스칼렛이 수돗물이라도 찾으러 밖에까지 걸어나가게 할 치사한 복수… 오줌이라도 한사발 받아놓고 싶었지만, 그저 몇번 바짝 빨아 모은 침을 뱉어 넣고 학교로 도망쳤다.


고등학교 가던 해, 스칼렛이 병원으로 들어갔다. 알콜 중독에 알콜성 치매까지... 바라던 바였지만 아직 어리던 나에게는 어렵고 복잡한, 정신없는, 많은 일들이 생겼다.

“근데, 은영아. 가족중에... 서종원이라는 분이 아버지로 되어있고, 어머니가 이지선씨래. 아는 분들이야?”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찾아왔다. 내 가족, 법적인 가족이 따로 있었다. 스칼렛은 내 어머니가 아니었다...!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 기초 수급을 신청 못했나보다. 친자가 아니라서.”

스칼렛이 병원으로 가더라도, 내 친부모가 살아있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보육원으로 갈 수 없다고 했다. 복지사 선생님이 친아버지에게 연락했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정년퇴직을 한 나이 많은 아저씨 - 할아버지 뻘 되는 사람이었다. 물어 볼 것도 없이, 스칼렛은 이미 가정이 있는 사람의 아이 – 나 – 를 가졌던 거다. 집으로 찾아가겠다는 걸 부인되시는 분이 거절해서, 집 근처 찻집에서 만났다. 아버지는 나오지 않았다. 잠시잠깐 기대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남편은 건강이 좋지않아요. 나이도 많아서 요양병원에 있은지 꽤 되었어요. 혼외자식이 있다는 것도 다 잊었고, 괜히 일만 더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때 그 여자가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다고, 생활비고 양육비고 다 안 받는 조건으로 호적에 올려준거에요. 남편도 호스끼고 숨만 쉬고 있는 판에, 난 얘 못 키워요.”

“아니에요, 키우실 필요 없어요. 저 고등학생이에요. 혼자 살 수 있는데, 일단 고등 학교 마칠때 까지만, 시설에 들어 갈 수 있게요. 돌봐줄 가족이 없다는 서류가 있어야되요.”

많이 놀라는 듯 보였다. 키워달라는 게 아니라 내쫒아 달라는 이야기를 하러 온 혼외자식... 손해 볼 게 없다. 어차피 친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라 보호자가 되어 줄 수도 없다.

“원래부터 남이었고, 이제 정말 남이 될 거니까, 네가 혹시 뭐라고 기대하고 있을까봐 간단하게 얘기할께. 네 엄마랑 내 남편은, 사랑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었어. 그냥 그 여자가 하던 술집 단골이었고, 가정을 깰 생각도 없었고, 그쪽에서 혼자 좋아서 널 낳았어. 하도 애원해서 출생 신고만 해 준거고, 정말로, 다시 만날 생각 없었어.”

“걱정 안하셔도 되요. 저도 이런 일 한번도 들은 적 없어요. 이번에 아예 저하고 호적 정리를 해주세요. 다시는 찾아 오는 일 없게요.”


평생 얼굴도 못 본 아버지다. 다 죽어가는 노인네에게 내가 당신 딸입니다 했다가는 당장 심장 마비라도 올까봐 두려웠다. 약속대로 조용히 발길을 돌렸다. 얼마 후, 법원으로부터 각종 서류들이 도착했다. 호적상 친어머니와의 친자 불일치 소송, 그에 따른 친권 포기, 상속 포기… 고등학생 신분으로 혼자 감당하기에는 참 어려운 문제였지만, 덤덤했다. 어차피 가진게 없어서, 잃은 것도 없었다. 빈 손으로 그룹홈에서 잠시 머물며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다.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건, 내가 가진 수많은 불행 중, 가장 덜 불행한 불행이었다.


“많이 늦었지? 오늘따라 더 막히네.”

반백의 모습으로 오빠가 나타났다. 육십. 멋진 나이다. 목회자는 세월도 받아 들이는 거라며 염색도 하지 않아 더 들어 보였다.

“항상 이렇죠, 답답하니 꽉 막혀서...”

아예 문부터 잠그고 샤도네를 땄다. 잘 덖은 멸치 한 사발과 고추장 한 숟가락, 무치지 않은 오징어채와 매운 고추가 박힌 치즈를 잘랐다. 첫잔을 나눈다.

“바쁜데 전화로 하지 뭐하러 여기까지 와요? 교회 막 비워도 되는 거야?.”

“내가 안 오면 네가 내일 안 갈까봐. 같이 가려고 왔지.”

“뭐 좋은데라고 같이 다녀..”


스칼렛은 요양병원에서도 나를 괴롭혔다. 툭하면 회사까지 전화를 걸어 립스틱을 사오라 했다. 어느날은 망사 스타킹, 또 어떤때는 맥주가 모자란다며 울었다. 술 때문에 생겼을 간경화는 손쓰기에 너무 늦은 상태였고, 최근에는 폐기종까지 겹쳐 고통도 심해졌을거다. 몇년은 심해진 치매로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럴바에는, 아주 싹 잊는 게 편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인생, 이런 딸... 아무것도 기억하지 마라... 그만큼, 내 인생에서도 스칼렛을 없애버리고 싶었다.


“아주머니는, 무연고는 아닌거지? 인수하라고 연락 왔으면, 네가 아직 가족인가?”

“무연고로 해 달라고 했어요. 며칠 전부터 임종 준비하라고 연락왔길래, 나는 친부모가 따로 있다고, 나랑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무연고로 하라고 그랬는데, 근데 처음에 저쪽 병원에서 옮겨 올 때, 그 병원 서류에 내가 보호자로 되어 있었대요. 가족은 아니고 그냥 연락처가 남아 있었나봐."

술잔을 비운다. 또 한가득 채운다.

"그 무연고 사람들 장례랑 화장 해주는 업체를 부르는 것도, 일단은 내가 가서 보호자 아닌걸로 정정해야 처리가 된대요. 담당자하고 내일 아침에 만나기로 약속해 놓고, 오늘 새벽에 죽은거야. 당장 급해지니까 그냥 팩스로 서류 다 보내고 일단 업체 사람들 불렀나봐. 어디 기증하든, 화장을 하든, 맘대로 하라 그랬는데 내일 아침에 화장한다고, 찾아갈거면 오라고.”

목이 말랐다. 스칼렛의 죽음이 슬픈게 아니라, 참 많이 메마른 내가 슬펐다. 이렇게 밖에 얘기를 못 하나. 남 얘기도 눈물 한 방울 쯤은 흘려 줄 수 있었을 텐데.


“전에 있던 정신병원에서도 자끔 전화와서, 나보고 정말 자식 아니냐고, 환자가 딸을 자꾸 찾는다고 할 때도, 끝까지 아니라 그랬어. 어려서 서울에 유학와서 살았던 하숙집 주인 아줌마라고..."

"뭐하러 그렇게까지 얘기해? 너만 더 마음 아프지."

"어차피 내가 서류상 가족이 없어서, 이제는 딸이라고 하는 게 더 복잡해. 근데, 오빠, 있잖아요, 거기서 뭐라는 줄 알어요? 나보고 착하대, 연락처라도 남겨줘서. 그러면서, 언젠가 씻길때 보니까 제왕절개 자국이 있다고, 자식을 낳았을건데 아무도 병문안 오는 걸 못 봤다 그러더라구요.”

반쯤 남은 다시 잔을 채웠다.


“그 순간에 있잖아요, 어? 내가 제왕절개였나? 하는 생각이 드는거야. 그래도 그동안 한방에서 같이 살았는데, 어떻게 그 배에 수술 자국이 있다는 것도 몰랐지? 뭐, 몇번 봤었어도 관심 없어서 그냥 지나갔을 수도 있겠지만, 수술 자국이 나 때문인지, 은수 때문인지도 모르겠고, 그게 기분이 참 이상하더라. 마치 내가 그 뱃속에서 나왔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것 같은, 그런 느낌? 한심해. 한번도 제대로 된 대화라는 걸 못 해본거야. 세상 어떤 부모 자식이, 죽고나서야, 아, 내가 이 배에서 나왔겠구나, 그런 걸 생각해? 도대체가, 정상적인게 하나도 없어.”

“그래서 내일은 어떻할거야? 유골함은 가져 와야지.”

“오빠가 맡아준대서 가져오기는 하는데, 진짜로 혼자 알아서 해. 난 싫어. 생각만해도 병 생겨.”

“그래, 그러면. 일단은 내가 아는 데로 모셔 놓을께, 하나씩 천천히 하자. 나중에 좀 괜찮아지면, 그때 다시 생각해 봐도 돼.”

“뭘 다시 생각해? 얼마나 나중에? 저 세상 갈 만큼 많이 늙으면?”

“그래, 그만큼 많이 늙으면. 우리도 다 용서 해야지.”

“용서는 목사님이나 하셔요. 난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아. 싹 다 잊을거야.”


오십번째 겨울. 카페 스칼렛 café Scarlett 에 눈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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