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순이

by 신소운

결혼 준비로 바쁘다. 아직 한참 남은, 아주 먼 일인것 같았는데 어느새 코앞이다. 눈물 콧물 다 쏟는 이별을 몇번 하더니, 이제야 제짝을 만난 것 같다. 생글생글 얼굴이 확 피었다.


"그렇게 좋냐? 엄마 섭섭하게."

"엄마도 좋아야지, 왜 섭섭해?"

"엄마 두고 가는데 섭섭하지. 너 밖에 없는데."

"가깝잖아. 자주 올거야."

"오지마, 바뻐. 니들끼리 잘 살어."


마음에 없는 소리인걸 알거다. 눈을 반토막만 뜨고 째려본다.

"진짜 안 온다?"

"그래, 오지마. 밥 해달라 그럴거잖아. 나가서 하루 종일 밥하는데, 집에서도 할까? 아유, 지긋지긋해."

딸아이의 눈이 째끄맣게, 잔멸치가 된다.

"진짜로? 후회 안하지?"

"치, 오든가 말든가."


못 이기는 척, 툭툭 접은 빨래를 훅 던진다. 이런거 해 줄 날도 얼마 안남았다. 다림질 하나도 신경 쓰인다. 예비사위한테 책 잡힐까 두번세번 미간에 힘을 주며 반듯하게 선을 잡아 납작하게 누른다. 서서히 열이 오르는 다리미 가까이에 손바닥을 가져가 본다. 구경만 하던 딸이 입을 연다.


"근데 엄마, 있잖아.. 인제 우리 청첩장 할건데.."

올것이 왔다... 그 얘기가 왜 아직 없는지, 궁금했었다.. 무심한 척, 다리미에만 집중한다. 치익... 물 한방울을 떨구어본다. 시작해도 될것같다. 다행이다. 아이를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 문질문질... 아이의 크림색 블라우스를 먼저 다린다.


"너 이쁜걸로 해. 청첩장이 뭐?"

"...."

번개같이.. 망설이는 아이를 훔쳐본다. 미안해진다.

"그 집에서도 다 안다며 뭐 어때? 여쭈어보고.. 정 그러면, 이모부 이름이라도 올리던가."

"이모부 이름을 왜 올려? 그게 더 이상해. 성도 다른데.."


정아는,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덤덤하다. 있지도, 그렇다고 없지도 않은 아버지.. 제대로 사랑 받아보지 못한 생물학적 아버지에 대해 삐딱하다. 이혼했어도 어쨌든 친부다. 결혼을 앞두고 연락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한 건, 어쩌면 나 뿐이었나 보다. 의논도 없이, 혼주석에는 이모부가 앉기로했다며 통보한다. 내 아이에게만은 좋은 가정을 주고 싶었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뭐가 이상해? 청첩장에는 원래 부모 이름이 다 들어가는 거야. 그 집에서 신경 쓰실 수도 있으니까, 좋게 잘 물어보고 해."

"옛날에나 그렇지. 아버지 싫어하는거 다 아셔. 바람나서 이혼했다고 얘기했어."

"그런 얘기는 뭐하러 해? 옛날 일을?"

"간단하게 얘기하고 끝내는게 낫지, 아버지 뭐하시냐, 형제는 몇이야.. 계속 해야돼?"


치지직.... 나도 모르게 힘주어 쏘아댄 분무기에, 다리미가 성난 김을 뿜는다. 천장까지 화르르 뜨거운 습기가 뻗어간다. 틈을 빌어, 들리지 않을 짧은 한숨을 뱉는다. 나도 정아도, 침묵이다. 뾰로통한 아이의 심정도 안다. 엄마 편 들어주는게 고맙고 예쁜 만큼, 나 때문에 꼬여버린 인생이 미안하다. 어디가서도 뒤지지 않을 아이가, 가족 이야기에는 한꺼풀 꺾여있다. 내 탓이다. 어렵사리 물어본다.


"그래서, 아버지 안 부르고 정말 그냥 한다고?"

"어. 청첩장도 엄마 이름만 할거야. 오빠랑도 다 얘기했어. 괜찮대."

"인사도 안가고?"

"안가지. 가긴 어딜가? 거기가 우리집인적 있었어?"


발짝, 양보한다.

"그래, 너 좋을대로 해. 이모네만 부르던가."

"그래서 말인데... 혹시 엄마 이름 좀 바꾸면 안돼?"

"....??"
"요새 아빠 없는 건 괜찮은데, 엄마 이름이 좀.. 그런 이름 안쓰잖아, 난 그게 더 챙피해."


평생 쓴 이름을 이제 와서 뭐하러 바꾸냐.. 한마디 하려다 일단 삼킨다. 이해는 간다. 나도 부끄러운 내 이름을, 결혼을 앞둔 새색시는 더 창피할거다. 시댁 어른들이 줄줄이 봐야 할 청첩장에, 두 사람 친구들과 회사 사람들도 다 볼거다. 70년대도 아니고.. 게다가 아빠 이름도 없이 혼자 덩그라니 찍히게 될 내 이름... 김. 점. 순.


아이도 말 해놓고 미안한지, 슬쩍 일어나 방을 나간다.

"약속 있어서 나간다. 기다리지 마, 저녁먹고 들어올거야."

눈 들어 바라보지 않았지만, 상상이 된다. 차마 말하지 못해 입술을 꼭 다물고, 엄마 미안해.. 속으로만 중얼거리며 자리를 피했을 거다.


달그락달그락 쓸데없이 부엌에서 왔다갔다 부스럭 거리더니, 마침내 밖으로 나간다. 쿵... 현관문 닫히는 소리에 나도 억지로 쥐고 있던 다리미를 내려 놓는다. 다려야 할 옷이 몇개 남았지만, 코드를 뽑아버린다. 다리미보다도 손바닥이 더 화끈거린다. 김점순.. 촌스러워서만은 아니다. 그 세글자 안에 내 어린 시절, 가족.. 모든게 들어있다.


***********************


어머니는, 꽤 사는 어느 종갓집의 큰 며느리였다. 부연 설명을 좀 하자면, 상고를 갓 졸업한 어머니가 돈 좀 굴린다는 사무실에 취직을 했고, 사장 눈에 들어 시집을 간거다. 어쩌면 처음부터 어리고 순한 여직원을 낚아챘다는 말이 맞을거다. 나이 열 아홉에 배까지 불러 결혼을 하게 된 어머니는, 신혼은 둘째치고 출산 준비를 한다며, 바로 홍천 본가로 보내졌다.


나이차이는 좀 있어도 넉넉한 집에 시집가니 다행이라며 위로하셨단다. 시골에서는 보기 힘들던 자가용을 타고, 입덧에 멀미까지 하며 간신히 도착했다. 팔봉산이 내려앉은 기다란 강줄기에서, 온동네에 모르는 사람 없던 거대한 부잣집 앞마당에 들어섰다. 그리고, 7명의 아이들을 떠맡았다. 어머니 보다 겨우 5살 어린 첫째부터, 막 걷기 시작한 막내까지.. 나는 아버지의 여덟번째 자식이었고, 어머니는 그의 네번째 부인이었다...


속아서 한 결혼이지만, 면사포 쓰고 도장찍었으니 결혼은 결혼이다. 잔뜩 불러온 배 때문에, 첩첩 둘러쌓인 산봉우리 때문에... 열아홉살 새댁은 감히 도망갈 수 없었다고 했다. 남이 놓고 간 막내까지 업고 안고 쓸고 닦으며, 나를 낳았다. 본가에 덜렁 던져두고 코빼기도 안보이던 아버지라는 사람은, 또 딸이라는 소식에 집에 와보지도 않았다.


"점순이해라."

시어머니 - 내 친할머니 - 의 말 한마디에 나는 점순이가 되었다. 출세한다는 눈썹점도 아니고, 돈 들어온다는 입술점도 아닌, 날때부터 오른쪽 광대뼈에 푸르딩딩하니 대추알만한 점이 있었다.

"안그래도 딸이 넘쳐나는데 뭐할라고 또 기집애를 낳아?"

할머니의 타박에 어머니는 한마디 대꾸 못하고, 나를 '순이'라 불렀다.


놀림 받았다. 딸이라 받은 구박은 구박도 아니다. 그저 이름 때문에, 점 때문에... 눈도 못 마주치게 엄청 커다랗던 언니 오빠들에게 늘상 치이는게 일이었다. 리어카 태워 준다며 데리고 나가 홍천 강자락에 버리고 지들끼리만 돌아오거나, 낡아빠진 작은 옷 하나도 물려주기 싫어 갈갈이 찢어버렸다. 귀한거라며 묵혀놨던 상한 음식을 먹이고, 병원놀이 하자며 한밤중에 끌고나와 평상에 묶어놓기도 했다.


"니 엄마도 집 나갈거야. 기다려, 얼마 안남았어."

"여자들은 원래 새벽에 내빼거든. 특히 너가 깊히 잘 자고 있을 때."

"다른 엄마가 또 와. 가끔 애만 혼자 던져 놓기도 하지만.."


2살 차이나는 내 바로 위 언니... 그 언니의 엄마는 갓난 아기만 던져두고 사라졌다고 했다. 그나마 우리 둘은, 나이도 비슷하고, 막내 딸 라인이라 구박 받는 것도 비슷했다. 어머니에게도 업어 키운 정이 있는지, 그나마 친딸처럼 굴었다. 우리 둘은, 그렇게 자매 비슷하게 어울려갔다.


"순이야, 엄마 아프대."

언니가 살짝 알려주었다. 결핵이라고 했다. 가뜩이나 외풍 심한 문간방에서 같이 지내던 우리는, 강제로 어머니와 떨어져야 했다. 몹쓸 병 얻어왔다며 노발대발하는 할머니 손에 이끌려 언니들 방으로 꾸역꾸역 들이밀어졌다. 당연히, 아무도 우리를 반기지 않았다. 딸이 여섯이었다. 매일 밤, 언니들 발 밑에 구겨져 잠이 들었다.


결핵균을 달고 왔다며 자기들 쪽으로 얼굴도 못 돌리게 했다. 집안에서도 수건으로 입을 꽁꽁 묶어 멀찌기에 세워놨다. 가뜩이나 차이나던 밥상은 엄마가 자리에 누우며 더 심해졌다. 할머니와 겸상하는 오빠 둘은 늘 조기를 뜯었고, 그 옆에 따로 앉는 언니들도 국물 정도는 먹었다. 그리고 두 상을 다 들이고 나서야 겨우 마루 끝에 걸터앉는 우리 둘은, 맨밥에 숭늉, 김치.. 운이 좋으면 간장에 찍어 먹는 생 김 몇장이 전부였다.


"왜 우리만 미워해?"

"쓸모가 없으니까. 언니 오빠들은 집안일도 하고, 농사도 하잖아. 우린 아무것도 못하고, 난 엄마도 없지, 너네 엄마는 일해야되는데 아프지.. 우리 셋은 밥만 축내는거야."

"아버지는 언제와?'

"안와. 온적 없어."


엄마의 결핵은 쉽게 낫지 않았고, 어찌 알고 보건소 사람들이 나왔다. 아무리 집이 크고 격리를 잘해도, 동네에 퍼질수 있으니 위험하다고 신고가 들어왔단다. 나는 바로, 할머니나, 언니 오빠를 의심했다. 자유롭게 안방을 드나들며 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 아마도 어른이거나 어른에 가까운 사람, 엄마를 쫒아버리고 싶은 집안의 누군가.. 분명 그런 사람이 신고를 한거다... 나를 노려보는 할머니의 눈이 싫었다.


엄마가 격리 시설로 실려가고, 소독차가 왔다. 온 집안에 약을 뿌렸다. 그나마 돈이 많아 그런것도 할수 있다며 흐뭇해 하셨다. 늘 더러운 옷에 배가 고팠던 나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소독차가 왔다간 다음날, 아버지가 내려왔다. 그제서야 정말 부자처럼 차를 몰고, 일년에 한두번 명절에나 보던 좋은 옷을 입고, 활짝 웃으며 들어왔다. 아버지는 날 알아보지 못했다. 아니, 줄줄이 늘어선 여덟명의 아이들 누구에게도, 아는 체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의 두 팔에는 비싼 아동복 정장을 차려 입은 남자 아이가 안겨 있었다. 고령임에도 빠르게 뛰어나온 할머니가 아이를 받아 안았다.

"아이고, 경필이 왔구나!"

경식, 경호, 그리고 경필... 그렇게 아버지는 아들 셋을 두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부터 더더욱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 인간이 되었다.


"왜 나만 점순이야? 언니들은 다 보통 이름인데.."

언젠가 어머니에게 물었었다. 경식, 경선, 경호, 미선, 영선, 주선, 태선... 나는 점순 그리고 막내는 경필..

"구박 받을까봐 그랬지. 너 이름 이쁘게 짓고, 나까지 거기 같이 살면, 엄마 없는 애들이 너를 얼마나 샘냈겠나? 구박받지 말고, 편안하게, 낮게 살으라고 그렇게 지었다..."


얼마나 낮게, 얼마나 오래 납작 엎드려 지냈을까.. 어머니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 날 처음으로, 존재조차 알지 못하던 그 아이를 보셨다. 나를 밀어내고 막내가 된 남자 아이와, 아이의 엄마인 그 여자도 함께였다. 어머니는 청소할때 빼고는 절대 들어가보지 못한 따뜻한 안방에서, 할머니 옆에 벌러덩 누워 아들과 낮잠자던 여자는, 내 어머니를 보는 둥 마는 둥, 스르륵 등을 돌렸다.


종갓집 며느리는 절대 이혼 할 수 없다던 할머니가 먼저 이혼 얘기를 꺼냈다. 병원에서 막 돌아온, 그날이었다. 며칠 후, 펑펑 우는 막내 언니를 두고, 어머니 손을 잡고 집을 나왔다. 아버지와는, 그들과는.. 그게 마지막이었다. 성인이 된 후에, 막내 언니가 연락을 했다. 아버지의 여자들은 이후로도 계속 바뀌었고, 자식은 더 늘었다고 했다. 갈 곳 없던 언니는 집을 떠나 우리에게 왔다. 여전히 내 어머니를 엄마라고 불렀고, 나를 순이라고 불렀다. 한번도, 점순이라고 하지 않았다...


"다 날렸어. 그 꼴 못 봐 다행이지, 할머니는 진작에 돌아가셨으니."

집안의 기둥은 작은 오빠였다. 유일하게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온 식구가 다 속았다. 여러번 사업에 실패했지만, 대박이다, 확장이다 속이며 계속 돈을 끌어들였다. 모두가 빚과 보증으로 힘들어하자, 둘째 오빠네 가족은 미국으로 사라졌다.


그 일로 아버지가 쓰러져 말을 못한다고 했다. 산자락을 통째로 깔고 앉았던 거대한 집도 날리고, 몇번째인지도 모를 마지막 여자도 떠났다. 자식들은 풍지박산났다. 이혼 당한 큰 오빠만 아버지와 산다고 했다. 남의 농장 일을 하는데, 아버지는 자기 몸 하나 돌아눕기도 힘들다는 소문이 들렸다. 쌤통이다. 언니와 둘이, 잘 차려입고 두 사람 약 올리러 가보자 낄낄거렸지만, 사실 그럴만큼 우리 형편도 엄청 좋지는 않았다.

안보이는 곳에서 허드렛 일로 전전하던 나에 비해, 그래도 붙임성 좋은 언니는 명동의 유명한 한식집에서 서빙을 했다.

"땀 흘려도 잘 안 지워진대. 발라봐."

어느날, 우리 수준에서는 조금 비싸 보이는 외제 파운데이션을 사들고 왔다.

"내가 이런게 뭐가 필요해?"

"너, 엄마 닮아서 이뻐. 화장도 좀 하고.. 좋은 사람 만나."


화장은 시작했지만, 좋은 사람은 만나지 못한 것 같다...

*******************


"뭐하느라 여지껏 안 나와? 와서 봐야지. 벌써 다 뜯어냈는데."

전화가 왔다. 언니는 골목 아래 길가에서 분식집을 한다. 볼품없어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그 건물 주인이다. 분식집 위로 3층까지 월세를 주는데, 이번에 딸아이 신혼집 하라며 꼭대기 층을 1년간 공짜로 내주었다. 바지런한 손으로 벌써 바닥이랑 도배를 불렀다.


"가야지, 집주인이 부르시는데."

"집주인이 무슨... 이런 건 색시 엄마가 와서 보는거야. 빨리 와."

전화를 끊고 가벼운 겉옷을 두른다. 거울을 본다. 없어질 줄 알았던 시퍼런 점은, 어느새 칙칙하니 갈색을 띤다. 파운데이션을 콕 찍어 그 위에 바른다. 점이 사라진다... 습관이 되었다. 아직까지 예비사위에게도 보여준적 없다.


종종 걸음으로 나선 계단 아래에 우편물이 와있다. 이정아, 김점순, 이정아, 이정아, 김..점..순... 금테 두른 예쁜 청첩장에 찍힐 이름 김점순... 김점순 여사의 장녀 이정아... 그래, 아이가 싫어할만 하다. 우편물을 가방에 구겨 넣고 빌라를 나선다. 김점순... 단박에 떠오르는 이름이 없다... 뭐가 좋을까.. 자박자박 골목을 걷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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