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새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마음 가는 곳이 집이다
1장. 외지인
“여기있었네. 자네 집에 젊은 애 하나 또 왔다며? 뭔 사고를 쳤길래 여기까지 와 배를 탄대?”
장고 마트 강 사장이다. 어망에 붙은 잡풀을 떼어내던 이장은 뒤도 돌아보지도 않았다.
“인제 구해서 뭘 어쩔라고, 잠깐 놀러 온 거겠지? 며칠 빈둥대다 돈 받고 사라지는 애들 있잖아. 이름이 뭐래?”
“몰라, 그냥 훈이래. 부산에서 왔는데 고아야. 배는 어려서부터 좀 탔대.”
“어이고 혹시, 전에 그 놈처럼 전과자 아냐? 부산 살던 놈이 이 구석탱이를 왜 와? 수상한데?”
“글쎄, 조용하니 순하던데... 아무 일이라도 좀 줘, 불쌍하잖아.”
“불쌍하기는, 뜨내기구만. 요즘 애들이 진득하게 일이나 해? 농땡이치면 바로 보내버려.”
“외지 놈들 올 때마다 어수선 하긴 해. 문 단속 잘 하고, 한동안은 좀 지켜보자고.”
‘부산 청년’ 은 이장 집 문간방에 묵었다. 머리통 하나 겨우 드나들 작은 창문 너머에 낡은 양철 지붕 집이 보인다. 혼자 사는 할머니는 귀가 어두우신지 중얼중얼 티비 소리가 하루 종일 청년의 방까지 들렸다. 까만 페인트로 딱 두 글자 ‘민박’ 이라 적은 프라스틱 조각, 절대 잠기지 않을 녹슨 대문, 동그란 스탠 밥상에 놓인 누룽지 한 그릇과 김치, 고추장... 목만 쭉 빼도 다 들여다 보이는 담장 안에 구부정하니 쪼그려 앉은 할머니가 오이를 씻고 있다.
“식사 하세요? 할머니, 뭐 시키실 거 있음 부르라니까요. 돈 안 받아요. 아무거나 시키고 밥 좀 주세요.”
“넉살이 좋은지, 뻔뻔한지? 맨날 남의 담벼락에 붙어서 무러 그리 들여다봐?”
“이 집에서 보면 바다가 더 예뻐요. 손님은 많아요?”
“없어. 빈둥거리지 말고 얼른 가서 일이나 해.”
청년이 실실 웃으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애교가 많은 것 같다.
“새벽부터 지금까지 했어요. 이제 막 끝나고 잠깐 쉬려구요. 할머닌 여기가 고향이에요?“
“고향이 따로 있나. 마음 가는 데가 고향이지. 너는 부산서 왔다고?”
“예, 태어난 데만 부산이구요, 돌아다니는 거 좋아서 여기저기 많이 다녔어요.”
“도시 살지, 여길 어찌 알고 여기까지 들어왔어? 얼마나 있다 가는데?”
“몰라요. 좋으면 더 살고, 일 없으면 가고… 그니까 일 좀 주세요. 저 손재주 좋아요.”
청년이 열 손가락을 쫙 펴고 흔들어 보였다. 할머니가 웃으며 오이 하나를 내밀자 청년이 냉큼 받아 물었다.
“뺀질뺀질하니, 평생 밥은 안 굶겠다.”
배가 뜨지 못하는 날이면 고깃배가 아닌 이장댁 식당 일을 도왔다. 생선 손질부터 청소, 술 심부름까지 모두 청년의 일이다. 낚시 못나간 이웃들이 모여 건네는 술잔에 벌겋게 달아 올라도, 거절하는 법이 없다.
“이 친구 잘 왔네. 이장이 이번에는 제대로 데려왔어.”
“술 친구하라고 일당 주나? 아, 작작 좀 먹여?”
“싹싹하니 젊은 애 하나 있으니 동네가 좀 사는 것 같애. 어디 모자란 놈인가 걱정했는데 다행이야.”
“근데 한창 나이에 장고도까지 들어왔어? 카드 빚이 있나?”
“아뇨, 역마살이래요.”
청년의 대답에 섬 사람들이 웃는다. 굵어지는 빗속에 빈 술병이 늘어난다.
“우린 다 여기 토박이야. 여기서 나고, 자라고… 중학교 간다고 잠깐 육지간거 빼고는, 평생 여기서 살았어. 그때는 말이야…, ”
섬 이야기, 어린 시절 이야기… 국민학교 (분교)도 있었지만, 지금은 폐교됐다, 고대도를 지나 대천항까지 가는 배편이 늘어 편하다, 여름철 반짝 관광객도 늘고, 전에 없이 식장과 가게도 생겼다, 집, 땅 다 팔고 육지로 간 사람도 많다… 청년은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바짝 다가와 앉았다.
“우리 수퍼에 말이야, 가끔 나가서 물건 사 올 사람이 필요해. 그때그때 수시로 가서 박스로 들여와야 되니까, 일 없을때는 자네가 좀 도와줘, 응?”
적당히 술이 오른 수퍼 강 사장이 매운 고추를 넣은 쌈을 청년의 입에 넣어주었다. 맛된장이 최고다. 처음 왔을때 의심했던게 미안했는지, 이것저것 용돈 벌이 할 일들을 알려줬다. 배 손님을 식당이나 민박으로 데려오거나, 배에 태워 섬을 구경시켜 주고, 특히 낚시꾼들을 입질 좋은 포인트으로 데려다 주면 몇 만원은 쉽게 번다고 했다. 가끔 육지에 나가면, 잊지말고 항구, 렌트카 회사, 식당 등에 장고도 전단지를 꽂아놓아야 한다.
'일만 많지, 노인네가 할 일은 하나도 없네…'
청년이 중얼거렸다.
2장. 고대도 할머니
“근데 여긴 주말 장사인가 봐요. 왜 맨날 이렇게 조용해요?”
강 사장을 도와 물건정리를 했다. 너른 뻘을 파고드는 도요새가 가늘고 긴 고음을 낸다. 멀리까지 꾸준히 살펴 보지만, 몸이 작은데다 흙빛을 닮아 한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는다.
“시즌 지나면 그렇지. 어쩌다 사진 작가라고 며칠씩 묵기도 하는데, 별로 없어. 낚시나 좀 오고, 가족끼리는 옆에 큰 섬 왔다 가는 길에 잠깐 들리는게 다야, 항구, 낚시배, 모래사장… 다 똑같잖아. 이왕이면 식당 많고 잠자기 편한데 가지.”
빈 박스를 꾹꾹 밟아 크기대로 묶었다. 먼지는 좀 나지만 이게 빠르다.
“많이 해 본 솜씨네. 여기 어때? 살기 괜찮지?”
청년이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바닷바람에 땀도 한방울 흐르다 만다.
“오호? 싫지는 않은가 봐? 나는 내 밑으로 젊은 사람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아이고, 내가 나이 육십 넘어 이 동네 막내야. 뭔일 있으면 맨날 이집저집 불려다니고… 근데 어쩌나, 여긴 아가씨가 없어서, 여기 살려면, 자네가 뭍에가서 하나 데리고 들어와야돼. 수영 못하는 여자로 잡아와야 도망을 못가지.”
푸흡… 청년이 웃었다.
“가둬두게요?”
“어어? 웃지? 원래 섬이라는 데가, 살아본 사람이나 살지, 아무나 못 살어. 여기서 나고 자라도, 머리 커지면 다 떠나. 자네 앞집에 고대도 할머니, 애들이 어릴때 다 나갔어. 내가 보령에서 식당 말아먹고 고향이라고 빈 손으로 돌아왔을 때, 그때 할머니도 여기로 옮겨오셨어. 그땐 정말 관광객도 하나 없이, 주민들만 살았는데, 바다 나가고 조용~할 때는 무인도 같았지. 에이구, 오늘이 그 집 제사인데, 평소에는 소주 드시는데, 아까 청하 하나사가시더라고. 옛날에 딸래미가, 육지로 학교 갔다 일찍 죽었거든. 자식 제사니까 절에 갖다 차려주라 그래도, 섬 떠났다가 죽은 자식을 어떻게 또 바다건너로 내보내냐고, 여태 본인이 하셔.”
장갑을 벗어 바지에 툭툭 털고 평상에 앉았다. 강 사장이 아이스크림을 하나 꺼내왔다.
“섬에서는 이게 제일 귀한거야, 알지?”
“고맙습니다. 오늘 일당이네요.”
“그렇지, 자네 덕분에 금방 끝났어, 고마워. 근데, 그, 고대도 할머니 말야, 왔다갔다하면서 얘기 좀 하고, 친구 좀 해 드려. 혼자서 외로우실거야. 손자손녀들이 멀리 살아 잘 못와. 먼저 간 그 딸도, 애가 하나 있는데, 본적도 없지. 본인이 죽네사네 많이 아팠을 때라서 얼떨결에 고아 만들었어. 아마 그게 미안해서 제사 챙기시겠지. 쯧, 안됐어.”
“어디가 편찮으셨어요?”
“죽을 뻔 했대. 술 한잔 들어가면 술술 옛날 얘기 다 하시거든. 무슨 병인지 들은 것 같은데 잘 모르겠고, 대학병원가서 여러번 수술하고 간신히 살았대. 발목이 이만큼 썩어 들어가서 잘라냈어.”
“아, 연세 때문에 힘드신게 아니구요? 그럼 지금은 의족이세요?”
“응, 그게 내리막길이 더 힘들거든. 이렇게, 절룩, 절룩, 하는데, 어쩌다 육지 가는 날이 병원에 약 받으러 가는 날이야. 아우, 약을 한바가지씩 먹어. 그래도 할아버지 죽고나서 많이 편해진 건데, 애들이 고생했지. 엄마가 꼼짝 못하고 누웠으니 밑에 둘은 중학교도 못 나왔어. 쪼꼬만 것들이 고기 손질하고, 배 청소해주고 먹고 살고, 애기가지 데려올 형편이 아니었어.”
“애기 아버지는 연락 없구요?”
“그 개 자식은, 딸래미가 다니던 학교 선생이인데, 유부남이야. 가짜로 부모 도장을 파가지고 자퇴를 시켜서, 어디 멀리 가서 몰래 애 낳게 하고, 일 해서 먹고 살으라 그랬다는데, 갓난애를 업고 뭘 어떻게 해? 어쩔수 없이 잠깐만 맡긴다는 게, 보육원에 맡기고 얼마 안되서 애 엄마가 죽어버렸어. 그 놈은 잘됐다 어디로 내빼고.”
띠엄띠엄 떨어진 가로등을 따라 언덕을 올랐다. 평소와는 달리 활짝 열린 대문으로 할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술잔 하나, 청하 한병.
“혼자 드세요? 안그래도 한 잔 하실려나 해서 들렀는데.”
일당으로 받은 소주 두 병을 내려놨다. 좁은 방 안에 손가락만한 하얀 초가 타고 있다. 앞으로 쭉 뻗고 앉은 두 다리… 어느 쪽이 의족일까.
“잘 왔다, 밥 먹고 가라.”
“누구 제사에요, 사진이 어려 보이네?”
무심한 척 툭 던졌다. 뚜껑 딴 소주병 목을 툭툭 쳐 제사상 쪽으로 두어방울 뿌렸다.
“제사는 무슨… 이래야 나도 한번씩 맛난거 먹지. 거기 불 켜라. 전이 좀 식었는데 괜찮지?”
할머니가 손 끝으로 굴 전을 눌러본다. 탱탱하니 먹을만 하다.
”혼자 드실건데 이렇게 많이 하셨어요? 잔 받으세요… 저 분, 예쁘네요, 동생이세요?”
“아니고, 내 딸이다. 어려서 죽은 큰 딸.”
“어쩐지, 할머니랑 닮았어요. 요기 이렇게 턱이랑 입이랑… 다른 사진 더 있어요?”
“사진으로 닮은 게 보이나? 어릴때는 웃는 게 많이 비슷하다 그랬었는데..”
누릿누릿 더러워진 종이 상자를 열었다. 이게 큰 애 어릴 적, 여기도 있네, 이건 고대도 살 때… 하나 둘, 사진을 꺼내셨다.
“내 사진은 별로 없다. 어때, 좀 닮았나?”
“어릴 때 얼굴로는 잘 모르겠는데요.”
“그렇지? 나이 먹고 좀 커봐야 닮는데...”
“어? 여기 이 애기…? 혹시 이 애기 안고 있는 분이 따님이세요?”
청년이 사진 하나를 꺼내들었다. 한 톤 높아진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곱슬 머리의 젊은 여자가 아기를 안고 있다.
“아니지, 나야. 내가 젊었을 때 우리 막내 안은 거, 백일쯤 됬을때다.”
“아, 그렇구나, 저 사진은 몇 살 때에요?”
청년이 상 위의 사진을 가르켰다.
“여상 다닐 때니까 한 열 여섯, 일곱? 이력서에 쓸려고 찍었다는데, 마지막 사진이 됐어.”
쌍꺼풀 없는 눈에 긴장한 듯한 미소, 단정히 내려빗은 생머리와 교복... 마지막 사진이다.
“모범생 같애요. 공부 잘 했죠?”
“잘 했지. 큰 소리 한번 낸적 없이, 조용하고 얌전하고, 밥도 동생들 먼저 먹인다고 기다렸다가, 남긴 거 있으면 째끔씩 줏어먹고, 저는 괜찮아요, 배불러요 하던 애였어. 커서 육지 나오면 지가 다 벌어 대학 보낸다고, 꼭 인문계 가라고…”
할머니가 소매 끝으로 눈물을 닦았다. 청년이 말을 돌렸다.
“다른 가족들은 가끔 보세요?”
친 손자 둘은 다 커서 자주 못 오고, 딸네는 아예 멀리 살아 바라지도 않는다 하셨다.
“그것들은 쓸데없이 애를 셋이나 낳아서, 막내가 아직도 학교를 다닌다.”
“그래도 보고 싶으시죠? 손자손녀 다 합하면, 몇이야, 꽤 되네.“
“다 합하면야, 많지... 다 하면, 한 대여섯 되어도, 놀러오고 그런것도 없어. 할아버지 제사도 안 와서 혼자 간단하게, 그냥 술 좋아하셨으니 소주 올리고 말아. 귀신한테까지 뭔 정이 있어 상을 차리나.”
“할아버지는 왜 돌아가셨어요?”
“술 먹고 죽었다. 술 귀신이 씌여서, 태풍 오는데 술 쳐먹고 남의 배 집어 타고 나갔다. 며칠 지나 배 먼저 찾고, 할아버지는 보름 더 지나 찾았지 싶다.”
소주 한 잔 드시는 사이에, 청년이 핸드폰으로 제사상을 찍었다. 액자도 없이 벽에 기대어 놓은 사진도 함께 찍었다.
“아무것도 없는 걸 뭐하러 찍어?”
“그냥요, 그냥, 왔으니까 찍어 둘라구요. 사실은, 누가 제사하는 걸 처음 봐요. 교회 보육원에서 커서, 제사, 차례, 이런거 한번도 못 해봤거든요.”
할머니가 망설임 없이 청년의 잔에 남은 청하를 따랐다.
“한잔 올려라. 내 손님이니 줘도 된다. 어서?”
잔만 받고 머뭇거리는 청년을 잡아 상 앞 쪽으로 끌었다. 무릎으로 걸어 공손히 앉았다. 딸의 사진을 반듯이 잘 세우고, 할머니가 청년의 손을 잡아 잔을 돌렸다. 두 팔을 쭉 뻗어 술잔을 상에 내려놓고, 청년이 천천히 일어나 절을 했다.
“됐다. 이리 앉아 마저 먹어라.”
청년이 가만히 선 채로, 사진을 몇 장 더 찍었다. 위에서 보니 푸짐하다. 구겨져 더 오래 되어보이는 사진 앞 술잔, 흰 밥, 굴국, 어리굴젓, 굴전… 할머니가 소주를 연거푸 들이키셨다.
“찬을 몇 개 더 할 걸... 지질이도 못난 상을 자꾸 찍네.”
“굴 좋아하셨나봐요.”
“굴, 낙지, 새조개… 바다에서 나는 건 다 좋아했는데, 그때는 팔아야 되어서 많이 못 먹였다. 아이고, 오늘 네가 올 줄 알았으면 낙지 잡아다 연포탕이라도 해 놓을 걸.”
“아니에요, 제가 뭐라고…”
할머니가 마시려던 술잔을 잠시 내렸다. 짧은 한숨 후, 조용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뭐긴, 손님이지. 아무도 없는 내 집에 온 손님... 밥상 말고, 바다를 찍어. 해 떨어지면 이쁘다.”
“많이 찍었어요. 도요새도 찍구요.”
“도요새 볼 줄을 알어? 보통 사람들은 갈매기나 날아들면 좋아하지, 그렇게 작은 새는 잘 몰라. 꼼지락 꼼지락 뻘에 들락거리면 징그럽다는 사람도 있고.”
“뻘안에서 먹을걸 잡나요?”
“먹이도 있고, 새끼도 낳고… 뻘 속에 산다. 그것들은 둥지가 없거든.”
“새가 둥지가 없어요?”
“멀리 가야되서 바빠 죽겠는데, 언제 둥지를 지어? 뻘에 구멍 파고 들어가 대충 살다가, 물 들어오면 옮기고, 무너지면 옮기고, 그러다 때되면 한번에 화라락 다 가버리지.”
“아, 처음 알았어요. 그래도, 그 옛날 노래는 아는데, 도요새 에에, 도요새 에에, 가장 높이 날으는 새..”
서툰 음정에 할머니가 활짝 웃었다.
“그래, 그 노래 잠깐 반짝했었다. 천연기념물이다, 뭐다 난리였다. 어느 날은 농사 짓는다고 뻘을 죄다 갈아엎고, 좀 지나니 관광지 한다고 시멘트 부어 호텔 짓고, 이젠 새가 잘 오질 않아. 간월도로 올라가던지, 아니면 군산까지 내려가든지 해야지, 여기는 반도 안돼.”
“도요새 좋아하세요? 잡아드릴까요?”
“아이고, 그 째끄만 걸 왜 잡아? 살게 놔둬. 나 좋자고 잡아두면 안되지. 고놈들이, 예쁘진 않아도 가끔 귀엽다고. 종종거리고 뛰는 게 키 큰 참새 같기도 하고, 먼길 돌아 매년 와주니 반갑고 고맙고, 끼익끼익 시끄럽다가도 한순간 싹 사라지면 섭섭하고 그래.”
“강아지는 안좋아하세요? 혼자 사시는 거 보다, 뭐라도 옆에 있는게 낫잖아요?”
“예전에 다 키워봤다. 근데, 사람이 말이야, 병 들고 나이가 들어, 갈 때가 되잖아? 옆에서 아프고 죽고 하는 걸 보는 게, 그렇게 힘이 들어. 예전에는 아, 노인네 나이 먹으니 죽는구나 했는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아. 우리 딸도 그렇고, 나이 먹고 술 채서 죽은 영감도 그렇고... 어려서 병으로 죽은 딸이 아직도 더 많이 보고 싶어. 내 새끼 죽는 것도 난 못 봤거든. 지옥 문까지 갔다왔더니, 다 화장해서 뿌린 다음이었어…”
술 기운에 혀 끝이 둔해졌다. 옆으로 쪼그리고 누운 할머니께 베게를 받쳐 드렸다. 꼬깃꼬깃한 주름을 타고 내리는 눈물을 보았다. 청년은 남은 소주를 병 째 들고 한 입에 비웠다.
3장. 고향길
눅눅하니 곰팡이 퍼진 벽지를 새로 발랐다. 혼자 척척 해내는 청년을 보며 할머니가 저녁을 준비했다. 이미 시작한 술병이 바닥을 보인다.
“전문가네. 자격증 따도 되겠다.”
“더 해야 돼요. 어깨 너머로 배운거라 아직 멀었어요. 근데 할머니, 요 며칠 뻘이 휑 해요. 도요새 다 갔나봐요?”
“시월 끝에 다 가지. 5월에 또 오고… 잊을만하면 와서 끽끽 얼마나 소리를 지르는지, 귀구녕이 쨍 해진다. 그, 남은 정리는 있다가 하고, 일단 앉어. 식기전에 먹자.”
“예, 고맙습니다. 근데, 그 쪼끄만 것들이, 오고 가고 길도 잘 아네요.”
“본능이 다 가르쳐준다. 에미가 가는대로 고대로, 폼은 하나도 안나게 생겼어도, 날기도 잘 날고, 빠릿빠릿 잘 먹고… 왜, 자꾸보니 도요새가 좋아져?”
할머니가 소주 한 병을 새로 꺼내 청년의 잔을 채웠다. 밥 먹는 모습을 바라만 본다.
“아녜요, 새 안 좋아해요. 힘이 없잖아요. 불쌍해서 싫어요. 보고 있으면, 꼭 저 같애요. 오라는 사람도 없는데 자꾸 옆에 오고, 관심 끌려고 알짱거리고… 멀리 가는 거 같은데, 가도가도, 결국은 제자리에 와있고… 딱 저같아서 밉지는 않아요. 근데 걔들은 왜 그렇게 멀리 다닐까요? 보고 싶은가? 가족 같은 거요, 고향 찾아 오나요?”
“여기가 고향인 애들도 있겠지. 아니면 엄마 고향, 할머니 고향…”
“음, 그래서 자꾸 오나보네. 둥지는 없어도 할머니 집 이니까.”
“그렇지. 사람이고 동물이고, 핏줄이 땡긴다고 하잖아. 어서 먹어. 낼 떠난다고?”
“예, 아침 열시 반 첫 배요. 아, 이, 게국지, 이게 소주랑 딱이에요.”
“뭐든 소주랑 먹으면 다 좋다. 육지 가면 어디 잘 데는 있고?”
“아직 안 정했어요. 뭐 또 여기저기 돌아다녀야죠. 크~, 할머니 한 잔 더 하세요.”
“난 벌써 많이 됐는데, 그래, 따라봐라. 가는 길인데 제대로 한 잔 하고 보내야지. 나이들면 한잔씩 마셔야 잠이 와. 너도 그렇지? 마음이 착해서 그렇다. 가슴 한 쪽에 보고 싶은 사람이 콕 박혀 있어서, 정이 고파서 술이 들어가는 거야.”
국물을 한 수저 삼키고 빈 술잔을 채웠다.
“가족은 다 찾아본거야? 친척은?”
“안 찾을라구요. 다들 저 없이 잘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쑥 나타나서, 누구누구 아들입니다, 막상 그 앞에 딱 서면, 말이 안나올 것 같아요. 못 하겠어요.”
“나이들면, 죽을때까지는 웬수라도, 죽기전에 한번은 보고 싶어진다. 애 가져서 도망갔을 때는 내가 먼저 죽고 싶게 밉더니, 다 지나니 미안해. 그때 잘 다독여 받아줬어야 했는데, 아니면 처음부터, 중학교만 마치고 집에서 가만히 바닷일이나 하게 할 걸, 큰 도시가서 공부하라고 바람 넣은 게 잘못이야. 거기만 안갔으면, 지금껏 붙어 살텐데... 뭐만 툭 나와도 깔깔거리고, 눈물 쏙 빼게 웃고, 울고… 매일보는 바다를 그렇게 볼 때 마다 좋아했는데, 그게 미안하고 자꾸 생각나서, 같이 살던 집도 버리고, 여기로 왔어. 벌써 삼십년을...”
연신 눈물을 닦으면서도 술을 멈추지 않으셨다. 빨리 먹고 취해 잠들면, 조금은 덜 괴로울 수 있을거다.
“따님 애기는요?”
“여지껏 모르고 지냈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죽다 살아나긴 했어도, 나도 여지껏 입에 겨우 풀칠하는 정도라, 엄두가 안 나 찾지도 못했어. 잘 먹어라, 아프지 마라, 좋은 부모 만나 행복해라, 마음으로 바라기만 하고… 할머니라고 지 몸하나 건사 못하는 데, 어디가서 뜨신 밥 맘껏 먹고 학교 댕기는 게 훨씬 나은 거다, 억지로라도 자꾸 그렇게 생각해 버릇하니, 가슴아프고 미안한 것도 좀 줄어들었지.”
청년의 밥그릇이 비어갔다. 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위로 할 수 있을까… 할머니가 건들지도 않은 자기 밥을 한 수저 크게 떠 청년에게 덜었다.
“너는? 엄마 보고 싶었어?”
“아뇨, 생각 안 했어요. 한번도 엄마가 있어 본 적이 없으니까, 있는게 좋은지, 없으면 뭐가 안 좋은지, 솔직히 잘 몰라요. 나이 들면서, 어떤 여자길래 날 버렸나, 그럴거 왜 낳았나, 뭐, 그런게 궁금했구요.”
“사랑했으니까 낳았지. 엄마는 그런거야. 해준 거 하나 없어도 엄마는 엄마야. 자식 위하는 마음은 세상 엄마 다 똑같다.”
“전 그런거 안 믿어요. ‘엄마’, ‘모성애’ 그런 거요, 주량 같은 거에요. 이 사람도 있고, 저 사람도 있고, 다 있는 것 같지만, 무지 센 사람도 있고, 완전 바닥으로 하나도 없는 사람도 있잖아요. 제 엄마는, 저 때문에 인생 말아먹었잖아요. 더 삼키면 죽을, 그런 독주였을 거에요. 있던 모성애도 다 토하는..”
“쓸데없는 소리한다. 지 자식은 똥을 싸도 이쁘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토한 걸 다 뒤집어 써도 귀한거야. 모성애는 저절로 생긴다. 네 엄마도, 널 보낸 걸 후회 했지, 낳은 걸 후회하지는 않았을거야. 막말로, 안 낳을 수도 있었는데, 진짜로 낳고 싶어 낳은 거잖아. 어쩔수없이 지 손으로 못 키운 거가, 그게 미안하고 슬펐을 거야. 내 딸도, 내가 그때 내 몸만 멀쩡했어도, 그렇게 객지에서 죽게 하지는 않았을 건데… 죽어도 내 품에서 죽고, 아이도 내가 데려다 업어 키웠을 건데… 내가 많이 미안하다.”
할머니가 빈잔을 채웠다. 비우고 또 채우고, 비우고 다시 채우고… 앙상한 다리를 상 옆으로 내고 쭉 뻗으셨지만 여전히 불편해 보였다.
“그래서, 아직도 엄마가 미운가?”
“아니에요, 아니에요. 사랑, 가족, 부모, 그런게요, 환상이고, 꿈이고, 있지도 않는 걸 믿으면서 만날거다 매일 다짐하고.. 처음에는 무슨 종교처럼 죽어라 찾아다녔는데, 아마 그때는 누구라도 만나면 인생이 확 핀다고 믿었나봐요. 어느 순간, 어? 내가 뭐하러 이러고 있지? 나를 찾는 사람도 없으니 더이상 찾을 필요도 없고, 그러면 미워 할 필요도 없는데? 그냥 꿈만 꾸고 살 걸요, 환상이라는 게 원래 깨지기전이 더 좋잖아요.”
할머니가 한 쪽 팔을 베고 스르르 누우셨다. 청년이 할머니 옆으로 옮겨 앉아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숨소리인지 코골이인지, 규칙적인 박자에 마음이 놓였다.
“할머니, 제가요, 영화처럼, 엄마는 술집 여자, 아빠는 조폭… 그거 보다는 쫌 낫잖아요. 근데 그런 부모라도 옆에 있었으면, 없는 거 보다 나을 수도 있지않나... 에이, 진짜로 지금은요, 다 잊고 맘 편하게 살자, 그거에요. 원래부터 없던 자리 억지로 만들어서, 잘 살고 있는 데 끼어들지 않을거에요.”
할머니의 거친 손이 청년의 손을 토닥였다. 뭐라뭐라 하시지만 들리지 않았다. 청년이 상을 밀고 옆에 누웠다. 손을 꼭 잡았다. 굳은 살로 덮힌 상처 많은 손… 뭔가 아쉽고, 슬픈 것도 같지만, 생각보다 괜찮은 것도 같다.
“편하다… 이러고 있으니까 좋네요. 왜 살다보면, 부모가 갑자기 죽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걸로 할래요. 어릴때 일찍 돌아가신 걸로.. 버려진게 아니라, 엄마가 일찍 죽어서 혼자 컸다… 좀 덜 불쌍하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괜찮아요. 할머니도, 할머니 딸도, 다 괜찮아요… ”
늦잠을 잤다. 이미 할머니는 일을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다. 꽃무늬 면보로 덮어 놓으신 죽을 꺼냈다. 다 식었지만 그것도 괜찮다. 잘게 썰은 새조개가 쫄깃하다. 번거롭게 이런 것 까지… 싹싹 긁어 먹은 그릇을 서둘러 씻어 엎어놓고, 배 시간에 맞춰 뛰었다. 배웅하는 사람 하나 없이 썰렁하지만 익숙하다. 며칠 놀다가는 관광객처럼 배에 올랐다. 엔진이 켜지고 배가 큰 동그라미를 그리며 등을 돌렸다. 멀리 콘크리트 제방 위에 일하는 사람들이 보였지만, 할머니가 계신지, 누가 할머니인지, 작은 점으로 사라졌다. 속도가 붙으며 추워져도, 청년은 갑판을 떠나지 못했다. 잠바 한 겹 더 꺼내 입으려 가방을 열자, 못 보던 봉투가 하나 들어있다. 만원짜리 세 장을 품은 편지, 그리고 많이 낡고 구겨진, 오래되어 보이는 네모난 종이 봉투.
‘철 바끼면 아무때고 지나다 들어라. 둥지는 업써도 마음 가는 대가 집이다. 잘 컷다. 엄마를 만이 달마 깁브고 고맙다. 할머니가’
할머니… 날선 바닷 바람에 눈이 시다. 작은 봉투를 열었다. <후지 필름> 이라 쓰여진 잔뜩 구겨진 종이 봉투 안에 사진 두 장이 들어 있었다. 제사상에 놓여있었던 그 ‘소녀’ 의 마지막 사진. 뒷면에 할머니의 서툰 글씨가 적혀있다.
‘김미영 1971. 3. 9, 제사 - 음력 9/29 (1990년 사망)’
아셨어요? 다 알고 계셨어요? 긴 한숨이 눈발속으로 사라진다. 시베리아 같은 바람을 맞고 서서, 청년이 두번째 사진을 꺼냈다. 갓난 아기… 그리고 봉투 안에 자잘하게 써 내려간 예쁜 글씨..
‘엄마 아버지, 죄송해요. 6월 8일에 낳았어요. 이름은 정훈이에요. 미용일 배울 동안 잠깐 다른 분이 키워 주신대요. 걱정 마시고 얼른 나으세요. 돈 많이 벌어서 찾아 뵐께요. 1989년 8월 25일 부산에서 미영 드림’
편도 9천원 대천행 여객선. 지나 온 물길 끝에 장고도를 묻는다. 배 꽁무니 프로펠라에 바다가 갈라지고, 튀어오른 물방울에 뺨이 젖는다. 한번 두번 세번… 닦아도 닦아도 자꾸만 젖어내린다. 손끝 코끝 아려오는 초겨울 갑판에서 쉴새없이 바닷물을 닦는다. 버틴다. 엄마가 떠난 길, 할머니가 숨어 든 길, 도요새가 돌아올 그 고향길을, 지금은 잠시 떠나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