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르치던 그 아이는, 가난을 알지 못했다. 못된 것도, 멍청한 것도 아니었지만, 세상의 어느 부분을 뚝 잘라 떼어버린 것 처럼, 아니면 어느날 지구별에 떨어진 외계인처럼… 내가 아는 당연한 것들에 놀라고, 신기해하고, 묘한 스릴을 느끼는 듯 했다.
“반지하라는 말이 뉴스에도 나오네? 드라마에서나 쓰는 말 아냐?”
“원래 있는 말이지. 반지하를 몰라?”
“형은 알어? 가봤어?”
“나는 알지... 근데 살아보지는 못했어. 우리는 거기도 비싸서 못 들어갔으니까.”
“반지하가 비싸면 형네는 어디서 살어? 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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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서 살았을까.
홀로 서 있고, 지붕이 있고 방이 있으니 단독 주택일까. 창현동 언덕배기.. 으스스한 공터 모퉁이에 쓰러질듯 서있는 간이 화장실을 수십명이 공유했다. 한마디로, 버려진 동네다. 둘이 지나려면 어쩔수없이 몸을 비벼야 하나가 빠져나가는 콘크리트 담장을 지나고, 주소 하나에 서너집씩 묶여 있어 날을 잡아 우편물을 나눈다. 티비소리는 커녕 젓가락 내려놓는 소리에도 옆집 아가가 잠에서 깨고, 운동화 한켤레에도 싸움이 나 형제가 코피 터지는 곳. 나는 그런 곳에서 자랐다.
어릴때는 아버지가 없는 줄 알았다. 아버지도, 내가 없는 줄 알았다고 했다. 도박에 정신팔려 평생을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았다. 남매를 두고 나간 뻔뻔한 가장은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해서야 집구석을 찾아들었다. 있는 줄도 몰랐다던 셋째 아이 – 나 – 는 고작 초등학생이었다. 누구 씨인줄 어찌 아느냐며, 나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나도 그가 반갑지 않았다. 나를 미워해서 뿐 아니라, 집이 더 좁아졌고, 먹을 것이 더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권한으로, 나는 방에서 쫒겨났다. 부엌 겸 쪽마루 문 앞에서 지내던 형과 포개져서, 마구 구겨져 잠이 들었다.
하나뿐인 방을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써야했던 누나는 죄진 사람처럼 소리없이 드나들었다.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돈벌이를 하는 사람이었어도 대접받지 못했다. 마디마디가 쑤신다며 손가락 하나 까닥 안하던 아버지는, 덩치가 비슷한 형한테는 말도 못 걸면서 누나만 들볶았다. 코딱지만한 밥상에 간신히 머리를 들이밀고 앉으면 계란 후라이를 해와라, 물을 떠와라, 소금 가져와라… 누나를 밀어냈다. 다음 타겟은 나였다. 쪼끄만게 그만 처먹고 나가라, 밥값도 못하는걸 밥은 뭐하러 주냐.. 누나는 그런 나를 데리고 나와 냄비에 물을 부어 남은 밥 몇톨을 끓여주었다. 두배로 불어나는 젖은 밥은 먹고나면 바로 배가 꺼졌지만, 어차피 넉넉하게 먹어본 적은 없어 버틸만했다. 대신 집안 가득 향기가 퍼지는 계란 후라이나, 짜릿한 김치 한조각을 함께 먹을 수 없었다는 게 슬펐다.
"아버지 밥 차려드려라."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미워했어도, 어쩐일인지 내쫒지는 않았다. 성인이 된 형누나를 결혼 시킬때, 그래도 없는것 보다 낫다고 했다. 뭐가 나은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지만,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어머니는 늘 일거리를 찾으러 집을 비웠기에, 아버지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혼자서만 하루 한개 계란 후라이를 먹는 사람, 공동 화장실 주변을 오가며 꽁초를 주워다 피우는 사람, 보리차 아깝다며 수돗물 먹게 하고 본인은 믹스 커피를 내놓으라며 살림을 뒤집어 엎던 사람.. 형누나의 가방을 뒤져 오백원짜리 동전 하나라도 뺏어들고 외상 소주를 사러 달려가는 사람을.. 어머니는 정말 모르는 듯 했다.
“공부해. 너는 잠자코 공부만 하면 돼. 공부 잘 해서 좋은 대학가고, 돈 많이 받고 일하면 다 되는거야.”
“뭐가 다 되는데? 뭐 달라져?”
“달라지지. 큰 회사 가면, 식당도 있고, 너 벌어서 너 좋은 거 사먹어. 양복입고, 넥타이 매고..”
“엄마는?”
“엄마는 여기서 일해야지. 엄마는 엄마가 알아서 먹고 살테니까, 너는 걱정말고 부잣집에 장가가서 잘 살어.”
아버지는… 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내 인생에 그 사람을 끼워넣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의 인생에서도, 그를 뽑아버리기를 바랬다. 그가 없던 가난은 배만 고팠지, 그래도 견딜만 했었다. 그러나 아무도 오라한적 없던 그가 제멋대로 돌아온 후, 온 종일 모르쇠로 침묵하고 있는것도, 하나뿐인 방을 차지하고 앉아 숨만 쉬고 있는것도, 하루에 딱 한번 챙챙챙챙 쇠젓가락으로 밥그릇 물그릇을 두드리며 계란 후라이를 달라고 시위를 하는 것도…. 그게 그렇게 짜증나고 죽이고 싶을 만큼 꼴보기 싫은 걸, 어머니는 티내지 않았다.
어머니가 벌어오는 일당 일이만원에 형이 벌어오는 코딱지만한 알바비까지 합하면 간신히 월세는 내고 살았다. 많지 않았을 누나의 월급도 몽땅 다섯 식구 먹고 사는데에 들어갔다.
“그러니까 너는 대학 가. 형이랑 누나가 뭘하든 학비는 내줄테니까, 대학만 가.”
“형 졸업 못했잖아. 형이 먼저 가.”
“난 전문대야. 나중에 가도 돼. 너는 공부를 훨씬 잘하니까, 좋은데로, 유명한데로 가.”
공장일을 하던 형은 겨우겨우 몇푼 모아 야간 대학을 시작했지만, 3교대 야근이 안된다며 하루아침에 해고 당했다. 노조도 없는 작은 곳이었기에 변변한 항의 한번 못해보고 그렇게 백수가 되었다. 그나마 들어오던 월급도 없어졌으니 학교도 포기했다.
“제대로된 대학만 갔어도 그 꼴은 안 당했잖아. 나중에 억울하지 않게, 너는 제대로 된 대학 가야된다. 법대가라. 판검사되서 너희 형 소송도 해주고…”
“엄마는 왜 애한테 자꾸… 우리 신경쓰지말고 공대 가. 취직 제일 잘 되는 거 해서 대기업 들어가. 그게 제일 좋은거야.”
모두들 하나 남은 ‘희망’ 인 나의 진로에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라는 사람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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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걸치고 갈 헝겊 쪼가리 한개 없어서 못간다고. 아, 돈 안 보낼거면 전화도 하지 말라니까?”
방안에서, 누구와 통화 중인지 아버지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돈 없고 무능하기는 해도 시끄러운 사람은 아닌데, 그날은 유난히 불쾌한듯 했다.
“축의금으로 한 2만원 빼고, 나머지는 돈으로 달라고..!! 시장 남방이라도 하나 사입어야 얼굴을 비출거 아냐?”
큰집 형이 결혼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옷값을 달라고 했다. 축의금 2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그게 얼마인지 잘 모른다. 그러나 며칠 후 아버지는 양손 가득 소주와 담배를 사들고 들어왔고, 그걸로 한동안 행복했다. 언제, 어디인지도 모르던 결혼식은 가지 않았다.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았다. 보리차는 떨어진지 오래 되었고, 며칠간 쌀이 없어 감자를 쪄 먹었어도… 그나마 간간히 소금에 절여먹던 배추도 없어 단무지로 대신하는 걸 알면서도, 갑자기 솟아난 꽁돈으로 자식들에게 뭐라도 하나 먹일생각은 전혀 없었나보다.
“어디가서 외상 진거 아니면 됐다. 고작 몇만원 뜯었을건데, 그나마 술처먹고 화투치러 가지 않은것 만으로도 철 들은거고.”
여전히 계란 후라이는 저녁에 딱 한번 아버지만 먹을수 있었고, 커다란 봉지 안의 뻥튀기는 누렇게 뜬 베게맡에 고무줄로 꽁꽁 묶여 본인 혼자만의 하루를 책임지며 조금씩 줄어들었다. 달라고 할 생각도, 한줌 꺼내먹을 생각도 없었다. 그가 버티고 앉은 냄새나는 골방까지 발 한쪽도 들여놓기 싫었다.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사먹어.”
어머니가 천원짜리 두장을 내밀었다. 내 생일이었고, 성적표를 받은 날이기도 했다. 별거없다. 또 1등이다. 늘 하는 전교 1등… 그래도 어머니는 매번 용돈을 주었다. 전교 1등에 대한 포상이다. 중학교때는 천원, 고등학교를 가고 나서는 이천원을 받았다.
“학생이 공부하는게 당연하지 뭔 돈 질이야, 버릇 나빠지게..”
꼴에 아버지라고,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한소리 한다. 왠일인지 제발로 걸어나와 밥그릇을 꺼내간다. 잠시 후 뻥튀기를 반쯤 담아들고 다 부서진 싱크대 위에 툭… 던지듯 내려놓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는다. 어서 먹어라.. 하는 얼굴로 어머니가 나를 본다. 어머니를 봤다. 온종일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새카매진 코가 반질거린다. 내일쯤이면 허옇게 껍질이 벗겨질 거다. 콧등에까지 주름이 졌다. 왜 그렇게 힘들게 사는지, 왜 쓸데없이 나까지 낳았는지, 그래서 왜 더 사서 고생인지… 온 얼굴이, 눈코입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불행 그 자체다.
“가져가라니까? 가서 아이스크림 사먹어.”
중고등학교를 통틀어 처음으로, 포상으로나 한번씩 받는 이천원을 돌려주었다. 억지로 손에 쥐어주고 집을 나섰다. 잘 알고 있다. 어머니는, 두번 거절하지 않는다. 돌려받은 이천원은 두부 한모가 되어 저녁 상에 올라갈거다. 아이스크림은 대학 가서 사먹으면 된다. 알바해서, 취직해서, 대기업가서… 이천원짜리 아이스크림은 그때 내 돈으로 사먹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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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도, 갈곳도 없던 나는, 늘 옆 동네 교회에서 시간을 보냈다. 슬슬 걸어가는 기분도 좋았고, ‘창현고 1등’이라며 수근수근 훔쳐보는 시선이 좋았다. 그곳 예배당은 매일 밤 12시까지 열려있었다. 야학이나 공부방은 아니었지만, 나처럼 공부할 곳이 마땅치 않은 아이들을 받아주셨다. 각자 알아서 공부하고 있으면, 9시에 한번, 잠깨라고 사탕이나 요쿠르트를 하나씩 주셨고, 나는 졸음이 아닌 허기짐으로, 감사히 받아먹곤 했다.
“학교 결정했어? 서울대 가야지.”
교회분들은 친절했다. 내 사정을 잘 아시는 분들은 가끔 김밥이나 음료수도 사다 주셨고, 알음알음 좋은 집에 과외 자리도 소개시켜 주셨다. 과외를 받아야 할 고등학생이, 과외를 하면서 용돈을 벌고, 거기서 주는 야식으로 배를 채웠다. 커다란 좋은 집에서, 책상과 침대가 있는 깨끗한 독방을 쓰는 중학생 아이를 가르쳤다. 시험기간에는 보충해준다며, 침대 옆 방바닥에서 쪽잠을 잤다. 그래도 그게, 우리집보다 훨씬 넓고 따뜻했다.
사모님들이 좋아하셨다. 다른집에 뺏길까, 시험이 끝나면 수고비로 몇만원씩 더 얹어주셨다.
“대학가면 학비는… 누가 좀, 도와주신대? 요즘 많이 올랐던데.”
나쁜 뜻은 아니었다. 좋은 대학에 붙어도, 나같은 놈이 과연 갈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좋은 마음이었다.
“그래, 너 스카이가면, 2-3년치 과외비를 선불로 줄께. 군대 가기전까지 애 공짜로 봐주면 되겠다.”
과외비 몇년치를 한번에 주실… 살면서 한번도 돈 걱정을 안 해보신 듯한, 아니 돈 걱정이 뭔지, 왜 돈을 걱정하는지 조차 모르실 분이셨다. 웃으며 말씀하셨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사실 그 방법 외에는, 그 큰 돈을 마련할 방법도 없었다. 좋은 제안이다 – 나는 진지했다. 그리고 솔직히, 열여덟의 나는 기쁘게 하하하 웃는 법도 잘 몰랐다. 그런 암울한 나를 조용하고 얌전하다며 좋게 봐주셨다. 부모님 드리라고 명절 선물도 챙겨주셨고, 철마다 고가의 옷이나 운동화도 사주셨다. 시간이 갈수록, 사모님의 여유가 좋아졌다.
그 집 아이는 특목고를 준비했다. 고작 고등학교를, 대학 등록금만큼 내고 다닌다고 했다. 드라마나 뉴스에서 보는, 화려한 디자이너 교복을 입는 귀족학교 중 하나 일거다. 사모님께서 빈방을 하나 내어 줄테니 아예 들어와 입주 과외를 하라고 하셨고, 지긋지긋한 내 집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흔쾌히 동의했다. 졸업때까지, 통학은 사모님이 직접 차로 데려다 주셨다. 남의 돈이라도, 그렇게 가까이에서 조금씩 구경하게 된 그 돈 맛이..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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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뭘 입은거냐? 벌써 부자 냄새가 나는데? 걔네 누나 없대? 잘 꼬셔봐, 아니면 아예 양자로 들어가던지.”
몇권 안되는 책을 가지러 집에 들렀을때, 빈곤한 삶에 지쳐가는, 이미 꼬질꼬질하니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어가던 반백수 형이 빈정거렸다.
"그 집에 차 몇대냐? 기사 안 필요하대? 형이 운전 좀 하잖아. 말이라도 좀 잘 해봐."
마지막으로 내 셔츠를 한번더 눈여겨보고는, 바쁜척하며 나갔다. 불쾌하지 않았다. 그저 집이 좁아서, 누군가 들어가면 누군가는 나가야 했을 뿐이다..
“밥 먹고 가, 바빠지면 여기까지 또 언제 오겠나.”
짐을 챙기는 동안, 지지직… 익숙한 기름 냄새가 났다. 아버지, 어머니, 나… 이번에는 방밖으로 내쫒기지 않고 동그란 조그만 철제 밥상에 함께 앉았다. 시커멓도록 짜게 쫄인 된장찌개, 단무지, 계란 후라이 두개… 어머니는 그 중 하나를 집어 내 밥에 올려 놓으셨다. 나는 수저도 들지않았다.
“왜? 맛이 없나? 그래, 부잣집에서 더 좋은 거 먹었겠지..”
계란 후라이가 얹어진 밥그릇을 어머니에게 주고 일어섰다. 어머니는 두번 사양하지 않으셨고,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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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박 2년을 그집에서 살았다. 약속대로 등록금을 내어주셨고 숙식을 챙겨주셨으니, 전혀 공짜는 아닌셈이다. 소개에 소개로, 서너집 더 고액 과외를 했다. 스카이라는 학벌이 붙으니 전보다 돈이 몇배로 뛰었다. 그리고 과외 이외에도, 학벌을 무기로 한 알바가 끊임없이 들어왔다. 거절하지 않았다. 지긋지긋하던… 그 구린 티를 조금씩 벗어가며, 대신 고급 옷과 신발들을 늘려갔다. 그들이 가는 샵에서 머리를 자르고, 그들이 사주는 로션을 발랐다. 사모님 말씀대로, ‘제법’ 명문대생 티가 났다.
“날짜 딱 좋잖아. 군대가기 전에 마지막이야. 2년 정말 금방인데, 복학할것도 준비해야지. 남들은 그 나이에 연수도 가고, 유학도 가는데 너는..”
하시던 말씀을 멈추고, 자연스레 다음 고액 알바를 제안하셨다. 늘, 흔치않은.. 좋은 자리만 알아오셨다. 아는 집 아이가 재수를 하는데, 도저히 안될것 같으니 딱 한번, 도와달라고 했다. 이번에는, 누구네 연봉을 훌쩍 넘겨버리는, 상상도 못했던 동그라미들이 따라붙었다.
“자세히 알 필요는 없고, 걔네가 병원을 꽤 크게 해. 아들 하나 있는 거 의대 보내야지, 남한테 넘길수는 없잖니. 벌써 너 실력 좋다고 알고 계시더라. 꼭 좀 부탁하신대.”
사모님이 봉투를 하나 더 꺼냈다.
“어머니께는 조금 더 넣었어. 아무래도 이건 큰 시험이고, 또 마지막이니까. 할만하지?"
웃으셨다.
"너 정말 대단하다. 너는 못가더라도, 네 덕분에 아이비 간 애들이 벌써 몇명이니. 지금까지 그 많은 시험 다 봐주고, 미국 입시까지 해줬어도 아무도 모르잖아. 그리고 그 집 아들, 안경쓰면 너랑 많이 비슷하더라. 그 나이때 남자애들이 다 그렇지 뭐.. 지금처럼만 하면 돼. 이번에도 별일 없을거야.”
칭찬에 감사했다. 거기에 따라오는 수고비도 만족스럽다. 주기적으로, 늘, 항상 해오던 일이니 힘들것도 없다. 자잘한 준비야 ‘그들’이 알아서 하니, 나는 그저 약속된 시간에, 약속된 장소에 가서, 약속된 걸 해주면 된다. 하나도 어렵지 않은 일 - 내가 가장 잘 하는 그 일.. 공부하고 시험 보고, 공부하고 시험보는… 그 쉬운 걸로 이렇게 돈을 많이 벌게 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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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가기전에 어머니 용돈 드리래요. 마지막이라고, 전보다 조금 더 주셨어요.”
어머니가 활짝 웃으며 봉투를 받으셨다. 언제부터인가.. 이제는 한번도, 사양하지 않으신다.
“매번 이렇게 챙겨주시고.. 감사해서 어쩌니. 군대 가면 이제 돈도 못벌텐데, 제대하고 다시 들어가 살아도 되나 좀 물어보지 그랬어?”
돈봉투를 바지 주머니로 꽁꽁 밀어 넣고, 스웨터 자락을 당겨 야무지게 가리신다.
“오늘은 알바 없지? 며칠있으면 군대 가는데..”
“내일까지 해요. 마지막 날이에요.”
“아이고, 수능날까지 뭔 알바를 해? 시험장에 데려다 주나? 하긴 네가 같이 가준다 그래야 엄마들이 좋아하지, 비싼 과외라며... 엄마는, 평생 없이 살았어도 너 하나 반듯하니 잘 커줘서 참 다행이야. 고마워, 아무것도 못해줬는데..”
이야기가 길어질까.. 알바 핑계로 재빨리 일어섰다. 따라나오는 어머니를 만류하고 뛰다시피, 언덕을 내려간다. 일부러 멀리 걸어, 오래 전에 공부하던 교회 앞을 지난다. 요즘도 공부하러 오는 애들이 있을까.. 합격을 기원하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다.
/주님의 사랑 합격의 영광/
쫒아오는 사람도 없는데 급하게 아무 버스에나 올라탔다.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르겠다. 이리저리 꺾이더니, 지저분한 시장통을 끼고 돈다. 꽉 막히는게 내 인생같다... 짜증난다.
돌고돌아 드디어 큰 길로 나가는 듯 하다. 여기저기, 정류장마다 입시학원 플랭카드가 널렸다. 수능 하루 전이라고 난리들이다. 벌써부터 나붙은 수험생 특별 할인.. 우습다. 거지같은 것들.. 그까짓 수능이 뭐라고... 나는 열번 스무번도 볼 수 있다. 저 산꼭대기 주소도 없는 집구석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찌질한 인간들 더이상 징징거리지 않게 입막음 할 수 있다면, 그걸로 기사회생, 인생역전, 승승장구 할 수 있다면, 골백번이라도 봐주겠다...
출출하다. 손목에 찬 묵직한 시계를 들여다 본다. 3백만원 짜리다. 작년에 시험봐준 집에서 감사인사로 보내왔다. 이제 군대 가는데... 아까 집에다 놔두고 올 걸 그랬나.. 아니다, 거긴 굶주린 자들이 너무 많다. 차라리 다른데 맡길곳을 알아봐야겠다. 내일 시험이 끝나면 약속한 카페에서 잔금을 받을거고, 모아둔 돈은 전부 CD로 돌려 개인 금고에 넣어야겠다. 군대 갈 날이 코앞이라 그런지, 오늘은 잡생각이 많다. 답답하고 마음도 불편하다... 됐다, 신경쓸것 없다. 다른때처럼 푹 자고 일어나서 마지막 알바를 가는거다. 스스로 다독이며 긴장을 늦춘다. 피로한 눈부터 쉬게한다. 주문을 걸어 나를 위로한다..
/공부해. 너는 잠자코 공부만 하면 돼. 공부 잘 해서, 좋은 대학가고, 돈 많이 받고 일하면 다 되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