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05:11-31 광야학교의 리트머스 시험지

민수기 05:11-31

민수기 05:11-31 광야학교의 리트머스 시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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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공동체의 정결법과 관련해서 육체의 부정과 윤리적 부정에 이어서 부부(가정)사이의 부정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고대 사회의 시죄법에 해당하는 판결로서 모든 부정과 죄에 대한 최종적인 판결은 하나님께 있음이 전제될 때라야 불합리와 부당과 남용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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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5절 예배는 말씀(하나님)의 거울 앞에 서는 일입니다.

아내의 탈선에 대하여 의심되지만 증거와 증인도 없고 현장에서 잡히지도 않았을 경우에 생기는 의심은 제사장에게 가서 의심의 소제를 통해서 기억의 제사 즉 죄악을 기억나게(상기, 인정)하는 절차를 밟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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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선에 대해 확신하나 그 일에 대해 아무런 물증이 없을 경우를 방치하게 되면 부부관계는 신뢰가 깨져서 악화일로로 치닫게 됩니다. 그것은 두 사람 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과 공동체의 분열과 혼란으로 확산됩니다. 가족간의 관계를 넘어서 이들과 관계된 이들과의 신의에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탈선한 이웃의 누군가를 바라 볼 때 그리고 그와 관계된 모든 것들을 바라볼 때 분노와 의심이 가중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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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를 푸는 출구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데서부터 시작되지만 이미 탈선하고도 양심에 거리끼지 않고 그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제3자의 판결이 아니고서는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는 제3자의 판결은 객관적이기 보다는 부부 상호간에 깊은 불신을 키우고 상처의 골을 더 깊게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판결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든지, 무죄함이 드러나든지 해야 할 것입니다. ‘죄악을 기억나게 하는 기억의 소제’는 이러한 의심에 대한 판결을 하나님 앞에서 드러나고 인정하게 해서 해결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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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지은 이는 스스로 자신의 잘잘못을 알고 있습니다. 양심을 가진 이들은 아예 탈선을 하지 않겠지만, 양심이 어두워 탈선하고도 그 죄를 인정하지 않고 기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을 속이는 것만으로 자신의 죄가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미 자신 안에서 배우자와의 관계가 깨어지기 시작한 것이어서 심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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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죄악에 대한 판결의 기준이 되는 말씀앞에 나아가는 일은 지금 나의 죄가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게 해줍니다. 그러나 양심에 화인맞은 이들은 아예 말씀앞에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기회는 영영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그 말씀의 거울 앞에 설 때에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을 공개적으로 진행하여 당사자 뿐 아니라 배우자도 하나님의 판결을 수용하여 정결과 부정에 대해서 분명하게 수용하여 신뢰를 회복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는 일은 거울 앞에 서는 일이며 그렇게 발견된 죄악을 회개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더욱 온전케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 앞에서, 예배의 자리에서,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바로 서 있는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진 않았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기에 그 자리에 서는 일을 게을리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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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26절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죄악을 판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습니다.

기억의 소제를 드리러 온 부부에게 제사장은 제일 먼저 토기에 성수를 담은 뒤 성막 바닥의 흙을 담아 쓴 물을 만듭니다. 여인은 의심의 소제물을 두 손에 듭니다. 그런 다음 제사장은 두루마리에 저주의 말을 쓰고 그것을 쓴 물에 빨고 효능을 여인에게 설명합니다. 그러면 여인은 쓴 물의 효과를 받아들이기 위해 아멘하며 맹세합니다. 제사장은 의심의 소제물을 태운 후에 여인에게 이 물을 마시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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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양심에 이미 거리낌이 있는 자는 두려워 하거나 자신의 죄를 자복하든, 뻔뻔하게 진행겠지만 그렇지 않고 결백한 이에게는 이 과정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는 절차이기에 당당할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여인에게만 부여하고 있는 것은 당대 문화적 배경에서 오히려 여성을 위한 제도입니다. 왜냐하면 남성에게는 스스로 많은 권리가 있어 변호나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당대 여인들에게는 누군가 변호하고 돌봐 주지 않는 한 스스로 변호하거나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만이 이 결백을 변호하고 보호해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제도를 제정하고 시행하시는 것은 연약한 여인을 변호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를 제정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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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결백을 확인해야만 배우자도 이것을 확신하고 자신이 무고한 이를 의심했다는 것을 재고할 수 있습니다. 쓴 물은 그 자체로 독이 있는 물이 아닙니다. 고대 사회에는 실제로 독을 넣거나 물에 빠뜨리는 등의 행위로 부당하게 마녀사냥을 했지만 율법은 그렇게 무모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성막 바닥의 흙을 넣고 두루마리를 빠는 것만으로 이 물 자체로 마시기에 거북하고 역겨운 물 정도였습니다. 탈선하고도 별 탈이 없이 기꺼이 마실 수 있는 정도고, 결백한 이로서도 자신의 무죄를 확신한다면 마실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쓴 물을 통해서 유무죄의 결과를 분명히 보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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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를 드리거나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죄악의 길에서 멀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죄를 범하고도 버젓히 예배의 자리와 말씀 앞에 서는 이들이 있습니다. 양심에 화인맞은 이들은 그렇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결코 믿지 않는 이들입니다. 그러니 묵상과 예배의 자리에 있다고 모두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 말씀을 제대로 먹는 자라야,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사는 자라야 진정한 하나님을 믿는 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그렇지 않는 지를 시험하게 하는 리트머스 용지와 같습니다. 리트머스는 산성과 알칼리성을 구분해주는 종이입니다. 그러니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묵상하는 자와 그렇지 않는 자는 분명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여부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부지런히 말씀 앞에 나아가기를 구하고 힘쓰며 그 말씀의 기준을 따라서 살기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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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31절 오직 하나님께서 판단하십니다.

쓴 물을 마신 후에 유죄하다면 넓적다리(자궁)가 마르고, 배가 붓게 되어서 저줏거리가 됩니다. 그러나 무죄하고 정결하다면 해를 받지 않고 임신하게 됩니다. 이 법은 반드시 여호와 앞에서 제사장이 법대로 진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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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증 없이 의심되는 관계에 대한 판결은 사람의 변호와 논쟁만으로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또 결과를 확정해도 당사자가 수용하지 않고 불복하여 오히려 관계가 더 악화될 수 있고, 자칫 여인같은 경우에는 폭력과 죽음에 노출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법의 진행을 하나님 앞에서 진행하게 하므로 최종적인 판결을 하나님께서 판단하시는 것으로 맡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이라면 그런 판결에 대해서 그대로 수용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불복하고 이미 믿지 않으므로 그는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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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다면 악의 득세와 오랜 번영에 동요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선한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대에 설 것이며, 그 이전에라도 반드시 유무죄에 대한 결과는 달라질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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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심판하시는 하나님

날마다 말씀의 거울 앞에 서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의 거룩을 유지하는 일에 정결케 하옵시며

지금 이 나라의 혼돈에 대한 판결이 속히 이루어지게 하옵시며

주님의 몸된 교회들의 부정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다시 정결한 신부로 거듭나는

계시가 될 수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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