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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Feb 01. 2017

우주(宇宙)와 사면(赦免)

쉴만한 물가 - 35호

20130201 - 우주(宇宙)와 사면(赦免)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 태양계와 비슷한 규모의 크기로 수천억 개가 모여 있는 은하계, 또 그런 은하계가 수천억 개가 모인 은하계 너머의 수천억 개의 별무리 우주(宇宙). 바로 이 우주의 크기를 우리가 상상한다면 우리가 이 광활한  우주에서 얼마나 작은 별에 있는지 실로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여하간 우린 지구라는 별에 살고 있는데 주위 행성 중에 달과 태양계의 다른 별들에 지속적인 우주선을 보내 교류를 시도하고 있다. 또 다른 지적 생명체나 에너지가 있지 않을까 해서, 좀 더 나아가서 지구와 같은 환경의 공간을 기대하면서 탐사는 이어지고 있다. 긍정적으로 보면 인간의 상상과 도전이 가상해 보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주어진 별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탐욕과 이기로 점철되어 병들어 가는 지구의 위험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조물주가 우리에게 허용한 지구라는 별에서 유독 인간만이 공존과 상생의 법칙을 깨고 탐욕으로 모든 것을 파괴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그로 인한 피해는 모든 자연 만물에게까지 파괴와 이상 기온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자족과 돌봄과 상생의 정신은 지구별에 사는 것을 자유로 여기겠지만, 탐욕을 부리기 시작한다면 인간은 이곳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벗어나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지구 하나 망가뜨리는 것도 모자라 우주에까지 그 탐욕의 산물들을 양산할 수도 있는 행보를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우주를 향한 도전에 있어 지구별에 행한 우리의 행태를 거울삼지 않는다면 지금의 탐험은 끝내 반복된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탐욕스러운 인간에겐 지구든 태양계든 모든 곳이 감옥 같을 것이라는 얘기다. 지구에서 싸우는 것도 모자라  우주의 그 광활한 공간도 부동산 투기나, 전쟁을 일삼는 일이 이미 많은 SF소설과 영화에서 다루고 있지 않는가? 우리의 끊임없는 성찰이 병행된 우주 개발과 도전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대통령 특별 사면에 대한 불만으로 소란스럽다. 주어진 권력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지 않고  천방지축으로 방종을 일삼다가 결국 감옥으로 간 자들을 자신들의 범법에 대한 참회나 인정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로 또다시 감옥 밖으로 내어 보내고 있다. 참회 없는 사면은 결국 반복된 범죄의 행태를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은 세 살 먹은 아이들도 안다.  어찌 이다지도 법의 잣대가 제멋대로인가? 법을 집행하는 자들의 범법은 준법하는 시민을 당혹스럽게 한다. 어른들도 그럴진대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우주(宇宙)의 한문은 한 지붕 아래 있는 집이 두 개다. 우리가 사는 집과 하늘을 지붕 삼은 모두가 사는 집이 함께 우주라는 얘기다. 내 집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만큼 다른 이의 집도 소중히 여겨야 하며, 그 안에 함께 사는 이들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법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속담이 있다. 아직 철이 덜 든 자는 집에 더 머물며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하고 탐욕과 이기를 버리고 이타(利他)적 삶을 살만한 자가 되었을 때에 자유를 줘야 함께 사는 식구들이 편안한 법이다. 비록 광활한 우주의 한 켠에 있으나 그런 우주를 인식하는 우리네 인간의 삶이 자꾸만 탐욕으로 점철되어 지구별을 더럽힌다면 우리의 우주로의 사면과 외출은 전망을 어둡게 한다. 사면권자나 수혜자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 나로호가 올라간 그 하늘을 우러러보며 겸손히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아가길 다시 바란다면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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