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8:21-32
민수기 18:21-32 광야학교의 봉사자 생활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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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바치는 십일조를 레위인의 몫으로 지정하십니다. 레위인은 백성의 십일조를 받으면 그것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들은 받은 헌물 중 가장 좋은 것을 거제로 드린 후에야 가족들과 함께 먹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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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이해
레위인은 성막을 위한 봉사를 위해 따로 구분된 특별한 지파였습니다. 레위인들은 이렇듯 특별직으로 임명되어 열두 지파의 계수에 들지 않아 나중에 여호수아서에서 진행된 가나안 정복후의 땅분배에서도 제외됩니다. 대신 그들에게 48개의 레위 성읍이 거주지로 할당될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농사 지을 논밭이나 과수원이 별도로 주어지지 않기에 그들을 위한 별도의 생활 대책이 필요했다 그것은온 백성이 그들의 생활을 책임지는 방식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거룩의 기운이 감도는 성스러운 공간이기에 속(俗)의 영역에 속해있는 인간에게 대단히 위험한 곳입니다. 그 사람은 성(聖)의 영역인 성막에 가까이 갈 때 거룩의 기운에 타격을 입고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대신해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봉헌되어 성막에서 하나님을 위한 직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대신 바쳐진 ‘속죄물’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를 바치는 등의 분명한 이유를 제외하고서는 더이상 성막의 직무를 위해 그 위험한 공간에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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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우리는 이웃의 필요를 채우며 삽니다.
하나님은 주를 위해 일하는 이들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자신과 그 가족의 생계 위해 짊어져야 할 책임을 하나님께서 대신 지십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일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회막봉사에 대한 ‘보수’를 잊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의 십일조로 갚아주십니다. 회막의 일은 군복무와 다름 없었고(4:30)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고전 9:7). 먹고 사는 일에 대한 염려 때문에 주의 일 앞에서 머뭇거리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하십니다(고전 9:14). 주를 위해 버린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갚아주십니다.
“나의 필요는 주님이 채우시고, 이웃의 필요는 내가 채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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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24절 하나님은 봉사자의 수고를 기억하시며 서로 책임을 갚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십일조를 레위인의 기업으로 지정하셨습니다. 레위인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도록 성막을 지키고 백성을 보살피는 일에 자기 생명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땅을 가질 수도,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백성이 레위인의 수고에 합당한 몫으로 갚아야 마땅했습니다. 공동체를 섬기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사역자를 지원하는 일은 ‘지혜’가 아니라 ‘갚음’이자, ‘순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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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26,29절 하나님은 레위인에게 받는 은혜 드리는 은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레위인도 받은 것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되, ‘가장 아름 답고 거룩한 부분'을 드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본분도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며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지원에 힘입어 살아가는 사역자들도, 다른 지체들처럼 최선을 다해 최고의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 일에 더욱 본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레위인은 자신들이 받은 십일조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거제로 드려야 했고 그것은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갔습니다. 받은 헌물 중에 가장 좋은 것을 구별하여 드리고 난 후에야 그 남은 것을 먹었었습니다. 받은 모든 것이 마땅한 권리가 아니라 은혜임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보수로 주셨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받는것도 은혜이고, 드릴 수 있는것도 은혜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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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30, 31절 하나님은 드릴 것과 누릴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레위인이 드리는 십일조를 직접 농사지은 것에서 드리는 일반 백성의 십일조와 똑같이 여기겠다고 하셨고, 일반백성이 십일조를 제외한 나머지를 임의로 사용할 수 있듯이 레위인에게도 십일조를 드리고 남는 것을 마음껏 누릴 권리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레위인이 받는 몫이 그들이 받아 마땅한 ‘보수'임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사역해서 받는 몫은 사역자의 정당한 권리입니다(참조. 고전 9: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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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26, 28절 우리는 모두 거룩하고 존귀하나 대제사장이신 주님께 종속되어 있습니다.
레위 자손을 위해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공동제의 책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십일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아 레위인에게 주십니다. 장로들과 말씀 사역자를 위한 경제적 지원 역시 초대 교회에 주어진 공동체적 책임이었습니다(딤전 4:17). 하나님께서 보수로 주시는 것을, 받는 이는 ‘은혜’로 여기고 공동체는 ‘책임 으로 여깁니다. 이것이 건강한 교회의 모습 아닐까요?
레위인이 바치는 십일조는 제사장 아론에게 돌리라고 하셨습니다. 레위인은 명예로운 지위에 있었지만, 제사장에게 종속되어 있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는 모두 거룩하고 존귀하지만,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 종속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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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32절 하나님은 욕심을 버리고 한계를 기억하라 하십니다.
‘그 중 아름다운 것’을 드리고 난 다음에는 ‘타작 마당의 소출과 포도즙 틀의 소출 같이’ 풍족하게 누릴 수 있었습니다. 거룩하게 한 부분만 드리면 나머지는 어디서든지 먹을수 있었습니다. 한계를 받아들이면 풍성해집니다. 성물을 더럽히지만 않는다면 죽지 않을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유혹은 오늘도 계속됩니다. 삶을 궁핍하게 만드는 것은 한계가 아니라 욕심입니다.
만약 레위인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고 모두 자기 몫으로 챙기면, 이스라엘 회중이 바친 성물을 더럽히는 죽을죄라고 하셨습니다. 레위인의 욕심을 경계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사역자가 아까워서 헌금하지 않거나, 성도의 헌금을 자기 욕심을 채우는 데 유용하는 일은 큰 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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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목회자들이 생계의 어려움 없이
힘껏 교회를 세우고 성도를 섬길 수 있도록
보살펴주소서 .
생계유지마저 위협받는
작은교회 목회자들을 보살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