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처럼

쉴만한 물가 - 95호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20140418 – 꽃잎처럼


매화꽃 박꽃처럼 피고 졌다. 산수유꽃 노오랗게 피고 졌다. 진달래 꽃도 피고 졌다. 배꽃도 탐스럽게 피고 졌다. 그리고 벚꽃도 그렇게 흐드러지게 화알짝 피고 졌다. 한껏 뽐내던 그 화려한 시간들이 다 가고 제 역할 다한 그 꽃잎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던 그날, 아직 제대로 피어 보지 못한 어린 꽃들이 멀리 깊은 바다에서 떨어졌다. 떨어진 꽃잎이 아쉬워 떨어지지 않길 간절히 바랬지만 어디 가는 세월을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있었겠는가?


초등학교 1학년 아들과 체스를 두다 보면 질 때마다 자기 머리를 두드린다. 자신이 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결과가 괴로운가 보다. 가끔은 일부러 져 주기도 해야 할 터이지만 세상이 어디 그리 호락호락 하던가! 딸들이 시험기간에 힘들다 할 때면 그래도 학생 때가 행복한 것이라고, 학교 시험에는 답이라도 있지만 세상에는 답은커녕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더 많고, 노력도 힘도 돈도 그 무엇으로도 풀 수 없는 것이 더 많은 것이 이제 너희들이 살아갈 세상이라고도 말해 줍니다. 아들이 대뜸 아빠는 어릴 적 꿈이 무엇이었냐고 묻습니다. 불현듯 아직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어쩌면 진즉에 포기했을지도 모를 꿈이 잊혀지고 있었는데, 이제 내 아이에게 세상을 꿈꾸게 해 주어야 자리에 있으려니 부족함이 더없이 커지는 느낌입니다.


얼마 전 한 은퇴 선배로부터 평생 성경을 670번 정도 읽었는데 아직도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문득 학사와 석사와 박사 그리고 교수의 차이점을 위트 있게 표현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학사(學士)는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 것 같다고 생각하고. 석사(碩士)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알 것 같다고 하고, 박사(博士)는 자신만 모르는 줄 알았는데 남들도 따 모르는 걸 알게 된 것이라 하고, 그렇게 교수(敎授)가 되면 자신도 어차피 모르는 것 끝까지 모른다고 우겨야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전문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평생을 배우고 일하며 달려가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더욱 절감해 가고 있고, 늦깎이로 공부하면서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더욱 그런 사실을 절감하며,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은 불가항력적 현실 앞에서 기적을 구합니다. 슈퍼맨 같은 영웅이라도 트랜스포머 같은 로봇이라도 영화 같은 그런 극적인 일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진도 앞바다의 사고 소식을 듣고 기도의 자리에 나아갔지만 한 마디도 기도할 수 없었고 눈물만 났습니다. 마음속 가득히 어떻게 건질 수 있을까 오만 생각을 다 해 보았지만 첨단을 자랑하며 모든 것을 다 정복할 수 있다고 했던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만 다시 재확인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어떤 기적보다 지금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 자체가 놀라운 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표현할 길 없는 분노만 삼키면서 흩뿌려져 흩어진 꽃잎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화려했던 봄이 끝자락이어서도 그렇고, 예수님이 자신이 몸을 모든 이들을 위해서 내어주는 그런 절기들을 지낸 시기 여서도 더 아픔이 크게 다가옵니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다른 이들을 살리며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스러진 이들의 소식들 하나하나 접할 때마다 더욱 숙연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꽃다운 나이의 어린아이들의 부음이, 유족과 학교와 우리 사회에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아이들의 목숨 값을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토록 어두운 공간에 갇혀 기다렸을 그 생명을 오늘 우리가 살고 있으면서도 인간의 길을 제대로 걷지 않고 한계를 넘어 교만으로 기고만장해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 가운데 있는 유족들과 함께 울고, 그네들의 아픔을 함께 품어줄 성숙한 사회,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일 앞에 겸손히 현실을 품되 할 수만 있다면 같은 일로 무고한 이들이 희생되지 않기를 힘쓰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꽃잎처럼 스러져간 아이들 앞에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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