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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

쉴만한 물가 - 94호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20140411 - 먹이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한 추장이 아들에게 이야기한다. “내 안에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단다. 그건 두 늑대 사이에 벌어지는 끔찍한 싸움이다. 한 놈은 악(惡)인데 화, 질투, 슬픔, 후회, 욕심, 오만, 자기연민, 죄책감, 억울함, 열등감, 거짓말, 헛된 자존심, 우월감, 그리고 바로 자아(自我)다. 다른 놈은 선(善)인데 그놈은 기쁨, 평화, 사랑, 희망, 평온함, 겸손, 친절, 자비, 공감, 너그러움, 진실, 연민, 그리고 바로 믿음이다. 똑같은 싸움이 아들 네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고, 다른 사람들 모두의 내면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고 있단다”. 그래서 추장의 아들은 물었다.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추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먹이를 주는 쪽”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한다, 이왕이면 자아에겐 죽지 않을 만큼 먹이를 주고, 믿음에겐 두 배의 먹이를 준다면 평온할 것 같다 싶은데 한편으로 이러한 싸움들이 모든 이들에게 평생에 걸쳐 끝이 없는 투쟁이 될 수 있겠다는 사실 앞에서는 숙연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내면의 싸움만 있을까? 내면의 싸움을 격하게 하는 세상이 있다. 아무래도 선한 삶을 살아가려는 이들을 얕보고 무시하며 또 이용하려는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모욕과 무시를 당하면서도 변함없는 믿음으로 묵묵히 살아가려는 이가 있다면 그는 분명 현자(賢者) 일 것이다. 그런 이들이 결코 보편적이지는 않다. 아무래도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이렇게 살아가려는 이들이 바보처럼 보인다.


지난 대선에서 이런 슬로건이 있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가슴이 쿵쾅거렸다. 정말 그렇게 경쟁이 펼쳐진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마음이었다. 유권자나 출마자 모두 동일하게 주어지는 기회가 평등한 경기, 그리고 여러 날 동안 진행되는 선거 운동과 투표 과정 가운데서의 공정함, 그렇게 평등하고 공정하게 치러진 후에 결정되는 결과는 모두가 인정하는 정의로 결판나기에 깨끗하게 승패를 인정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분명 기회는 평등하지 않았고, 과정도 공정하지 못했으며, 당연히 결과가 정의로울 수 없었다. 그 판결은 아직도 지지부진하게 진행 중이다. 그리고 얼마 전 있었던 소치 올림픽에서 그래도 스포츠 경기에서는 정말 평등, 공정, 정의로울 것 같아 컬링 등에서 감동을 주는 일이 있어 오래간만에 위로가 되었었는데 김연아 선수의 경기에서 정말 너무도 똑같은 현상을 보고야 말았다. 그 앞에 분노하는 많은 이들의 내면에는 먹고 싶지 않은 먹이들이 불가항력적으로 주어졌었다.


또 다른 경기가 다음 달에 진행되기에 지금 기회와 과정이 주어지고 진행 중이다. 그런데 애초부터 기회와 과정이 평등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을뿐더러, 너무도 뻔뻔스럽게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일들이 이제는 부끄러움도 없이 국민에게 들이밀어지고 있다. 수년을 준비한 땀과 노력이 불공정함으로 물거품이 되는 그림들을 스포츠에서 바라보면서, 그렇게 물심양면의 노력을 기울이던 싸움들이 애초에 불평등하고 불공정하다면 지금 경기에 임하는 이들이나 응원하는 이들은 무엇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는 말인가? 이번 경선의 모양새들이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으니 출마자는 안쓰럽고 유권자는 속이 탄다.


내가 주고 있는 먹이, 그리고 누군가 억지로 먹여주는 먹이 모두, 원치 않게 먹어야 하는 시간들 속에서도 우직하게 정의를 부르짖다 스러져간 많은 이들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그런 맘이 내게 있는 것이 참 불편하다. 그러나 불편하다 해서 시류에 휩쓸릴 수 없는 자리에 있고, 자녀들에게도 그래도 정의롭게 살아가는 것이 옳다고 말하며 증명하기가 정말 어려운 시기를 살고 있다. 차라리 바보처럼 살아라! 차마 말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하고 싶다. 그런 먹이를 주며 살라고 그래서 오랜 고통스러운 싸움을 싸우며 마침내 정의가 승리할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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