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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20-37 인자의 날을 경고하시는 예수님

누가복음 17:20-37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누가복음 17:20-37 인자의 날을 경고하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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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할 것인지 묻자 이미 임한 것을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에게도 인자의 날을 설명하시면서 고난이 있다는 것과 모든 이들이 알고 뜻하지 않은 때에 임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 날을 기다리며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깨어 있으라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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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절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치유를 통해 이미 임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나병환자의 치유를 목도하고 예수님께 하나님나라의 도래 시기를 묻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며 여기 저기 장소로 말할 수 없지만 이미 너희(바리새인) 안에(앞에, 가운데, 지금 여기 실재하는) 임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병환자의 치유는 바리새인들에게는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의미하기에 그 시기를 확인하기 위해서 묻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무지와 하나님나라에 대한 오해 때문입니다. 로마가 지배하고 있던 당대에 유대인들이 기대하던 하나님나라는 로마와 같은 강력한 힘을 가진 군주의 도래로 자신들의 정치 종교적인 해방을 기대한 것입니다. 지금 나병환자의 치유는 그런 자신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 같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물어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기대한 하나님나라와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그들이 기대한 나라와 다르기에 예수님을 통해 임한 하나님나라를 (표적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와 저기의 특정 공간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충분히 보편적으로 임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무소부재(無所不在)와도 연결됩니다. 하나님나라의 실재성과 현재성을 강조하시면서 이미 하나님나라는 너희 곧 바리새인들이 보고 있는 현장에 예수님의 가르침(선포)와 병고침(치유) 등을 통해 임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리새인들은 그러한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나라를 발견하는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이미 시작된 종말,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임재를 앞서 앞을 보지 못하고, 나병에 걸려 저주 받은 자들은 오히려 실재를 경험하고 믿습니다. 그러나 사지백체가 멀쩡한 이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이해와 오해 속에 정작 예수님의 가르침과 이적을 보고서도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깨닫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삶에도 하나님나라를 이미 임했고,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와 인도하심과 예비하심 속에 하루하루 매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이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우리의 귀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의 손과 발이 주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경험하며, 우리의 심령이 주의 성령으로 충만하여 날마다 주님의 나라 거룩한 백성의 길을 간다면, 우리는 이미 시작된 종말과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살고 누리고 있는 것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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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30절 인자의 날은 미혹과 고난과 더불어 모두가 알도록 갑작스럽게 도래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제자들에게 인자의 때(십자가 사건과 재림)에 대해 설명하십니다. 제자들은 그 날을 보지 못합니다. 동시에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미혹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인자의 임함은 비밀리에 오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알 수 있도록 올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는 일상에 있으면서 그 날을 기대하지 않고 살아가지만 갑자기 인자가 임하여 심판하실 것이라 경고하십니다.

인자의 때를 일차적으로 십자가 사건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모든 제자들은 다 도망갔기에 그 하루를 보지 못한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실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사건은 모두가 알았고(번개의 번쩍임과 비침은 하나님의 임재를 묘사할 때도 쓰는 표현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또 다른 사건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림 받으셨습니다. 그 때에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는 등 자신들의 평범한 일상에 전념하고 메시아와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또 한편 인자의 때는 재림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당대 제자들은 그 날을 보지 못합니다. 모두가 알 수 있도록 임할 것입니다. 우주적인 종말을 고대하고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우선으로 알고 살아가지만, 이를 믿지 않는 이들은 욕망을 따라 하나님과 상관없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 가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는 일들에 매여서 정작 하나님을 예배하고 순종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무관심과 불신앙으로 점철되고 탐욕과 이기에 눈먼 부질없는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인생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소중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상에 매몰되어 인자의 때 곧 하나님나라와 뜻에 무관심하고 무감각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또 다른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 아닌 것을 추구하고 매이고 주인 삼아 살아가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일상에서도, 특별한 일상에서도 변함없이 주님과의 동행과 하나님나라의 통치와 재림에 대한 개인적 우주적 종말을 알고 믿는 자로 합당하게 살아가는 삶의 자세는 깨어있음입니다. 오늘도 주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일상의 소중함과 더불어 이러한 모든 삶의 내용과 방향에 있어 주님과의 동행과 뜻을 기억할 수 있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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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37절 인자의 날에 대한 주권이 주께 있으니 모든 것을 의뢰하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인자의 날에 대한 긴박성을 추가로 강조합니다. 그 날이 도래할 때는 긴박하기에 이 세상의 것에 미련을 두지 말라 하십니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고, 잃는 자는 오히려 살리라 하십니다. 그 날에는 분명 선택 된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있을 것이며, 의인이 있는 곳에는 구원이, 악인이 있는 곳은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인자의 날에 대한 긴박성은 이 세상의 소유에 미련을 두었을 때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인자의 날이 오게 되면 선택된 자와 유기된 자로 구분됩니다. 이 세상의 것에 미련을 갖고 있는 딜은 유기되겠지만,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뢰하는 자들은 오히려 생명을 얻을 것을 말합니다.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있듯이 의인이 있는 곳에는 구원이 있을 것입니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자기 영혼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것, 하나님을 위해 자기 영혼을 보존하지 말고 맡겨 버리라 합니다. 내 영혼을 잃는다는 것은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내맡기고, 내 계획을 하나님의 계획에 내맡기며, 내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에 내맡긴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할 때만 구원의 드라마는 절정과 결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중략) 자아는 영원에 값을 치르고 새로워집니다. 자아는 자기 자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서, 자기 보존이나 영혼 돌붐이나 완전의 추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잃어버리고 잊음으로, 곧 자기희생과 자기를 내어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자아는 자신의 결점과 장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만을 중요하게 여김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자아는 세상 한가운데서 구원을 얻습니다. 세상 안에서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세상 안에서만 하나님께 바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안에서”는 바로 “이웃 옆에서”를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이웃에게 온전히 내어주는 것은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웃을 통하여 하나님에게서 구원을 얻습니다.”_본회퍼 설교중에서

오늘 내게 주어진 일상과 사역들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더불어 주님의 나라와 통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며, 함께한 이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을 기억하고, 내게 주어진 사명의 삶을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의 통치 앞에서 즐거이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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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의 말씀과 역사하심을 통해

변함없이 통치하시는 주님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미혹하는 이들을 분별하며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도 주시오며

주어진 십자가의 길을 외면치 않고

일상의 소중함을 지키되 매몰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시 뜻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 살기 원합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의뢰하되

허락하심과 기대하심에 부응하기 원하오며

때로 힘들고 지칠 때에라도

주님이 주시는 새 힘으로 살게 하옵소서.

완성된 그 날을 소망하며

오늘도 주님 앞에 거함을 기뻐하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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