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25:14-28
역대하 25:14-28 오만한 자의 망상과 겸손한 자의 섬김
승리에 취해 자신을 신으로 삼은 오만한 자는 결국 파멸에 이르지만,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겸손한 자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생명의 길을 걷는다.
승리의 순간은 이중적입니다. 환희와 성취감에 휩싸이는 그 순간은 동시에 가장 깊은 영적 시험의 때이기도 합니다.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이 몰락하는 것은 언제나 삶의 정점에서였습니다. 오만(hubris)은 신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에게 내려지는 형벌이었습니다. 정상에 선 자는 더 이상 오를 곳이 없기에, 세상이 온통 제 발아래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는 그 순간, 그는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됩니다. 자기 자신에게 말입니다.
유다 왕 아마샤의 이야기는 승리가 어떻게 한 영혼을 파멸로 이끄는지를 보여주는 서글픈 기록입니다. 그는 에돔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 승리는 의심할 바 없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승리에 도취된 그는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에돔 사람들이 섬기던 우상들을 예루살렘으로 가져와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자신들의 백성조차 지켜주지 못한 무력한 신들에게 복을 구하는 왕의 모습은 한 편의 희극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어리석음이 아닙니다. 승리에 취한 나머지 하나님을 잊어버린 한 인간의 공허한 내면이 빚어낸 비극입니다. 그 우상들은 더 이상 신이 아니라, 그의 승리를 기념하는 전리품이었습니다. 그는 신을 경배한 것이 아니라, 승리한 자기 자신을 경배한 것입니다.
바로 그때, 이름 없는 예언자 한 사람이 그를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온 그는 왕의 어리석음을 질타합니다. “임금님께서는 어찌하여 자기 백성을 임금님의 손에서 구해 내지도 못한 신들에게 복을 비십니까?”(역대하 25:15) 지혜로운 이는 꾸지람 속에서 사랑을 읽어내지만, 교만한 이는 충고 속에서 모욕을 발견할 뿐입니다. 아마샤는 격분하여 예언자를 위협합니다. “누가 너를 왕의 고문관으로 임명하였느냐? 그만두어라! 왜 매를 버느냐?”(역대하 25:16) 그의 마음은 이미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승리의 함성에 취한 그의 귀에는 더 이상 하나님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의 소리가 너무 커지면 다른 소리는 소음으로 들릴 뿐입니다. 우리 시대의 비극도 바로 이 ‘소음 과잉’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공과 성취를 향한 욕망의 소음, 타인과의 비교와 경쟁이 만들어내는 불안의 소음이 우리를 끊임없이 흔들어대고 있습니다. 그 소란함 속에서 우리는 종종 하늘의 음성을 듣는 법을 잊고 살아갑니다.
자기 힘에 대한 과신에 사로잡힌 아마샤는 급기야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전쟁을 선포합니다. 요아스는 ‘가시나무가 레바논의 백향목에게’ 보내는 전갈의 비유를 통해 그의 오만함을 조롱했지만, 그는 끝내 귀를 닫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명확히 밝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아마샤가 에돔 신들을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시기로 작정하신 것이다.”(역대하 25:20) 결국 그는 전쟁에서 패하고, 예루살렘은 약탈당하고, 자신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교만은 이처럼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무서운 병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연약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교만으로 눈이 먼 아마샤를 즉시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언자를 보내 그의 마음을 돌이키려 하셨습니다. 꾸짖음은 심판의 언어가 아니라 사랑의 언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사랑을 거부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비극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공이나 성취를 보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의 연약함과 상처를 더 깊이 들여다보십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더 강해지라고, 더 높아지라고 부추기지만, 주님은 오히려 가장 낮은 곳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삶이야말로 그 증거입니다. 그분은 지배하는 왕이 아니라 섬기는 종으로 오셨고, 가장 낮은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혹시 우리 마음에도 아마샤가 가져온 에돔의 우상들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성공, 우리의 성취, 우리의 지식이 어느새 우상이 되어 우리 자신을 경배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귀를 열어야 합니다. 세상의 소란함 속에서도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말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상처를 통해 세상을 치유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와 사랑은 우리의 강함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 더욱 빛나는 법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붙들어야 할 것은 승리의 월계관이 아니라, 연약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 안에 거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오만한 자의 망상에서 벗어나 겸손한 섬김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