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몸부림 사이에서

쉴만한 물가 - 98호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20140509 - 침묵과 몸부림 사이에서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다" (마틴 루터 킹)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하고 있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회주의자들을 가둘 때, 나는 잠자코 있었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조에게 왔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조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태인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내게 왔을 때, 내 주위에는 아무도 항의해 줄 이가 남아있지 않았다.”(마르틴 니묄레)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정치적 격변기에 중립을 지킨 자를 위해 예비되어 있다"(단테) “현실 비현실을 따지기 전에 옳은가 옳지 않은가를 먼저 따져라.”(백범 김구)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괜히 나서다 불이익 볼 수 있다는 생각, 분명히 잘못된 지 알면서도 귀찮다는 이유로 침묵하는 경우들, 나와는 상관없다 생각하는 근시안적인 생각들, 중립을 지킨다는 명분, 나하나쯤이야 하는 생각, 다들 그렇게 하고 있고 지금까지 관례로 그래 왔다는 마음, 그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하는 생각들 모두 이기적인 비겁자의 변명일 뿐이다. 착한 것과 어리석은 것은 다르다. 원수를 사랑하고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대는 그런 자비는 힘없는 자의 비굴한 굴종에 대한 정당화가 아니다. 더 강한 자만이 왼뺨을 돌려 댈 수 있다. ‘착함’은 온유하고 무기력하고 힘없고 어쩔 수 없이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힘이 있어 분노할 수 있으나 넉넉히 화해의 손을 내미는 그 능력이 있는 자가 착하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지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힘도 없고, 무지하고, 잘못 알고 있는 자들의 침묵은 어리석음이다. 그것은 정말 비굴함이다.


지난 수일 동안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부정선거로부터 시작하여, 내부의 부정을 폭로하고 정의를 행하며 진실을 말하는 이들을 징계하고 불합리하게 승진에 누락하고, 공약을 파기하고,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고무줄 법집행이 버젓이 자행되어도, 잘못을 잘못이라 외치는 이들을 종북몰이로 매도해도, 머슴이라던 자들의 기만적인 언행과 부정함이 탄로 나도 버젓이 지도층의 권좌에 버티고 있어도, 진실을 왜곡하는 언론의 행태에도, 국격을 밥 말아먹고 나라를 팔아먹는 것 같은 무능 외교에도, 억울한 이들이 죽어가고 몸부림치는 요청에도,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생기고, 문제가 드러난 민영화를 온갖 허울 좋은 감언이설로 기만해도, 이외에 우리에게 너무도 직간접적으로 밀접한 문제들이 턱밑까지 목을 옥죄는데도 우린 여전히 침묵하거나, 방조하거나, 자포자기하거나, 외면하면서 나와 상관없다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나마 몸부림치는 이들을 응원은 못해줄 망정 그들의 작은 흠이라도 발견되면 침소봉대하여 비난의 화살을 던져 그 싹마저 마르게 한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결국 기득권자들의 권좌를 흔들지 말라는 이야기다. 대의를 말하고 경제를 말하고 민생을 말한다. 그러나 돌려 표현할 뿐 귀찮게 말라는 것이다. 어리석은 민중의 침묵은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고, 깨어 있는 자들의 작은 몸부림들은 부정한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댓글 하나, 일인 시위 한 명 진실을 파헤치는 작은 몸부림에도 과도한 위협과 진압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이 안타까운 현실 앞에서 민초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집회와 시위도 필요하고 횃불이든 촛불이든 오래전에 없어졌던 꽃병이든 뭐든 몸부림이 있을 수 있다. 그런 몸부림과 몸짓을 통해서도 꿈틀거리는 민초의 마음을 전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두려워하는 몸부림은 깨어 있는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분야에서 공의를 세우고, 말 한마디 몸짓 하나 왜곡되고 잘못된 것들을 바로 잡는 노력들과, 주위의 부정과 잘못들에 대한 분명한 지적과, 미디어에 대한 모니터링 글 하나, SNS의 좋아요 추천 댓글 하나 다는 일, 시민에게 주어진 표하나 제대로 행사하면서 관심을 표하고 의사를 드러내며 행하는 몸짓 하나하나가, 침몰할 것 같은 이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희망의 몸부림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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