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만한 물가 - 60호
20130510 - 쌈과 진지
봄에는 산에 된장만 들고 가면 먹을 것이 천지라는 얘기를 자주 듣곤 했습니다. 이래 저래 봄에는 된장에 쌈 싸 먹을 채소들이 참 많기 때문입니다. 제일 많은 것이 상추입니다. 이 외에도 찾아보면 쌈으로 먹을 수 있는 게 지천입니다. 취도 쌈으로 먹으면 맛있고, 곰취도 귀한 것인데 더없이 만나고, 진한 향기가 나는 당귀나 치커리는 말할 것도 없이 맛있습니다. 쑥갓이랑 참나물도 곁들이면 그 맛은 더 기가 막히고, 여기에 취향을 따라서 젠피(초피, 좀피)잎 새 순을 곁들이거나 매운 고추를 된장에 직어서 싸 먹으면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을 만큼 맛있습니다. 봄에 나는 연한 새순들은 거의 대부분 쌈으로 먹을 수 있습니다 칡 잎이나 토끼가 좋아하는 토끼풀이나 씀바귀, 엉개 나물들도 쌈으로 먹으면 씁쓸한 맛이 더없이 입맛을 돋워줍니다.
산행에는 뭘 먹어도 맛있는데 보리밥 한 덩이에, 갖은 쌈을 한 주먹 쥐고서 풋고추를 된장에 얹어서 한 입 가득히 넣어 소나 염소처럼 우물거리면서 푸른 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씹어 보면, 그 맛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고사리를 넣은 정어리 찜이나 다른 육고기를 싸 먹을 때도 이 쌈은 육류나 생선의 비릿한 냄새를 없애 줄 뿐 아니라 소화나 여러 배합이 정말 잘 맞는다는 느낌이며, 이런 쌈을 싸 먹을 때마다 우리나라는 참 잘 먹고 산다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어릴 적엔 몰랐는데 자꾸 이런 음식들이 더 속도 편하고 맛깔스럽다는 생각이 가득합니다.
쌈은 그 자체로도 맛있지만, 이와 같이 뭔가를 함께 에둘러 먹게 한다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가끔 뭔가를 잊어 먹거나 없어졌을 때 ‘뭐에다 쌈 싸 먹어 버렸나?’ 합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진지함을 잃어버린 경우에 심지어 ‘진지는 쌈 싸서 드셨나?’라고도 사용합니다. 이 말에는 진지함을 상실한 경우를 빗대서 ‘진지'가 밥이라는 말과 동음 이의어이기에 혼용해서 쓰는 표현입니다.
정말 요즘에 이 진지함을 쌈에다 몰아 드신 것 같은 사람이나 사건들이 자꾸 드러나고 있습니다. 국정원 댓글 사건도, 정치사의 인사 문제들도, 대리점들을 향한 기업들의 횡포도, 더더욱 엊그제 일어난 미국발 성추행 사건도 모두 진지하게 살아가야 할 분야에서 도대체 무엇을 먹고살기에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생기는지 상식과 이해를 넘어서는 일들 앞에서 당황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좋은 쌈의 재료들은 소화를 돕고 건강에도 이롭지만 간혹 산에서 독초를 쌈 싸 먹어서 곤란한 일들을 겪는 일들도 있습니다. 먹지 말아야 할 풀들도 있고, 그런 것들을 진지하게 잘 가려야 하는 분별력과 긴장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의 일들을 보면 단순한 실수로 보기 힘든 평소의 생각이나 품은 욕심들이 결국 드러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드러나는 진실들이 더 가슴 아프게 하고 분노하게 합니다.
진지는 쌈을 싸서 먹어도 좋은 계절이지만, 진지해야 할 일들은 그렇게 쌈 싸 드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정치인이든 지도자들이든 기업을 하는 사람들이든 자신의 위치에서 제대로 된 분별력과 상식을 가지고 맡은 바 소임을 다해 주길 바라고 있는데 자꾸만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생기는 것을 봅니다. 요즘 국민들 맘에 연예인들하고 스포츠맨들 몇몇이 간신히 감동과 희망을 줄 뿐 정작 여타에서는 맛있는 게 없는 현실 앞에서 한 줌 쌈에 진지의 소망과 맛 하나를 얹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