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개 2:01-09
참된 영광은 화려한 외형이나 성취가 아니라,
우리의 연약한 삶 한복판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평화 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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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이 제법 차갑습니다. 거리의 나무들이 한 해 동안 입고 있던 화려한 옷을 하나둘 내려놓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는 계절입니다. 문득 우리의 삶도 저 나무들을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열심히 달려왔지만 손에 쥔 것은 별로 없고,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삶의 문제들 앞에서, 우리는 가끔 깊은 비애감에 젖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인 학개서의 배경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너진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초를 놓았을 때, 노인들은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찬란했던 옛 솔로몬 성전에 비해, 지금 자신들이 짓고 있는 성전이 너무나 보잘것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학 2:3). 이 탄식은 어쩌면 오늘을 사는 우리가 내뱉는 한숨인지도 모릅니다. '내 믿음은 왜 이리 연약한가', '내 삶은 왜 이리 팍팍한가'라는 자괴감 말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낙심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나님은 그들에게 더 크고 화려한 건물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을 강하게 하라'고 격려하십니다. 왜냐하면 성전의 영광은 건물의 웅장함이나 금과 은의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학 2:8) 하신 주님은, 그 누추한 건물이라도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그곳이 곧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가 됨을 일깨워 주십니다.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무게에 지쳐 신앙의 의미를 묻고 있는 벗들이여.
우리의 삶이 비록 미완성의 건물처럼 위태로워 보일지라도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성공'이 아니라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더 높게, 더 화려하게'를 외치며 우리를 몰아세우지만, 주님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학 2:9) 약속하십니다. 진정한 나중 영광은 우리가 무엇을 이루었느냐가 아니라, 깨어진 우리 마음속에 평화의 왕이신 주님을 모시는 데 있습니다.
독일의 시인 릴케는 "나의 삶은 점점 넓어지는 원을 그리며 사물 위로 퍼져나간다"고 노래했습니다. 비록 그 원을 다 닫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그 넓어짐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무너진 것 같은 우리 삶의 자리가 실은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깊게 고이는 웅덩이일 수 있습니다. 연약한 우리를 통해 당신의 평화를 이루시려는 그 따뜻한 손길을 믿고, 오늘 다시 한번 스스로 굳세게 일어서기를 빕니다. 빈 들 같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평강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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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한 현실 앞에 낙심하는 연약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내가 너희와 함께 하니'라는 약속과 참된 영광은 외적인 금은보화가 아닌 당신의 변치 않는 현존에 있음을 선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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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외적인 조건으로 삶의 가치를 재단하려는 욕망의 중력에 사로잡혀 살곤 합니다. 이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무엇을 소유하고 성취해야 한다고 말하며, 자기 과시욕에 사로잡힌 이들은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들이 아는 것만으로 세상을 규정하려 합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결국 영혼을 납작하게 만들고, 우리는 헛된 만족을 좇아 방황하며 구멍 뚫린 전대에 삯을 모으는 것 같은 허망함을 경험합니다.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 재건을 시작했던 유다 백성들 역시 이와 같은 절망감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학개 2:3을 보면, 스룹바벨 시대에 지어지는 이 성전의 초라한 모습은 솔로몬 시대의 장엄했던 영광과 비교되어 사람들의 눈에 아무것도 아닌 듯 보였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희미하고 볼품없는 현재의 결과물 앞에서 낙심하는 인간의 연약함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들은 이미 성전을 짓겠다는 고통스러운 결단을 했음에도, 현실의 모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맥이 빠지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낙심한 이들에게 꾸짖음 대신 위로와 소명을 건네십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주시는 핵심 메시지는 단순하고도 단호합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학 2:4). 이 말씀은 모든 절망과 무기력함을 이겨낼 수 있는 급진적인 희망의 근거입니다. 우리의 신실함이나 완벽한 행위가 아니라, 우리가 연약하여 죄의 인력을 끊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향해 변치 않는 사랑(헤세드)을 거두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시(詩), 곧 ‘포이에마’이며, 우리는 그분의 마음에 닿고 싶어 하는 그리움의 실핏줄로 연결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 연약한 공동체를 향해 선언하십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학 2:9).
우리가 헌신하여 이루어낸 성과가 세상의 화려한 기준에 미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자비로 그 작은 헌신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이 세상의 은과 금, 곧 우리가 추구하는 물질적 가치는 모두 하나님의 소유입니다(학 2:8). 이는 우리의 헌금이나 건물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모든 궁핍함과 풍요로움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선포함으로써, 우리를 돈의 노예가 아닌 존엄한 주체로 일깨우기 위함입니다.
참된 영광과 평강(샬롬)은 우리가 완벽한 건물을 지었을 때 주어지는 보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 곧 하나님의 현존을 통해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값없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믿음으로 일어서고, 그 벅찬 소명을 따라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넘어지더라도 일으켜 세워 주실 분이 바로 주님이시라는 확신이야말로, 우리가 혼돈된 세상을 건너는 굳건한 이정표가 됩니다.
우리가 스스로 쌓아 올린 흙집은 작은 바람에도 허물어지지만, 하나님이 그 중심에 계신 공동체는 마치 건축자들이 버린 돌을 다시 가져다 모퉁잇돌로 삼아 세우는 새 성전과 같습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