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만한 물가 - 61호
20130516 - 그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 종로(鐘路)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 커다란 북[鼓]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 여러분의 행렬(行列)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노래한 심훈의 “그날이 오면"이라는 시다. 그가 노래한 그 광복의 날이 온 지 어언 70여 년. 우리는 광복의 그 나라에 사는 줄 알았다. 그러나 더덩실 춤추던 그 일도 잠시 또다시 더 아픈 동존 상잔의 비극 속에서 치를 떨어야 했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기도 전에 좌우의 분열의 나락에 빠져버린 나라. 그런 혼돈을 틈타 권력을 탐하는 자들의 광기의 역사 앞에서 민중은 끊임없는 희생과 동원에 시달려야 했다.
잔인한 4월, 3.15의 부정선거에 분노한 그해의 민중 항거는 부패한 정권을 하야시켰으나, 혼란을 틈타 비열한 탐욕을 분출한 5.16 군사 쿠데타는 권좌를 얻고 겉과 속이 다른 또 다른 독재 속에 민중을 다시 긴긴 억압의 터널을 걷게 했다. 그 속에서 이름 없이 저항하다 사라진 수많은 민주 투사들을 수없이 잠재운 뒤, 독재의 만행이 극에 달하던 어느 날 궁정동 안가에서 독재자는 치욕스럽게 생을 마감했다. 이제 정말 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온 것일까? 독재 치하의 군부에서 학습한 또 다른 독재자들이 잠을 깨고, 자신들의 수장을 통해 배운 대로 또다시 정국을 계엄으로 몰아가며 권력을 탐한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 두부처럼 잘려가던 어여쁜 너의 젖가슴 /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딜 갔지 / 망월동에 부릅뜬 눈 수천의(개) 핏발 서려있네 /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 산자들아 동지들아 모여서 함께 나가자 / 욕된 역사 고통 없이(투쟁 없이) 어떻게 헤쳐 나가랴 /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 대머리야 쪽발이야 양키 놈 높(솟)은 콧대야 / 물러가라 우리 역사 우리가 보듬고 나간다 //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솟네. 피. 피. 피...
문승현 님의 “오월의 노래"에는 다시금 ‘그 날’을 노래한다. 그러나 그 날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그 날이었다. 적어도 그래서는 안된다는 상식의 발로로 시작된 저항은 무자비한 독재자의 총칼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꽃잎처럼 떨어졌다. 더 악랄해진 군부독재와 이어지는 6월 항쟁 그러나 안타까운 연정 정부. 끝이 보이지 않은 시간들. 이어서 세워진 무능한 문민정부 속에 민주화의 꽃은 피어 열매 맺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부패한 정권이 남긴 빚은 나라 살림을 거덜 내었고, 어려움 속에서 정신을 차린 민중은 간신히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켰고 이어 참여 정부까지 세웠다. 그러나 민(民)이 주인 되는 세상 속에서 너무도 빨리 경제(돈) 앞에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팔아버리고 급기야 진정으로 국민을 생각했던 지도자들을 버리고 말았다.
야누스의 가면을 쓴 지도자에게 속아 돈이면 다라고 생각하는 민중의 탐욕은 독재보다 더 무섭게 권력의 극단적인 부패를 부추겼다. 지난 5년 우리는 정신없이 터지는 대형 사건들 속에서 촛불을 켜들고 저항해 보았지만 더 치밀해진 독재자는 어리석은 동조자들을 앞세워 언론과 경제를 거머쥐고 민중의 마음까지 쥐락펴략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뻔히 보고도 저항할 여력조차 없이 민중을 저항마저도 값싼 저항으로 전락시켜 피폐하게 해버렸다.
심훈이 노래한 그날은 아직도 오지 않았으며, 80년 오월 그 날을 다시 서른세 번이나 맞이 했건만 우리 가슴에 솟아날 피마저도 다 잃은듯한 절망감이 몸서리쳐지는 때를 살고 있는 우리들. 상처 나고 터진 문제들을 다 봉합하고 아물기도 전에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사건, 사건들 앞에서 넋을 놓고 끌려가야 하는 생각 속에서도, 우리 선배들이 그 날을 노래하며 바보처럼 저항하며 만들어 온 그 모습을 우리도 살아가야 할 이유는 선배들이 흘린 피에 대한 보응의 길이며,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부모 된 자들의 길이기에 다시 그날을 노래해 본다. 여전히 산 자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