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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희생양

쉴만한 물가 - 100호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20140523 - 폭력과 희생양


“모방이 곧 창조다”라는 문구는 긍정적으로 보면 창조적 작업에서 모방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며 그 모방으로부터 창조가 시작된다는 면으로 해석되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그런 모방은 극단적으로 획일화로 가는 문을 연다고 볼 수 있다. 더 나은 무엇을 모방하고 싶은 데서부터 성형과 같은 짝퉁 내지 짝패들이 양산되기도 한다. 모방에 대한 욕구가 가속화되어 그러한 짝패들이 많아져서 차이가 소멸되는 지경에 이르면 모든 것이 평화로워야 하는데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이 거기에 멈추지 않는다. 거기에는 다시 자기 소멸에 대한 두려움과 서로 경쟁의 우위를 점하려고 하는 욕망이 분출되고 그것은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한 폭력을 양산하게 된다.


위와 같은 일들이 사회와 정치 그리고 집단과 국가 간에 발생하면 그러한 폭력의 양상은 극에 달해 전쟁으로까지 발전된다. 수직적 계급사회에서는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권위의 폭력에 의해 욕망이 억압되어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으며, 그러한 욕망을 억누르는 폭력이 합법화 내지 정당화되어 있다. 수평적 사회에서는 적어도 서로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억압이나 폭력이 그래도 덜한 편이라고 생각된다.


이와 유사한 형태로 한 사회나 국가에 발생하는 현상들을 폭력과 희생양이라는 메커니즘으로 르네 지라르(프랑스)라는 인문학자는 해석한다. 모방 욕망의 가속화, 경쟁, 짝패 현상, 폭력적 상호성의 발생, 차이 소멸의 가속화, 위기, 위기 극복을 위한 희생양 형성, 만장일치적 폭력으로 체제 유지 등의 용어들로 사회 현상들을 해석한다. 여타의 설명은 차치하고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모방 욕구로 자신들의 체제를 흔드는 이들을 계속 평정하기 위해서 꼭 희생양을 양산한다는 것이다. 단 그 희생양은 누구나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도록 희생양이 죄인이거나 처벌받아 마땅하다고 만인이 동의해야 한다. 그런 만인의 동의가 더 커지면 커질수록 희생양의 효과는 극대화된다. 하지만 희생양에 대한 만인의 동의가 이뤄지지 않고 그것이 의도적으로 생산된 거짓이 밝혀지면 권력자는 역풍을 맞게 된다.


우리 사회의 근현대사에는 이와 같은 희생양이 지속적으로 권력자들에 의해 양산되었고 그런 권력의 희생양에 대하여 안타깝게도 국민은 호도되고 세뇌되어 의심 없이 정죄했고 함께 암묵적 폭력에 동조하여 희생양을 죽게 하고 대체된 위장 평화에 자위하면서 살아왔다. 그런 희생양의 첫 번째가 빨갱이 좌파라는 색깔론과 가난과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 앞에는 모든 폭력을 정당화 내지는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차이가 희미해지는 현대사회에서는 안타깝게도 무고한 희생양들을 양산하여 기득권자의 입장에서 누명을 씌우고 힘없는 이들이 무차별적으로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대화나 토론으로 상대를 설득할 수 없는 권력자는 결국 폭력을 사용하게 된다. 오래전 유시민 씨가 한 말이다. 그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희생양을 철저하게 소위 죽일 놈으로 만들어야 하기에 합법을 가장한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희생양의 처벌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해 간다. 이미 법의 잣대가 고물줄처럼 늘어나서 그 장력은 상실된 지 오래고, 칼자루도 자신들이 쥐어져 있으며, 받아쓰기에 능한 미디어는 자기 사람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있고 거기다가 돈으로 족쇄를 채워두었기에 자신들의 정당성을 쉼 없이 홍보하고 있으며, 합법적 폭력 행사자들은 경찰들은 직증에 채찍에 길들여져서 사람인데도 생각하기를 거부한 터미네이터처럼 행동한다.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해서는 안되고,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지 정상적인 민주 사회라 할 수 있는데 이 나라는 지금 그 반대인 듯하다. 국민을 적으로 생각하면서 여전히 눈을 희번덕거리며 희생양을 찾고 폭력을 행사하면서 스스로 자화자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는 그런 권력자가 아니라 그들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통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더불어 스스로 희생양이 되어 온 몸을 던진 열사들과 이름 없이 죽어간 많은 이들의 희생과 피값으로 세워진 민주주의가 아니던가?


인류 역사의 큰 전환점이 되었던 정점에는 스스로 희생양으로 자신을 내어 놓은 의인이 있었다. 모두가 죄인이라 했지만 결국 죄없음이 밝혀진 후에야 비로소 그의 죽음에 대한 의미들이 살아남은 자들의 삶과 세상을 바꿨던 역사. 지금도 우리 가운데 무고한 희생양들이 양산되는 상황에서 우리의 욕망을 점검하고 암묵적 폭력에 노출된 무지를 깨고서 희생양의 무고를 인지할뿐더러 이미 희생양이 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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