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만한 물가 - 63호
20130531 - 관심
그날 아침까지 고민했습니다. 결국 학교에 갔는데 선생님은 기어이 가져오라고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우리들에게 부탁한 것은 예쁜 나무나 꽃이 심긴 화분이었습니다. 장학사가 오니까 학교를 이쁘게 꾸미기 위해서라고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요즘에야 화원에 가서 화분 하나 사는 거 그리 어렵지 않지만, 시골에 살던 우리는 화분을 구하기조차 힘들었습니다. 나무나 꽃은 산으로 들로 나가면 얻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화분에 꼭 맞는 식물을 구하기란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의 성화에 발걸음을 다시 집으로 돌려야 했고, 어떻게 할까 집으로 오면서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마침 집에 굴러다니던 붉은 황토로 된 직경 20센티 정도 되는 화분에 그 대 마침 꽃 순들이 올라올 때였는데, 그중에서도 봉숭아가 제격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갓 올라온 두 세잎 나는 싹을 세 개 정도 모아서 심었습니다. 한여름 봉숭아 물을 들일 때쯤엔 봉숭아가 키가 많이 큰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어쩌면 세 개도 많을 거라는 생각도 하면서 이게 크면 화분 가득 봉숭아 꽃이 탐스럽게 화알짝 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너무너무 이쁠 것이라는 그림을 그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봉숭아 새 순을 세 개 모아서 화분에 심고 보니 큰 쟁반에 콩 몇 개 담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자라는 거랑 이후의 그림을 생각하면 선생님께서 충분히 통과해 주실 거라 생각하고 낑낑대며 무거운 화분을 들고 학교까지 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학교에 가서 근처에 흙을 파 담아도 되는데 집에서부터 들고 갔으니 얼마나 땀을 삐질거렸는지... 학교까지 들고 가면서 이렇게라도 심어서 참 다행이다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학교에 도착해서 쟁반 위 콩알 세 쪽 같은 그 화분을 보는 선생님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빙그레 웃으시며 그 화분을 제쳐 두시고 학교 텃밭에서 다른 꽃을 옮겨 심어서 복도에 두셨습니다. 속으로 무심하다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집니다. 선생님이 얼마나 황당하고 난감해하셨을지, 그래도 애쓰고 화분을 들고 온 것을 갸륵히 여기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가정마다 많은 화분들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식물에서부터 큰 관엽식물까지 다들 한 두 개쯤은 가지고 있는데 이걸 잘 키우는 게 위해서는 여간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어떤 분은 다 죽어가는 화분만 가져다가 잘 살려서 집안을 화사하게 해 두신 분이 있는 반면, 어떤 분은 잘 사는 것도 며칠 안돼 삐들삐들 말라 죽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어떤 기술이나 정보보다 화분에 대한 적절한 관심과 사랑이 없으면 화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살아 있는 것 같지만 뿌리가 죽어가는 것도 있고, 새싹이 나야하는데 자꾸만 가을이 아닌데도 잎이 떨어지는 것도 있고 그렇지요. 물이 필요하고 거름을 올려주어야 하는 것을 곧 알아차려야 하지요. 특별한 지식도 물론 조금 필요하겠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애정이 너무 과해도 안되고, 결핍되어도 안되지요. 시들어 가는 화분에 물을 주면 금세 생기가 도는 느낌이 확 들어갑니다. 그럴 때마다 미안도 하고....
아이들을 기르는 일이나, 친구를 사귀는 일이나, 사업을 하는 일이나,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도 이 일과 비슷합니다. 관계도, 일도, 사랑도, 과다 투여나 결핍 없이 촉촉하게 잘 관리해 가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그런 마음을 이내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길거리 가시다가 작은 화분 하나 사서 사무실 책상이나 현관에 올려두세요. 오며 가며 그 화분을 보면서 그렇게 나의 관심과 애정을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로 괜히 기분이 좋아지실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