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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고통

쉴만한 물가 _ 159호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20150613 - 관계의 고통


어릴 적에 어른들을 보면서 잘 이해하기 힘든 두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뜨거운 국을 드시면서 ‘국물이 시원하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펄펄 끓는 찌개며 탕을 후후 불어 입에 넣으시면서도 ‘어허 시원하다’ 하시는 말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뜨거운 냄비나 그릇을 상에 올리시면서 ‘뜨겁지 않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신 밥그릇이며 국그릇을 살짝만 닿아도 데일 것 같은데도 어머니는 아무 보조 장치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밥상에 올려놓으시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그 뜨거운 국물을 왜 시원하다 하는지 이해가 되는 나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물을 때 나중에 나이 들어보면 안다 하시던 그 이유를 생각하곤 어느새 그런 나이가 되어 버렸나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사실 어머니가 그 뜨거운 그릇을 상에 올리시면서 고통을 느끼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오래도록 일하시며 굳어진 살이 배긴 손마디가 뜨거움을 잘 못 느끼시는 것도 있겠지만, 자녀들을 위해서 참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님 앞에서 우리 엄마는 뜨거운 것도 잘 이기신다고 철 없이 말하던 모습에 아무 말 없으셨던 그 맘이 자식들을 향한 큰 애정이었음을 이제야 자녀들을 길러보면서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듯합니다.

사실 부모님이 정말로 고통스러워하고 아파하시는 것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당신들이 직접적으로 당하는 고통들은 죽을병이 아니고서는 심지어 죽기까지 여간 아프다는 말씀을 잘 하지 않으십니다. 정말로 애간장을 녹이는 것 같은 고통은 당신들의 고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신들이 직접적으로 당하는 고통은 웬만해서는 그냥 견디시며 아픈 내색을 거의 내지 않으십니다. 부모님이 정말 아파하시는 것은 자식이 아플 때 그 고통을 당신의 고통으로 안아서 당신이 대신 아파해 주고 싶으나 그럴 수 없을 때 가장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입니다. 열나는 머리에 찬 수건을 올려 주시면서, 밤새도록 신음하는 자식 옆에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시면서 수건을 갈아주시면서 아파하시고, 오랜 질병에는 백방으로 좋다 하는 약을 수소문하면서 아파하시고, 불치병에는 당신 탓인 양 일평생을 가슴에 품고서 아파하십니다. 그렇게 먼저 보낸 자식이 있다면 땅이 아니라 가슴에 묻는다 하지요. 그 고통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가장 큰 고통의 근원이 관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 몸이 아픈 것은 견디든지 치료하든지 그냥 그대로 안고 감내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아픈 만큼만 고통을 느낍니다. 하지만 관계에서 오는 고통은 그 크기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아파 줄 수 없기에 더더욱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아프면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그 자식의 아픔을 당신이 대신 아파줄 수도 없으면서 더 큰 고통을 안고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식의 고통을 덜고자 합니다.


인간은 삶의 여정에서 사회적인 많은 관계들을 형성해 갑니다. 친구, 사제, 부부, 노사, 주종, 군신, 이웃, 동기, 동문, 종교등 등 수많은 선택과 만남을 통해서 이런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 발전해 가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관계들은 원한다면 관계를 끊을 수 있습니다. 무촌이라고 말하는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 돌아서면 남이 되는 관계의 단절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 자신이 선택할 수도 없고,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도 없는 관계가 있는데 그것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입니다. 아무리 법적으로 호적을 파고, 버리더라도 한번 맺어진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없어지거나 끊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관계를 끊을 수 없는 것이기에 자녀의 고통이 부모에게 가장 큰 아픔이 되는 것입니다.


끊어질 수 없는 관계의 고통이 가장 크다 하더라도 끊을 수 있는 관계의 고통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만큼은 절대적으로 비교할 수 없지만 그에 버금가는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이들도 허다합니다. 이러한 관계성 속에서 인간은 궁극적인 존재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늘 관계를 갈망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나라에 살면서 한 다리 건너 보면 모두가 다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웃의 누군가가 아프면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어주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그것이 인간의 도리입니다. 아무리 작은 고통이라도 당사자에겐 힘든 일이기에 그 고통에 대해서 대신할 수 없기에 함부로 왈가왈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고통의 문제로 앓고 있는데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의 고통이 결국 자신과 무관하지 않음을 기억하고 함께 감내하며 극복해 갈 수 있도록 손을 모아 주는 것이 마땅한 도리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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