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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Oct 02. 2017

예레미야 08:18-09:06 무너져 가는 동족을 향한

렘 08:18-09:06 

예레미야 08:18-09:06 무너져 가는 동족을 향한 눈물


동족을 향한 심판이 임박했음을 알고 예레미야는 탄식합니다. 백성의 무지한 모습과 여호와의 탄식도 이어지며 통곡합니다. 이 모든 원인은 이스라엘이 탐욕으로 인한 우상숭배와 거짓과 악행을 일삼으면서 여호와 알기를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18-22 죄악은 질병처럼 치료되지 않으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위로 받을 수 없는 근심으로 마음이 병들었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은 딸 내 백성의 심판(질병) 가운데서도 무지하여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고 헛된 우상에서 돌이키고 버리지 못하는 완악함이 결국 치료받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 때문입니다. 


‘딸 내 백성’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만 섬겨야 할 딸, 아름답고 우아하고 거룩해야 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함축해서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지금 이스라엘의 모습은 이 모습에서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사랑받는 자리가 아닌 심판의 자리, 하나님과 가까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 먼 땅에 있고, 여호와를 찾고 바라봐야 하는데 함께 있어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구원이 있기에 주께로 돌아갔으면 구원이 있었지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헛된 우상을 숭배하며 생긴 질병(죄악)을 치료하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하며 악화되어 가다가 결국 치료의 시기를 놓쳐 버리고서 탄식합니다. 


하나님 아닌 헛된 우상을 숭배하는 질병이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때로 아무런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게 죄는 한꺼번에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우리를 병들게하여 무너뜨립니다.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면서 이 백성이 조금씩이라도 돌이켜야 했건만 전할 수록 더 멀어지고 강퍅해지고 완악해 지며, 여호와로부터 멀어져 가는 이스라엘의 말로를 바라보는 그 마음이 함께 병들어 가게 됩니다.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지경을 넘어서버린 이스라엘을 바라보면서 여전히 무지한 백성, 여호와의 탄식 앞에서 예레미야는 놀라움 속에서 근심하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성도와 교회 그리고 이 민족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면서 우리가 함께 품어야 할 그런 마음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병들었다는 것에 대한 인식은 하지만 도무지 어떻게 치료할 지 모르고 표류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9:1-2 죄악은 함께 한 이들에게 치명적인 상처와 고통을 줍니다. 

예레미야는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해 주야로 울며 괴로워합니다. 여호와께서는 피할 수만 있다면 간음하고 반역한 무리가 된 내 백성을 떠나고 싶어 하십니다. 


예레미야의 마음과 여호와의 마음이 한가지입니다. 이 백성의 죄악으로 인해 괴로운 것입니다. 아무리 외치고 전파하고 경고해도 듣지 않는 완악함으로 괴롭고, 멸망으로 치닫는 그 모습의 말로를 바라보면서 괴롭고, 심판으로 인하여 결국 스스로 선택한 어리석은 행실로 망해가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괴로워 한 것입니다. 여호와를 떠나 헛된 우상을 섬기면서 여호와의 왕되심을 거역하고 탐욕의 노예가 되어서 풍요 제의에 물들어 음란한 행태로 감사와 찬양을 헛된 것에 돌리며 패역의 길을 가고 있는 이 백성을 보고 싶지 않지만 여전히 그들을 향한 긍휼을 포기할 수 없기에 여호와께서 고통스러워 하십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그토록 사랑과 은혜로 함께 한 이들에게 보은은 커녕 반역과 외면으로 악행함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완악하고 강퍅한 심령들을 만날 때마다,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는 공동체를 볼 때마다 이와 같은 상처와 고통이 옵니다. 나와 우리 공동체를 향해 주님께서 이런 아픔을 갖고 계신 죄악을 속히 끊어 버리고 간음과 반역이 아니라 정결한 백성으로, 순종하는 백성으로 서서 상처와 고통이 아니라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삶이길 원합니다. 



3-6절 죄악은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파괴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죄악을 고발합니다. 거짓, 진실하지 않음, 악행, 여호와를 알지 못함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여호와를 사랑하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약속의 땅에서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삶의 내용을 채워가는 보배로운 소유,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여야 했습니다. 세상의 약육강식의 폭력과 헛된 우상을 따라 살아가는 삶에서 분명 구별되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삶은 진리(말씀)를 가까이 하며 살아갈 때 온전해 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백성은 이미 이 진리의 말씀, 여호와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서 시류에 영합하여 세상의 가치관과 세계관과 방식을 따라 욕망의 포로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고 따르지 않는 죄악된 모습은 결국 공동체 내부에서부터 먼저 파괴되어 갑니다. 


이웃을 향하여 상처를 주고 분열케 하는 거짓의 혀를 놀립니다. 형제를 살리고 세우는 것이 아니라 비방과 속임으로 신뢰를 깨어버린 것입니다.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이웃을 속이면서 진실을 말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그렇게 소유를 불려 가는 속이는 기술까지 가르칩니다. 여호와의 뜻을 따라 행하지 않는 악으로 시작하여 다시 여호와께로 돌아오지도 향하지도 않고 더 멀리 여호와를 떠나는 악으로 행하는 일에 지칠정도입니다. 항상 거짓으로 도배되고 속이는 일에 익숙하다 보니 누구도 믿을 수 없습니다. 급기야 진리되신 여호와를 알지도 못할 뿐더러 알아가는 일도 싫어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알고 있는 알량한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교만해지고, 세상에 대하여서도 자신의 경험과 잠시 얻는 성공으로 자만하여져서 마치 여호와가 아니고서도 얼마든지 세상에 대하여 자신만만해 합니다. 이런 이들에게 여호와를 아는 일이나 여호와의 뜻을 아는 일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회는 아무도 신뢰할 수 없는 불신의 사회이며, 중상모략이 난무하고 거짓이 승리하는 불의의 사회이며, 폭력으로 서로를 착취하는 불법의 사회입니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동물적인 사회인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자신들의 거짓과 악행에 방해와 걸림이 될 뿐이고, 급기야 심판의 지연으로 현실은 악이 더 득세하는 것처럼 보여서 아예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않고 그 끝의 심판은 안중에도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이들의 악행이 이토록 뻔뻔한 이유는 결국 우리가 아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무지와 미천함과 얕은 신학도 한 몫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가 깨어져 가는 불신 세상에서 말씀을 맡은 자들은 신용의 사람이 되어가고 신뢰를 쌓아가는 사람이 되어가서 관계를 회복해 가는 삶이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직 진리의 말씀으로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쌓여 갈 때라야 그 원동력을 얻을 수 있음을 믿기에 날마다 주의 말씀 앞에 나아가기 원합니다. 



* 기도

우리의 죄악과 질병으로 눈물 흘리며

회개와 회복의 길로 돌아오길 간절히 기다리시는 하나님

주님의 그 마음과 눈물을 기억하여

헛된 우상을 숭배하는 길에서 돌이켜

다시금 정결하고 진실하며 

주의 통치와 인도와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백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안의 죄악의 질병들을 발견하고

속히 그 길에서 떠날 수 있게 하옵소서. 

거짓과 악이 난무하여 

신용사회를 표방하나 불신풍조가 가득한 세상에서

진실의 사람으로 신뢰를 주는 공동체로

거듭나게 하옵시며

이를 위해 진리의 말씀앞에 날마다 나아가기를

즐거이 감당하게 하옵소서. 

더욱 여호와를 알아가기를 힘쓰며

진실과 정의와 공의를 회복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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