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만한 물가
20130906 - 피리 부는 소리
독일의 하멜른에서 전해 내려온 이야기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제목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동화가 있다. 독일 하멜른에 쥐들이 난동을 피우자 마을 사람들은 쥐를 제거한 사람에게 상을 주겠다고 하자, 피리 부는 사나이가 자신의 피리로 쥐를 조종해서 모든 쥐를 사라지게 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이에 앙심을 품은 사나이는 마을의 아이들을 피리로 현혹해서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뒤늦게 후회한 마을 사람들이 사나이를 찾았지만, 사나이는 다시 보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오래전 주한 미대사 ‘그레그'라는 사람이 한국인에 대한 보고서에 "쥐 떼 근성 있음"이라고 했단다. 위의 동화 속 피리 소리를 듣고 물속에 계속 빠지는 쥐들 얘기를 비유한 것이어서 우리 국민들은 자존심이 상해 항의하고 시끄러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근자의 모습들은 그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누가 봐도 어처구니없는 간교한 시선 돌리기와 물타기에 앞뒤 분간을 못하고 흥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우리가 분노해야 할 선관위의 부정선거 의혹에서부터 국정원의 댓글 사건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사건인데 전정부의 NLL 대화록이나 뜬금없는 내란음모라는 듣보잡 같은 레퍼토리에 휘둘리고 있으니 말이다.
또 다른 동화 ‘양치기 소년'에 나오는 마을 사람들은 소년의 거짓 외침에 모두들 횃불을 들고 산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번번이 거짓이 들통나고 나서 정작 늑대가 나타났을 때는 더 이상 그 소년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교묘하고 어이없게도 우리는 양치기 소년 같은 정권의 피리 소리에 번번이 속았으면서도 여전히 그 소리에 쥐떼처럼 마녀사냥을 하거나 흥분하거나 치부해 버리는 우를 범하고 정작 진실은 외면하고 있다. 지금까지 권력의 위기 때마다 국정원이 조작해 써먹던 수많은 간첩 사건들의 결말이 대부분 흐지부지 증거 부족이나 무혐의로 결말 된 사실들은 거의 모르고 있다. 그러나 이미 당사자들은 정죄되었고 이를 악용한 자들은 썩은 미소로 목적 달성과 권력 유지의 축배를 들고 산다. 거기에 더해 그들의 적반하장과 안하무인을 넘은 기만과 왜곡과 술수에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성경에는 선지자 세례 요한이 부패한 종교 세력들을 향한 거침없는 외침을 외면한 세대들을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라고 표현한다. 정작 들어야 할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어리석음 빗댄 표현이다. 생채기 가득한 민의 가슴이 먹고살기 바쁘다고 춤출 여력도 없다 할 수 있으며,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무지에 눈앞의 영달과 이기에만 눈멀고 귀먹은 이도 있으리라. 허나 과연 그럴까?
지금 수많은 피리 소리가 어지럽게 들린다. 그 소리들 가운데서 진실의 소리는 묻히고 거짓된 선동의 소리는 유난히 크고 요란하며 그럴듯하게 치장되어 들린다. 모두가 몰려가는 그 소리를 따라 뜻 없이 달려가는 어리석음에서 깨어, 진실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분별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메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의 피리 소리에 현혹되지 말고, 수없이 속은 양치기 소년의 외침을 구분하고, 정작 우리가 춤추고 함께 울어야 할 그 피리 소리에 제대로 반응할 수 있는 깨어있는 민중이 여전히 있음을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