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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Oct 12. 2017

예레미야 13:12-19 진노의 잔 앞에서 스스로를 낮

렘 13:12-19 

예레미야 13:12-19 진노의 잔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라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심판이 임박함을 진노의 잔(포도주)이 가득 찬 속담을 가지고 전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조롱의 소리로 듣습니다. 하지만 심판은  총체적으로 확고하게 진행이 될 것인데, 그래도 다시 여호와의 경고를 듣는다면 소망이 있을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완악한 이스라엘이 심판을 자초할 것을 알고 예레미야는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 합니다.  


12-14절 당연한 시대적 상황을 옳게 분별하지 못하면 교만하면 결국 분열을 통해 멸망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든 항아리(가죽 부대)에 포도주로 가득 차리라 하시는데 사람들은 당연한 이야기라고 응대합니다. 이에 여호와께서는 이 땅 모든 이들 곧 다윗의 왕위에서부터 지도자들과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이 이 포도주로 잔뜩 취하게 될 것이며 결국 서로 싸우다가 상하게 되고 자멸하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항아리에 포도주가 가득 차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알고 있으면서 이스라엘은 자신들에게 임박한 심판에 대해서는 시대적 상황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항아리(이스라엘)에는 이제 진노의 포도주가 가득차게 되어서 이 땅 모든 주민들을 심지어 다윗의 언약 백성과 왕들일지라도 취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모두가 심판의 영향력으로 넘어지게 될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심지어 여호와의 진노 앞에서 서로 충돌하면서 상하게 되어, 부한 자이든 주민이든 모두 다 총체적으로 심판을 받게 되는데 여기까지 진행되는 상황에서 여호와께서는 더이상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아끼지 아니하며 자비를 베풀지 않고 멸하리라 하십니다. 


계절의 변화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기면서 민감하게 느끼지만 정작 우리의 영적인 상황과 상태의 심각성을 지도자와 구성원들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면 우리도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에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북의 바벨론과 남의 애굽을 향하여 서로 친바벨론, 친애굽파로 나뉘어서 주화, 척화로 내분되는 상황이 극렬하게 진행되어서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이렇게 심판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여호와께서는 더이상 긍휼을 베풀지 않고 사랑도 아니하고 아끼지도 않고 철저하게 멸할 것임을 천명합니다. 


지금도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심각한 죄악에 빠진 상황을 깨닫지 못하고 정신없이 시류에 휩쓸려 가다가는 모두가 공멸하는 것입니다. 민족 교회의 심각한 상황을 생각해 봅니다. 자정능력의 상실과 주님의 가르침과는 너무도 멀어져서 교만해 졌고, 시대의 요구와 상황들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발을 뻗고, 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해서 너무도 잔인하게 정죄를 하고 폭력을 행사하면서 이기적인 종교심을 발동하는 모습 속에서 분열되어지고 능력을 잃어버리고 흔들리는 교회의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의 뜻과 가르침에 대해 무지함은 결국 여호와의 진노의 잔을 피할 수 없습니다. 더우기 하나님이 자비에 대한 도전은 더이상 여호화의 긍휼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15-17절 임박한 심판 전이라도 겸손히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회개 한다면 심판을 면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귀를 기울여 교만하지 말라 전합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심판이 시작되기 전(어둠을 일으키시기 전, 너희 발이 어두운 산에 거치기 전,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여 침침한 어둠이 되게 하시기 전)에 여호와께 돌아와 영광을 돌리라고 전합니다. 만일 이렇게 듣지 않는다면 예레미야는 그들의 교만으로 울고, 사로잡힘으로 말미암아 눈물을 흘려 통곡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교만해진 데는 여호와를 알지 못함에서 기인합니다. 여호와를 알지 못함은 말씀을 듣지 않음이요, 말씀을 통해서 여호와를 알아가는 일에 게을렀던 것입니다. 여호와에 대한 무지가 우상을 숭배하게 되고, 여호와께서 공의와 정의를 행하지 않는 것을 분노하는지도 모르고 어둠의 일을 즐거워하고, 탐욕의 농예가 되어서 여호와의 영광을 헛된 것으로 바꾸고 어둠과 사망의 길로 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라도 여호와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서 여호와께서 돌아가면 여호와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교만으로 말미암아 예레미야는 눈물을 흘리며 목자되신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각기 제길로 가는 양떼들이 마침내 대적들에게 사로잡혀가게 될 것을 알고 통곡하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목자의 인도와 그 목소리 청종하는 것을 기뻐하며, 주야로 그 말씀을 묵상하며 겸손히 살아가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자들은 그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알고서 겸손해 집니다. 하지만 아직도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부질없는 것에 사로잡혀 종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18-19절 여호와의 진노 앞에 스스로를 겸손히 낮춘다면 그래도 다시 세워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제 왕과 왕후(여호야긴과 그의 어미 느후스다를 가리키는 것으로 봅니다)가 폐해졌다는 것을 알리고 스스로 낮출 것을 요구합니다. 이미 하나님의 심판은 남방쪽에서도 봉쇄되고 위쪽으로도 많은 이들이 잡혀가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전세가 기울어졌을 때 차라리 항복하는 것이 사는 길이라는 것을 언뜻 말하고 있습니다. 왕과 왕후의 폐위가 여호와의 주권 하에 진행됩니다. 남방9네겝)의 성읍들이 봉쇄되어서 열 자가 없습니다. 이는 누구도 이 심판을 열고 닫지 못하고 오직 여호와만 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유다가 포로로 잡혀가되 온전히 잡혀간다고 말합니다. 


스스로 낮추지 않으면 이 교만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의 진노의 잔 앞에서는 스스로 낮추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그 길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 기도

심판하시는 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아버지

시대를 옳게 분별하지 못한

우리의 어두운 눈과 영적 감각들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우리 안의 분열케 하는 어리석은 일들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수자들의 인권을 주장하는 부분에 있어서 지혜롭게 처신하고

여호와께서 바람직한 방향이 무엇이지 
어떻게 지도해 가야 할지를 알게하여 주옵소서.

심판중에도 긍휼을 잃지 않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속히 돌이키고 온전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교만은 주님의 진노가 있기 전에

늘 기도하며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날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 낮춰 겸손히 여호와와 함께 행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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