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만한 물가 - 221
20171210 - 관계의 회복
한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 위한 분주한 일상이 반복되는 달이다. 각종 결산을 위한 모임들이 직장과 여타의 단체나 동문회 그리고 가까운 친지들의 모임까지 다양하게 진행되다 보니 괜스레 맘까지 조급해진다. 이러저러한 모임들에서 때론 참관자로 그리고 회원으로 참석하기도 하고, 어떤 모임은 주최자로 그리고 책임자로 서 있어야 하는 자리들도 있다. 그렇게 다른 위치에 서서 역지사지하다 보니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보게 되고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들이 많아진다.
사람은 혼자여도 내면의 갈등이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서부터 자기 자신이 싫어하는 부분이 내재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에 몸서리치기도 하고, 뭔가를 더 성취하지 못한 아쉬움에 욕망을 주체할 수 없어 또 갈등하기도 한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무엇이 문제인지를 발견하고 자각하는 일은 쉽지 않다. 조금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들이 줄어들고 분주하게 살아가다 보면 자신은 없도 늘 끌려다니거나 쫓기듯 삶을 살아가게 되다 보니 자신의 삶에 대한 반추와 재고의 여지가 그만큼 줄어줄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잃게 되는 경우도 있고, 아예 이런 시간들을 엄두도 못 내고 그저 자신이 하는 것이 옳고 그럼, 바르고 굽음,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 일상의 반복은 결국 편견과 고집으로 이어져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거나 아예 자기 주관 없이 시류에 휩쓸려 이리저리 관계가 흐트러져도 수습할 엄두도 못 내고 살아가는 경우들이 많다.
이렇듯 자기 내면의 갈등은 결국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마치 자기 안의 싸움처럼 다양한 생각들이 이제는 또 다른 인격을 가진 사람들로 변해서 모임이나 단체 등에 함께 공존하며 갈등하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도 그리고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것도 자연스레 깨닫는 것과 동시에 사람들의 면면이 어쩜 그렇게 얼굴과 지문이 다르듯 그렇게 천차만별인지 알게 된다. 그만큼 공동체의 공존과 공영을 꾀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이들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고, 이 갈등을 얼마나 잘 중재하고 해결하며 회복하고 봉합해 가느냐가 공동체의 운명과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한다. 같은 말이어도 사람에 따라서 분위기나 느낌에 따라서 때와 장소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나와 네가 다르다는 말이기도 하다. 회의를 하면서 한참 난상토론이 진행되고 있는데 결국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논쟁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기껏 오랜 시간 토론하고 마침내 의결해 놓고 보면 때론 너무 단순하고, 허망하고, 부질없는 것에 시간을 허비한 것 같은 일들도 있다. 어떤 일들은 서로의 생각들을 다양하게 들어봐서 더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좋지만, 달리 보면 같은 목적과 목표를 바라보고 성취하는데 이렇게 다양한 입장과 생각과 방법이 있다는 데서 합일을 이루는 일이 불가능한 것 같은 일들도 있다. 여기서 누군가가 무리한 힘과 욕심을 부리게 되면 결국 그 공동체는 분열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관계의 회복은 타인을 바꾸는데서부터 시작되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부부의 관계에서부터 보더라도 상대방을 고치는 것으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결국 갈등의 골을 더 깊게 만들 뿐이다. 설령 바꾼다 하더라도 그 과정 속에서 생기는 상처는 이후의 관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도록 잠재되어 있다. 그런데 자꾸만 누군가를 바꾸려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고집을 부리는 이들이 있다. 필경 그 변화는 자신이 기준이 되어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자신을 중심으로 자신이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급기야 자신의 욕망대로 모든 것이 재편되어야만 공동체가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독재다.
결국 관계의 회복은 자기 자신을 아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사람들의 면면이 다른 것만큼 자기 안에서도 갈등하는 요소들이 혼재한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앎이나 주관의 한계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이 보고 듣는 것 이상으로 세상에는 더 다양한 것들이 존재할 수 있고 또 존재한다는 것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이고 그 겸손이 성숙한 이가 지혜로운 자이며 더 많은 이들을 품고 함께 할 수 있는 넉넉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반면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교만이고, 그 교만은 결국 자기 욕심의 산물로서 이것이 쌓이면 누구도 품을 수 없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외톨이가 된다. 그에게 관계의 회복은 무의미하다.
정치, 경제, 문화, 인종, 종교, 성별, 성격, 환경 등등 우리는 수없이 많은 다름들과 공존하며 살아간다. 아무리 끼리끼리 모여도 시간이 지나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 갈등하게 된다. 다름을 틀림으로 생각하지 말고 다양함을 존중하면서 이제 이 한 해동안 어그러진 관계들을 다시 돌아보며 정리하고, 새해에는 더 성숙해져서 더 넉넉해 지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