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9:01-12
마태복음 19:01-12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 가운데서도 큰 무리가 따르자 이들을 치유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이혼과 관련하여 예수님을 시험하나 하나님의 뜻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버릴 수 없음을 강조하고 때로 선천적, 인위적, 자발적인 독신도 있음을 인정합니다.
# 19-20장에서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가운데 있었던 사건들을 기록합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공생애 시작전 광야에서 시험받으신 사건과 매우 유사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공생애를 처음 시작하시는 때처럼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여정에 또다시 시험이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 1-2절 예수님은 십자가 없는 영광을 취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이제 예수님은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하지만 이 여정을 따라 온 큰 무리들 속에 있는 그들의 병을 고치십니다.
*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를 치유하고 회복하셔서 천국 백성으로 새롭게 창조하시기 위한 대속적 사역들을 감당하기 위함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은 천국의 도래에 대한 가르침과 선포와 치유(축귀)사역들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일관되게 진행해 오셨습니다. 이러한 여정 속에서 이제 큰 무리들이 따릅니다. 이들의 사정이 딱하지만 이 무리는 정작 예수님이 가셔야 할 예루살렘 행을 발목잡고 유혹될 수 있는 요인이었습니다. 이미 오병이어의 기적등에서도 동일하게 예수님의 기적을 경험한 이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없는 영광을 얻는 유혹이 컸습니다. 그럴 때마다 예수님은 기도하시면서 자신을 쳐 복종시키며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때를 따라서 처신하기 위해서 이러한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래서 몰려온 큰 무리들 앞에서 치유의 은사를 행하시되 그것을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마치 돌이 떡덩이가 되게 해 보라는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시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
지금 우리에게도 맡겨 준 사명과 가야 할 십자가 여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들을 감당해 가는데 많은 시험과 미혹이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없는 영광을 취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은사들을 스스로를 위해서 사용하라고 유혹합니다. 하지만 은사는 주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 앞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충성일 뿐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가신 길을 따르는 제자의 길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가 그 길을 따를 수 있도록 묵묵히 긍휼을 베푸시되 사명의 길을 묵묵히 가고 계시며 우리더러 그 길을 따라오라 하시는 것입니다.
# 3-9절 예수님은 왜곡된 율법의 뜻을 바르게 재해석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이유가 있으면 아내를 버려도 되느냐고 모세의 이혼증서 이야기를 꺼냅니다. 이에 예수님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남녀로 지으시고 짝지어 한 몸이 된다면 그것을 사람이 나눠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이혼 증서를 허용하는 의도는 사람들의 완악함 때문이지 본래의 의도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가는 것은 간음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
갑자기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이혼에 관한 얘기를 꺼내 시험하는 이유는 여러가지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문맥적으로 보면 이전에 용서에 대한 말씀이 있었고 작은 자를 잃지 않으시려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과 사랑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신랑되신 주님의 거룩한 신부 되어야 할 작은 이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공교롭게도 이혼의 사유를 찾으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고 영적 간음을 하는 일을 어떻게든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며 이를 통해 예수님을 트집잡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로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예수님에게서 어떻게든 그가 불법을 행하는 자라는 굴레를 씌우고 고발할 이유와 트집을 잡기 위한 의도적 포석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을 무시한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더 나아가서 당대 헤롯이 본처를 버리고 형제 빌립의 아내를 취한 문제를 계기로 요한이 처형되었는데 다시금 이와 동일한 말을 예수님이 한다면 이를 빌미로 예수님을 제거하고자 하는 곤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사람을 지으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 한몸이 되는 것도 하나님이시고, 그렇게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이혼하고 또 독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모세가 이혼에 대해서 허용하는 것 같은 제스처를 취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완악함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본심은 아닙니다.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가는 것이 바로 간음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마귀의 시험에 예수님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고, 말씀을 왜곡하는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이제도 율법의 진위를 왜곡하고, 그것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 의와 왜곡된 해석과 치우친 역사로 인하여 심각하고 교묘하게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여 자기 의에 충만한 그러나 그것 마저도 말 그대로 자기 의일뿐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한 모습이고 급기야 하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오히려 시험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왜곡된 모세의 율법의 참 뜻을 바르게 제시하고, 음행한 연고 없이 행하는 간음에 대한 기준을 재해석하여 제시하고 있습니다.
# 10-12절 예수님은 선천적, 인위적, 자발적 독신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결혼과 이혼에 관한 모세 율법의 재해석을 들은 제자들은 그렇다면 아예 장가를 가지 않는 것이 좋은거 아닌가 하면서 의문을 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선천적이고 인위적인 고자 외에 자발적인 고자도 있으니 각각 주어진 대로 살되 특별히 자발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받을 만한 자가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또 결혼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축복일 진대 이혼할 수 없다 하여 차라리 장가 들지 않는 것이 더 좋겠다고 말하는 제자들의 태도는 상당히 불손하면서 또 예수님을 향하여 은근한 이의를 제기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결혼과 아내에 대한 생각들은 그저 자신들의 욕망의 출구와 소모적인 소유 외에는 더 이상 자신의 분신으로서 그리고 인격적인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인식은 아직은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입니다.
장가 들지 않는 이들이 세 부류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예 나면서 부터 그런 이들이 있고, 살다가 타인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결혼할 수 없는 이들이 있으며, 스스로 결혼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세 가지 경우 모두 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을 수용한다면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듯을 받을 만한 이들이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전통과 유전과 세상의 풍토를 따른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할 것입니다.
*
예수님의 광야 세 번째 시험은 마귀가 자신에게 경배하라는 유혹에 예수님은 오직 주 너의 하나님만 경배해야 한다고 물리칩니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따르고 지키고 순종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만 있습니다. 그 외에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하나님 아닌 것을 경배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주님의 거룩한 신부된 교회로 부르시고 신랑되시는 주님을 따라 주 우리 하나님만을 경배하며 살아가며 그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여정이어야 할 진대 이 외에 우리를 미혹하고 다른 것들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은 불순종의 길입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을 바르게 듣고 분별하고 주님만을 경배하는 그래서 주님이 지으시고 세우시고 허락하시는대로 순종하면서 이 사명의 길을 묵묵히 가는 것이 우리 주님을 온전히 따르는 길입니다.
# 기도
우리를 지으시고 짝지어 주신 하나님 아버지
허락하신 가정을 인하여 감사드리며
천국의 거룩한 무리 가운데 속하게 하여 주심을
또한 감사하오며
우리의 완악함에도 불구하고
오래 참으심으로 살아갈 길을 열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따름에 있어 십자가를 부인하고
영광만을 취하려는 유혹을 잘 물리치게 하옵소서.
말씀을 왜곡하고 욕망에 이끌려서
주의 법을 어기는 우를 범하지 않게 하옵소서.
선천적으로든 인위적으로든 주어진 길을 따라 살되
자발적으로 주님이 허락하신 뜻을 잘 분별하여
즐거이 그리고 온전히 순종하며 살기 원합니다.
여전히 우리를 유혹하는 시험 속에서
주님이 이기시고 가신 것처럼
자기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여정을
한걸음씩 분별하고 순종하고 이기며
주님 따르게 하옵소서.
주님이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며
살아내고 살려주신 것을 기억하면서
십자가 여정에 말씀의 능력으로 무장케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