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23-32
마태복음 21:23-32 누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가? 1 - 두 아들
성전과 무화과나무에 대한 심판에 이어 계속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을 향해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권위에 대해 도전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 대한 권위의 출처를 질문하므로 지도자들이 답변할 수 없도록 합니다. 그리고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해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뒤이어 포도원 집주인의 비유(21:33-46절)와 왕의 혼인 잔치 비유(22:1-14)까지 세가지 비유로 지도자들의 도전에 대응하십니다.
# 23-27절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메시아이십니다.
성전에서 예수님이 가르시칠 때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예수님의 권위의 근거와 출처에 대해 도전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권위가 하늘로부터인지 사람으로부터인지 되묻는 질문 통해서 이들을 갈등하게 합니다. 결국 예수님의 질문에 딜레마에 빠진 이들은 답변하지 못하고 예수님도 답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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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예수님께서 성전에 대한 심판을 예고하셨지만 여전히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온 무리들을 향하여 하나님나라의 일을 가르치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앞서 성전 심판에 대한 퍼포먼스가 있은 후이기에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계속 예수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예의주시하고 있는터라 어떻게든 듣보잡같은 예수님에게 수치를 안겨 그 행보를 막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들이 제기한 질문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무슨 권위로 그러는 것인지, 누가 그 권위를 준 것인지 묻는 것입니다. 권위는 주어진 권외가 있고 획득된 권위가 있습니다. 이들은 대제사장과 장로로서 주어진 권위가 있었지만 이것이 정상적인 경로로 주어진 경우들이 드물고 도둑이 제발 저리는 격으로 자신들의 권위에 대한 치부를 오히려 역으로 예수님을 향하여 질문하므로 별반 다를바 없을 것으로, 그 나물에 그 밥이라 하면서 수치를 안겨주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그들의 주어진 권위가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기에 이들에게는 획득된 권위가 없었습니다. 정당성이 없기 때문에 이들의 지도자로서의 행보는 이미 강도의 수굴인 성전에 종사하는 이들과 한통속이기에 백성들은 이들의 주어진 권위에는 복종하지만 그러나 획득된 권이가 없기에 내면적으로는 부정적일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어진 권위도 그리고 그간의 가르침과 선포와 치유의 사역을 진행해 오시면서 신실하시고 능력을 행하신 행보를 보였기에 이미 앞서 예루살렘 입성에서도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환영한 것에서 이미 획득된 권위로 충만했음을 보여줍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그런 예수님을 향하여 함부로 할 수 없이 이렇게 견제하고 질문하는 수준으로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세례 요한의 권위가 하늘로서인지 사람으로서인지 묻습니다. 당대 이미 많은 이들이 그를 따랐고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는 요한에게 많은 이들이 찾아와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미 세례 요한은 선지자로서 그리고 하늘로부터의 주어진 권위와 획득된 권위가 충만했다는 것을 많은 백성들이 그에게 나아가고 세례를 받으므로 부인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종교지도자들은 세례 요한의 권위에 대해서 말하지 못합니다. 하늘로부터 온 권위라면 왜 요한도 그리고 요한이 오실 그 이로 증거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느냐라고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 들통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사람으로부터 즉 자신들처럼 부정한 방식으로 되었다고 말한다면 이미 요한을 선지자로 알고 따랐던 많은 이들의 저항에 부딪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잃을 우려로 결국 하늘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주어진 권위인지 아닌지 말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이들의 말문을 닫게하고 자신의 권위의 출처를 밝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이게도 예수님의 권위가 하늘로서부터 온 권위이며, 이미 공생애 사역 기간동안 신실하게 행하시고 긍휼과 사랑으로 행하신 일을 통해서 예수님의 권위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것이며, 많은 이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고 치유하고 회복시키고 기적을 행하시면서 메시아이심을 드러낸 것입니다. 다만 종교지도자들만 알고도 인정하지 못하고, 보고도 믿지 못하고, 듣고도 모른 채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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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으셨습니다(마 28:18).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사람으로부터 온갖 뇌물과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하긴 했지만 이는 단순히 사람들에게 배우고 사고 얻었을 뿐이지 하늘로부터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의 강퍅한 마음은 결국 보고도 듣고도 경험하고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기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메시아이심을 믿습니다.
아울러 성도라는 이름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다양한 직분에 주어진 권위 외에 그에 걸맞는 획득된 권위를 얻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이후로 우리에게 주어진 이 권세를 참으로 주님의 뜻을 따라 행함으로 말미암아 합당한 권위자, 친밀한 권위자, 신실한 권위자로 살고 또 사역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 28-32절 천국은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갑니다.
이제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서 지도자들의 도전에 대해 응전하십니다. 어떤 사람에게 있는 두 아들이 맏아들은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라는데 가겠다고 해놓고 안가고, 둘째 아들은 싫다고 하였다가 후에 뉘우치고 갔는데 둘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한 것인지 묻자 바로 둘째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창녀들은 둘째 아들과 같고 결국 요한이 가르친 의의 도 곧 의로운 길, 또는 정당한 길로 행하며 가르친 것을 믿지 않고 보고도 끝내 뉘우치지 않았기에 첫째아들과 같이 아버지의 뜻을 거역한 이들이기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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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산상수훈의 말미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7:21)고 경고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두 아들 중에서 맏아들은 말로는 순종한다 했지만 정작 뉘우치지도 믿지도 않았고 결국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도 않았습니다.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불순종한 맏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 둘째 아들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있게 대답했지만 예수님은 지금 그들이 아니라 오히려 세리들과 창녀들이 둘째 아들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수치를 안기려고 도전했다가 오히려 세리들과 창녀들보다 못한 이들로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자들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세리들과 창녀들이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은 우선순위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이들은 결국 하나님나라에 합당하지 않고 들어가지도 못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고 돌이켜 세례 요한이 전한 의의 도 곧 예수님이 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을 따라 하나님을 믿으며 아버지의 선하시고 온전 하시고 기뻐하신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말로만 주를 부르고, 주어진 권위에 안주하면서, 외식적인 부분에만 치우치고 정작 하늘 아버지의 뜻은 무관시하고 탐욕에 이끌려 살아가는 이들에게 하나님나라는 닫혀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겸손히 하나님을 바라고 그 뜻에 순종하려는 이들에게 천국 문은 열려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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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빠서, 어려워서, 몰라서, 힘들어서, 관심이 없어서, 재미없어서, 일이 많아서, 시간이 없어서, 정신이 없어서, 여유가 없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일, 그리고 주야로 즐거이 주의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살아가는 일에,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천국백성의 삶을 살아가는 일에,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들을 이어가는 일에, 자신과 가정을 주님이 꿈꾸시는 사랑의 공동체로 세워가는 일에 우리가 대는 핑계들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할 이유보다 지키지 못할 이유가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은 우선순위에 한참 밀려 있고, 가끔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것 해야 할 것 다 한 후에 시간이 조금 남으면 그제서야 하는 시늉만 하는 정도를 가지고는 주님을 주님이라 믿는것도 천국을 살아가는 것이라고도, 신자라고도 하기 어렵습니다.
정말 주님이 내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주님으로 믿는다면 우리 삶의 최우선순위는 주님의 뜻을 따르고 행하는 일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직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나는 아직 주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있지 않는 것이며, 천국백성의 자부심도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됨의 특권도, 우리에게 주어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도 잘 알지도 못하고 누리지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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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매여 계세요?>
내가 원하는 것에 매여 있는 것을
집착이라 하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에 매여 있는 것을
사랑이라 하고
하나님께 매여있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어떤 것에도 매여 있지 않은 것을
죽음이라고 합니다
무엇에 매여 계세요?
그것에 따라 인생의 수준이 결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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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인생>
혹시 삶이 너무 이율 배반적이지 않은지요?
꿈이 있다고 하면서 시도조차 않고
목표가 있다고 하면서 계획도 없고
사랑한다고 하면서 관심도 없고
믿음이 있다고하면서 행함이 없고
예배드린다고 하면서 구경하고 있고
봉사한다고 하면서 대가를 기대하고
섬긴다고 하면서 입만 열만 불평불만이고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이익에만 관심이 있는것은 아닌지요.
하지만 그중에 가장 한심한 것은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인생이 아닐까요?
탁영철님의 <기다림은 희망입니다> 중에서
# 기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께로부터 이 권세를 받으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 메시아 되심을 믿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과 가르침과 사역도
아버지의 뜻을 따라 행하시며
우리로 주를 믿고 따르며
거룩한 천국백성으로 살게 하여 주심을 믿습니다.
이제도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재편하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던 주님처럼
우리도 삶의 우선순위에 주님 뜻 순종하는 것을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런 믿음의 사람이길 원합니다.
말로만 주를 부르고 믿는자가 아니라
순종과 행함으로 좋은 열매 맺는
의의 도를 따라 행하는 자이길 원합니다.
주어진 권위에 안주하지 않고
신실한 순종과 삶으로 획득된 권위로
충만한 종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