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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Apr 15. 2019

마태복음 26:57-75 십자가와 부활의 길 4 : 시

마태복음 26:57-75 

마태복음 26:57-75 십자가와 부활의 길 4 : 시인(是認)과 부인(否認)


가야바의 법정에서 산헤드린 공회가 불법적으로 보여 예수님을 죽일 거짓 증거를 얻기 위해 심문하다 성전모독과 신성모독의 죄를 찾아내자 예수님을 모욕합니다. 베드로는 멀직이 따라 앉았다가 여종과 사람들 앞에서 맹세하고 저주하며 예수님의 제자됨을 부인합니다. 


# 57, 59-68절 예수님은 참 성전이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가야바의 법정에는 산헤드린 공회의회원들이 모여서 예수를 죽일 거짓 증거들을 찾으려고 합니다. 증인이 많으나 증거를 얻지 못하다가 한 사람이 예수님께서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고 한 말을 증언합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침묵하시자 이번에는 대제사장이 직접 하늘에 계신 하나님게 맹세하면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묻는 질문에 예수님은 다시금 ‘네가 말하였느니라’고 응답합니다. 이어서 승천과 왕위 등극에 대한 말씀을 하시자 대제사장은 옷을 찢으며 신성모독의 죄라하고 사람들에게 사형에 해당된다는 동의를 얻어냅니다. 이에 예수님을 모욕하고 조롱하면서 선지자 노릇을 하라고 합니다. 

*

누구보다 법을 잘 알고 지켜야 할 이들이 알면서도 불법한 모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진행되는 심문과 모든 법의 집행이 위법하다는 것과 결국 그들의 정죄한 예수님의 죄목 또한 불법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밤에 재판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사형 집행에 관한 권한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거짓 증거들을 찾기 위해 집요하게 예수님을 심문하게 됩니다. 

이런 와중에 두 사람이 한 성전을 헐고 세운다는 증언은 예수님께서 비슷한 말을 하긴 했지만 그것이 일차적으로 당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고이고 기능을 다한 성전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긴 하지만 이러한 관계들을 알거나 믿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것은 결국 성전을 모독하는 죄라고 단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에게 설명과 해명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강퍅한 자들임을 간파하시고 침묵하십니다. 이는 한편으로 예수님은 이러한 불법한 일들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갈 하나님의 뜻에 더 집중하시는 것입니다. 

이에 용기를 얻은 대제사장이 이번에는 직접 심문하면서 묻습니다. 그런데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면서 예수님에게 심문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으로서의 권위가 실추되는 모습입니다. 신뢰를 주고 받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맹세가 필요없습니다. 앞서 예수님은 도무지 맹세가 필요없는 투명하고 신뢰를 주는 삶을 살라 하셨는데 여기 대제사장은 지금 모든 면에서 이렇게 맹세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길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그가 신뢰할 수 없는 실추된 권위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의 심문 내용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묻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네가 말하였도다’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생각하는 정치적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곧바로 자신을 ‘인자’라고 고치고, 결국 가까운 시일 내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승천과 회복)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왕위 등극을 상징하는 용어로서 ‘온다’고 번역된 단어의 의미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나아간다는 의미입니다_참조(참조 10:23; 16:27-28; 24:30)을 너희가 볼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이 선언에서 의미하는 사건은 예수님의 죽음, 부활, 승귀, 그리고 성전 파괴에 의한 통치권 및 심판적 권위 행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참조. 28:18).

대제사장은 결국 이 말을 확인하고서 자기 옷을 찢으며 신성모독이라도 정죄합니다. 대제사장의 의복을 찢는 행위가 더욱 신성모독의 죄이니 사형에 해당된다고 동의를 얻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예수님께 침 뱉고,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때리면서 조롱하고 선지자 노릇을 해보라고 합니다. 이는 일부러 모욕을 주고서 누가 했는지 알아 맞춰 보라는 식으로 조롱하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

이러한 일련의 심문 과정을 통해서 지금 산헤드린 공회가 율법과 성전,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바르게 알고 거룩하게 관리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는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불법을 행하고, 성전을 만민이 기도할 수 없는 집으로 만들고, 결국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지키지 않는 신성모독의 지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이러한 잘못을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어떠한 죄를 범하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된 신념과 전통위에 오래도록 고착되어 버리면 우리 자신이 알고 있는 말씀과 신앙에 대한 오류들을 발견하고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말씀앞에 겸손히 나아가고 우리 자신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도들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참 성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시인(是認)하며 주님이 가신 그 길을 온전히 따를 수 있을 것입니다. 


# 58절, 69-75절 예수님과의 관계 거리가 우리 신앙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가면서 가야바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기 위해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던 베드로를 한 여종이 보고서 베드로가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다 말하자 베드로가 부인합니다. 앞 문까지 나간 

*

베드로와 주님의 거리는 멀찍이 앉아 있었습니다(58절). 이렇게 바깥 뜰에 앉아 있었을 때 한 여종이 베드로를 알아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단순하게 부인합니다(70절). 이번에는 앞문까지 나아가는데 다른 여종이 보고 또 말합니다. 이번에는 맹세하며 부인합니다(72절). 세 번째로는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이 베드로를 보고 같은 도당이고 베드로의 말소리가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부인합니다(74절). 

주는 그리스도시라고 고백하고, 모두가 주를 버릴지라도 자신은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했던 사람이 베드로입니다(26:33). 또 예수님께서 오늘 밤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예고하시자 베드로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하고 모든 제자들도 그와 같이 말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예수님을 멀찍이 따르면서 그를 부인하고 결국엔 저주하고 맹세하면서까지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그제서야 베드로는 닭 울음 소리를 들은 후에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하게 되어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며 회개합니다. 

*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로도 땅으로도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 했습니다. 그만큼 신뢰를 주고 받는 삶을 살라신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호언장담하던 베드로도 결국 어려움과 위기 사운데서 나름대로 한다고 했으나 결국에는 결정적이고 심각한 결정을 합니다. 그것은 자기 부인을 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말입니다. 앞서 겟세마네에서도 세 번 기도하실 때에 함께 하지 못했던 기도의 시간이, 결국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을 부인하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되새기고 묵상하는 일만이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여정을 올곧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말씀 앞에 설 때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이 자복하고 회개하는 역사가 있길 기대합니다. 


# 기도

아들을 통해 대속 사역을 신실하게 진행해 주신 하나님

오늘 주님을 멀찍이 따르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지속적으로 주님을 따르고 나아갈 삶의 지혜도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께서 참 성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심을 믿고

거룩한 성전으로 살라신 뜻을 따르고

우리 주님의 그리스도 되심도 생각하면서

불법한 일을 하면서 합법을 가장하고

성전을 모독하면서 거룩한 척 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다 하면서 순종을 게을리 하고

도무지 맹세하지 않으리라 하면서도 불순종했음을 고백합니다. 

늦게라도 우리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부디 우리의 잘못된 죄악들이 있거든

깨닫게 하시고 돌이킬 수 있는 자이기 원합니다. 

주님과의 관계의 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척도인 줄 알고

늘 주와 동행하며 따르게 하옵소서.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처럼 당신의 일을 시인하며 순종하는 자세를

늘 갖추고 이 고난의 시간을 

잘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마태복음 26:57-75 십자가와 부활의 길 4 : 시인(是認)과 부인(否認)

가야바의 법정에서 산헤드린 공회가 불법적으로 보여 예수님을 죽일 거짓 증거를 얻기 위해 심문하다 성전모독과 신성모독의 죄를 찾아내자 예수님을 모욕합니다. 베드로는 멀직이 따라 앉았다가 여종과 사람들 앞에서 맹세하고 저주하며 예수님의 제자됨을 부인합니다. 

# 57, 59-68절 예수님은 참 성전이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가야바의 법정에는 산헤드린 공회의회원들이 모여서 예수를 죽일 거짓 증거들을 찾으려고 합니다. 증인이 많으나 증거를 얻지 못하다가 한 사람이 예수님께서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고 한 말을 증언합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침묵하시자 이번에는 대제사장이 직접 하늘에 계신 하나님게 맹세하면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묻는 질문에 예수님은 다시금 ‘네가 말하였느니라’고 응답합니다. 이어서 승천과 왕위 등극에 대한 말씀을 하시자 대제사장은 옷을 찢으며 신성모독의 죄라하고 사람들에게 사형에 해당된다는 동의를 얻어냅니다. 이에 예수님을 모욕하고 조롱하면서 선지자 노릇을 하라고 합니다. 

*

누구보다 법을 잘 알고 지켜야 할 이들이 알면서도 불법한 모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진행되는 심문과 모든 법의 집행이 위법하다는 것과 결국 그들의 정죄한 예수님의 죄목 또한 불법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밤에 재판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사형 집행에 관한 권한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거짓 증거들을 찾기 위해 집요하게 예수님을 심문하게 됩니다. 

이런 와중에 두 사람이 한 성전을 헐고 세운다는 증언은 예수님께서 비슷한 말을 하긴 했지만 그것이 일차적으로 당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고이고 기능을 다한 성전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긴 하지만 이러한 관계들을 알거나 믿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것은 결국 성전을 모독하는 죄라고 단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에게 설명과 해명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강퍅한 자들임을 간파하시고 침묵하십니다. 이는 한편으로 예수님은 이러한 불법한 일들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갈 하나님의 뜻에 더 집중하시는 것입니다. 

이에 용기를 얻은 대제사장이 이번에는 직접 심문하면서 묻습니다. 그런데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면서 예수님에게 심문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으로서의 권위가 실추되는 모습입니다. 신뢰를 주고 받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맹세가 필요없습니다. 앞서 예수님은 도무지 맹세가 필요없는 투명하고 신뢰를 주는 삶을 살라 하셨는데 여기 대제사장은 지금 모든 면에서 이렇게 맹세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길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그가 신뢰할 수 없는 실추된 권위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의 심문 내용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묻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네가 말하였도다’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생각하는 정치적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곧바로 자신을 ‘인자’라고 고치고, 결국 가까운 시일 내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승천과 회복)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왕위 등극을 상징하는 용어로서 ‘온다’고 번역된 단어의 의미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나아간다는 의미입니다_참조(참조 10:23; 16:27-28; 24:30)을 너희가 볼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이 선언에서 의미하는 사건은 예수님의 죽음, 부활, 승귀, 그리고 성전 파괴에 의한 통치권 및 심판적 권위 행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참조. 28:18).

대제사장은 결국 이 말을 확인하고서 자기 옷을 찢으며 신성모독이라도 정죄합니다. 대제사장의 의복을 찢는 행위가 더욱 신성모독의 죄이니 사형에 해당된다고 동의를 얻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예수님께 침 뱉고,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때리면서 조롱하고 선지자 노릇을 해보라고 합니다. 이는 일부러 모욕을 주고서 누가 했는지 알아 맞춰 보라는 식으로 조롱하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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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일련의 심문 과정을 통해서 지금 산헤드린 공회가 율법과 성전,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바르게 알고 거룩하게 관리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는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불법을 행하고, 성전을 만민이 기도할 수 없는 집으로 만들고, 결국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지키지 않는 신성모독의 지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이러한 잘못을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어떠한 죄를 범하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된 신념과 전통위에 오래도록 고착되어 버리면 우리 자신이 알고 있는 말씀과 신앙에 대한 오류들을 발견하고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말씀앞에 겸손히 나아가고 우리 자신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도들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참 성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시인(是認)하며 주님이 가신 그 길을 온전히 따를 수 있을 것입니다. 

# 58절, 69-75절 예수님과의 관계 거리가 우리 신앙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가면서 가야바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기 위해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던 베드로를 한 여종이 보고서 베드로가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다 말하자 베드로가 부인합니다. 앞 문까지 나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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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와 주님의 거리는 멀찍이 앉아 있었습니다(58절). 이렇게 바깥 뜰에 앉아 있었을 때 한 여종이 베드로를 알아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단순하게 부인합니다(70절). 이번에는 앞문까지 나아가는데 다른 여종이 보고 또 말합니다. 이번에는 맹세하며 부인합니다(72절). 세 번째로는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이 베드로를 보고 같은 도당이고 베드로의 말소리가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부인합니다(74절). 

주는 그리스도시라고 고백하고, 모두가 주를 버릴지라도 자신은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했던 사람이 베드로입니다(26:33). 또 예수님께서 오늘 밤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예고하시자 베드로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하고 모든 제자들도 그와 같이 말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예수님을 멀찍이 따르면서 그를 부인하고 결국엔 저주하고 맹세하면서까지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그제서야 베드로는 닭 울음 소리를 들은 후에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하게 되어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며 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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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로도 땅으로도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 했습니다. 그만큼 신뢰를 주고 받는 삶을 살라신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호언장담하던 베드로도 결국 어려움과 위기 사운데서 나름대로 한다고 했으나 결국에는 결정적이고 심각한 결정을 합니다. 그것은 자기 부인을 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말입니다. 앞서 겟세마네에서도 세 번 기도하실 때에 함께 하지 못했던 기도의 시간이, 결국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을 부인하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되새기고 묵상하는 일만이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여정을 올곧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말씀 앞에 설 때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이 자복하고 회개하는 역사가 있길 기대합니다. 

# 기도

아들을 통해 대속 사역을 신실하게 진행해 주신 하나님

오늘 주님을 멀찍이 따르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지속적으로 주님을 따르고 나아갈 삶의 지혜도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께서 참 성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심을 믿고

거룩한 성전으로 살라신 뜻을 따르고

우리 주님의 그리스도 되심도 생각하면서

불법한 일을 하면서 합법을 가장하고

성전을 모독하면서 거룩한 척 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다 하면서 순종을 게을리 하고

도무지 맹세하지 않으리라 하면서도 불순종했음을 고백합니다. 

늦게라도 우리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부디 우리의 잘못된 죄악들이 있거든

깨닫게 하시고 돌이킬 수 있는 자이기 원합니다. 

주님과의 관계의 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척도인 줄 알고

늘 주와 동행하며 따르게 하옵소서.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처럼 당신의 일을 시인하며 순종하는 자세를

늘 갖추고 이 고난의 시간을 

잘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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