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05:12-28
데살로니가전서 05:12-28 종말을 살아가는 교회
종말을 살아가는 교회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삶에 대한 구체적 권면들로 서신을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영적 지도자들에 대한 자세, 이웃들을 향한 태도와 내면적인 자세 그리고 간구할 제목들을 열거하고 축복으로 마무리 합니다.
# 종말을 살아가는 교회
예수님께서 오시 전 유대인들에게 종말은 구원과 심판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한 날로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러한 유대인들의 생각을 교정하시고 종말의 시작 곧 하나님나라의 도래와 마침내 이루실 완성된 하나님나라와 재림에 대한 약속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를 구약성경에서는 출애굽과 가나안 사이의 광야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된 이스라엘을 통해 보여주셨고, 출바벨론한 이스라엘이 메시야의 도래를 기다리면서 살아가는 포로귀환 세대를 통해서도 보여주셨으며, 이제 예수님을 통해서는 직접적으로 이미와 아직 사이의 광야를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광야의 시험에서 압축적으로 제시하고, 공생애 기간 동안에 몸소 그 길을 먼저 가시면서 보여주시고 또한 여러가지 삶을 통해서 직접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가르침과 대속 사건을 통해 택함 받고 구원받아 세워진 새이스라엘(새 사람, 새 피조물, 새 백성)된 교회 역시 이미와 아직 사이 곧 종말을 살아가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무엇인지를 신약의 많은 책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결국 신구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선하시고 기뻐하시며 온전하신 그의 뜻 곧 계획하심 섭리하심 일하심 약속하심 경륜등등) 우리에게 보여줌과 동시에 그런 하나님 앞에 거룩한 백성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말의 사건은 예루살렘 멸망(AD 70년) 재림입니다. 또한 개인적 종말(죽음)과 우주적 종말도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일차적으로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그 징조와 경고에 대한 말씀들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병행해서 교회된 이들을 향하여서는 개인과 우주적 종말인 재림에 대해서 소망가운데 오늘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여기서 예루살렘 멸망은 징조와 여타 피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나 재림에 대한 날과 때는 아무도 모르기에 그 징조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우주적 종말 곧 재림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치 우리와 무관한 것처럼 멀게만 느껴져서 자칫 잊고 살며 긴장을 늦추기 쉬운데, 개인의 종말이 결국은 우주적 종말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안다면 기껏 우리에게 종말(개인의 종말이든 우주적 종말이든)은 그리 멀지 않은 어쩌면 긴박하게 우리에게 있다는 생각을 갖고 사는 것이 바람직하고 지혜로운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언제 우리의 생을 마감하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린 이미 옛사람이 죽고 다시 사는 경험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그리고 개인의 회심과 세례를 통해서 한번 또는 날마다 경험하고 있으며, 개인의 종말 곧 죽음은 누구도 예측하거나 예단하거나 장담할 수 없이 늘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긴장 속에서도 평강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은 미쁘신 하나님의 뜻을 믿으며 사나 죽으나 주님이 주신 생명 안에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 당시의 임박한 종말에 대한 여러가지 문제 제지가 많은데 그에 대한 연구와 고민들이 필요하긴 하지만 결국 임박한 예루살렘 멸망(데살로니가 서신이 멸망 전에 기록한 것으로 본다면)이 성전 멸망 전에 예수님의 가르침과 예언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기본적으로 갖고 정리된 생각으로 보이며, 환난과 핍박의 상황 속에서 죽음은 그들에게 언제든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하루하루는 임박한 종말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깨어 살았다고 보여집니다. 두려움도 있으나 그런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신앙이 바로 부활의 소망과 미쁘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베푸신 사랑의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서, 주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것임을 고백하는 이들에게 매일 매일은 기쁨과 감사였고, 이러한 믿음을 지속하기 위해 성령의 감동과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구하는 쉼없는 기도 곧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이어가는 것 또한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삶에 대해서 바울은 예수님처럼 여러가지 모양으로 권면하고 가르치고 친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바울의 서신을 비롯한 성경은 종말을 살아가는 교회된 우리에게 때론 문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으며, 또한 바른 해석을 통해 순종해 가야할 직접적인 메시지라는 것을 깨닫고 묵상하며 그 가르침대로 즐거이 순종하며 지켜 행하는 것이 종말을 살아가는 교회가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임을 믿습니다.(데살로니가후서에서 종말에 대한 부분들이 다뤄지니 다른 부분들도 계속 나눌 수 있길 기대합니다)
# 12-13절 영적 리더를 알고 귀하게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이 누구인지 알아야 하고, 그런 이들의 섬김으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귀하게 여기길 바라며 서로 화목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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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 교회는 신생 교회이면서 아직 교회가 지도자나 장로가 세워지지 않은 미조직된 교회로 보입니다. 본문에서 당대 장로나 리더에게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었던 가르침에 대한 언급이 없이 다스림과 권고에 대한 부분만 있기에 그렇게 추정합니다. 그러다 보니 영적 권위자가 부재하고 또 그런 역할을 어느정도 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불분명하기에 공동체가 그런 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조직 교회 곧 리더를 세워가야 할 필요성을 말합니다. 그런 지도자의 바른 섬김(말로만 아니라 살아낸 말씀으로 능력있게 몸소 가르치는 사역)의 사역들을 통해 교회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 곧 바른 가르침과 말씀 위에 든든히 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세워진 이들을 귀하게 여기며 존중할 줄 알고 좋은 관계 속에서 가르침과 배움이 순환되어야 교회는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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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을 살아가는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깨닫고 배우며 실천해 나가는 일이 중요한데 스스로 할 수 있지만 이러한 일들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돕고 가르치는 영적 지도자들이 또한 필요합니다. 이들은 주어진 권위를 얻기 까지 획득된 권위를 얻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하며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검증되고 훈련되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워진 영적 리더들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면서 가야 합니다. 교회는 개인이든 공동체든 소위 말하는 어른(권위자)이 있어야 합니다. 말만하면 꼰대고 몸소 살며 인도하는 이가 어른 곧 장로(무엇보다 바른 말씀에 대한 지식과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간 삶이 동반되어 있고 가르침에 능한 은사와 섬김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세워진 사람이 없거든 붙여 달라고 기도해야하고, 있다면 그런 이들이 바로 이끌어 가길 위해서 기도하고, 그런 권위를 귀하게 여기고 잘 분별하며 순종하며 사랑하며 화목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또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권위자와 스승과 지도자는 우리 주님이시지만 주님이 또한 교회의 필요를 따라 택하여 세운 리더를 교회가 조직적으로 건강하게 잘 세워가는 것도 필요하고 그렇게 서로 존중하는 일들 또한 참으로 필요한 일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그리고 교회들에 그렇게 말씀과 가르침에 능한 깨어 있는 신실한 영적 지도자들이 참으로 절실합니다.
# 14-22절 성령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어진 권면에서는 게으른 자에 대한 권계, 마음이 약한 자들에 대한 격려, 힘없는 자들에 대한 붙듬, 모든 사람에 대한 오래참음을 말하고, 악을 악으로 갚지 말며, 모든 사람에 대해 선을 따르라 말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오래참고, 선을 행하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흠없게 보전되게 하시는 미쁘신 하나님을 믿는 종말을 살아가는 교회를 향한 간구의 제목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런 삶이 가능하게 하는 요인은 결국 기도입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룩한 교회로 세우신 주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종말을 살아가는 교회의 바람직한 길을 인도하고 가르쳐 주는 성령의 역사를 무시하거나 분별없이 행하지 말고 선 곧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도록 이에 반하는 악은 어떤 모양으로도 버릴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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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내외에는 게으르고 마음이 약하고 힘없는 이들이 상존합니다. 이들은 믿음이 약해서도 그렇고 없어서도 그럴 수 있습니다. 또 환난의 상황 속에서 이런 이들이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하고 마음이 강하고 힘있는 이들은 그런 이들을 향하여 인내하며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마냥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도록 곧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랑의 원리와 방법을 따라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으려면 늘 기도하면서 감사의 원리와 사랑의 원리를 따라서 우리를 그런 거룩한 교회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드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도록 늘 성령의 도우심을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성령의 도우심이 말씀과 가르침과 감동과 안내를 통해서 올 때 성령의 역사하심을 무시하지 말고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무엇이 좋은 것인지 바른 것인지 잘 분별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이에 반하는 것이 악이며 그것은 어떤 모양으로라도 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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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안에서나 밖에 있는 이들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점검해 봅니다. 안팎으로 부족하고 연약하고 심지어 성경에서 말하는 심각한 죄아래 있는 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 안이라면 더욱 권면하고 지도하여 죄에서 떠나도록 가르쳐야 하겠고, 교회 밖에 있는 이들은 정죄하고 매도하고 막을 것이 아니라 그들도 우리처럼 주님을 만나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고 진리를 따라 거룩한 백성의 길로 행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인내하며 바라볼 수 있어야겠습니다. 다 버리고 고치고 주님앞에 나올 수 없는 것이 인간이며, 우리도 한때는 그런 자였다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거듭나게하고 새롭게하고 거룩한 백성으로 빚어 주셔서 지금 그리스도 안에 그의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 곧 선을 따르는 방식입니다. 최근 교회 안팎의 일련의 사람들을 정죄하고 매도하면서 오래 참지 못하고 교회의 자원과 힘을 가지고 위협하고 선을 따라 행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의 원리가 아닌 악을 악으로 갚는 모습들이 비춰져서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부족하고 연약하며 무지하여 죄아래 있는 이들을 향하여 오래참을 것을 권하는 이유를 자신의 예로 말합니다. 자신도 이전에 그런 자였다가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으로 지금은 이렇게 복음의 일꾼으로 살고 있는 산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오래참으시는데 우리가 먼저 정죄하고 심판하고 제한하고 재단하는 것은 심각한 하나님 모독이며 어찌 보면 자신이 하나님이 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단들만 교주가 아니라 이렇게 행하고 있는 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의 전도 사역 설교 자세 삶의 방식과 내용들을 말씀의 거울 앞에 비춰보고 점검하여 기울어졌는지 부족함은 없는지 누락된 것은 없는지 생각지 못한 부분은 없는지 편협한지 등등을 잘 살펴 봐야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분별력을 제대로 갖기 위해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주님 때문에 항상 기뻐하고, 주의 뜻을 알고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선한 일에 열심으로 행하기 위해 항상 기도하고, 미쁘신 주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며 모든 일이 주님의 주권하에 있음을 믿기에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새롭게 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일들을 가르치고 인도하고 주관하고 약속하시며 실행케 하시고 분별케 하시는 성령의 역사와 예언을 무시하고 멸시해서는 안됩니다. 선악간에 잘 분별하고 그 중에 악에 대해서는 어떠한 것들이라도 그 방법과 동기와 결과에 있어서 추호도 용납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들이 가장 분명하고 확실하다 하여 언행심사로 정죄하며 행하는 것들 중에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과는 거리가 먼 우리의 탐욕과 이기와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되어 전통이나 교리라는 명분하에 가려진 악과 가까운 것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깨어 기도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여 분별하는 지혜로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 23-28절 미쁘신 하나님 앞에 흠없이 보전되길 기대하고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교회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의 모든 삶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길 간구합니다. 교회를 부르신 미쁘신 하나님께서 이 일을 또한 이루실 것입니다. 이를 위해 서로 기도하고 문안하면서 바울의 서신들을 회람하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위에 굳게 서길 당부하며 주님의 은혜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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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과 핍박의 시대를 살고 있기에 평강의 하나님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엄혹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기에 많은 미혹과 시험과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기에 깨어 있지 않으면 온전히 거룩하고 흠이 없이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여정에 있습니다. 그래서 미쁘신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인도하시고 함께하시고 채우시고 세워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금새 넘어지고 다시 더럽혀지고 부정한 자로 악인의 길로 넘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날마다 구하며 기도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피차 기도할 것과 문안할 것과 보낸 서신을 회람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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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결국 공동체가 함게 기도하면서 서로 사랑과 선행을 위로하며 격려하면서 세워가고, 무엇보다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나아갈 때에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게 되는 부정한 죄악의 길에서 벗어나서 복있는 자의 길 곧 말씀의 인도를 따라 선한 길로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함께 묵상하며 나누는 모든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의 삶이 통채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게서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미쁘신 주님이 그렇게 세워주실 것을 믿으며 함께 동행할 수 있길 원합니다. 이러한 주님의 은혜가 모든 이들에게 있길 구하며 복있는 자의 길로, 주님의 몸된 교회로, 흔들림없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거룩한 교회로 부족함 없길 간구합니다.
# 거둠의 기도
우리에게 친밀한 권위자 되시며
오래참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기쁨과 감사의 근원이 되시며 신실하신 평강의 하나님 아버지
귀한 말씀을 통하여 교회된 축복에 감사할 수 있게 하심 감사드립니다.
또한 종말을 살아가는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시니 또한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세워주신 영적 지도자들을 인하여 감사하옵고
그들을 위히 여기며 순종하며 화목하겠습니다.
공동체 안과 밖의 부족하고 연약한 이들을 향하여 오래 참으며
그들을 대함에 있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선을 따라
행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항상 기뻐할 이유, 쉬지 않고 기도할 이유
범사에 감사할 풍성한 이유 주셔서 감사하오며
허락하신 성령의 인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삶의 모든 내용들 속에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고
선악간에 잘 분별할 수 있는 지혜도 주시옵소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온전히 거룩하고 흠이 없게 보전되길 힘쓰되
미쁘신 주께서 그렇게 이루실 것을 믿으며
세미한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서로 위로하며 격려하며 문안하면서
공동체가 함께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더욱 주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주의 은혜가 결국 우리 삶을 지배하고
가득하고 온전케하고 충만함을 믿으며
날마다 더 성숙함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믿음을 창조하시고 완성하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